【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최근 일주일 사이 여성 대상 살해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사회적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 차원의 실질적인 대책 마련과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 장관 인선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4일 경찰과 여가부 등에 따르면 지난달 말부터 전국 곳곳에서 스토킹과 교제폭력에 의해 여성 3명이 살해되고 1명이 중상을 입는 사건이 잇따랐다.
지난달 26일 경기 의정부에서는 직장에서 일하던 50대 여성이 스토킹범에게 살해당했으며, 3일 뒤인 29일에는 대전 도심 한복판에서 30대 여성이 교제 대상이었던 20대 남성에게 살해됐다. 같은 달 28일에는 울산에서 이별을 통보받은 30대 남성이 20대 여성에게 흉기를 휘둘러 중상을 입히기도 했다.
이에 지난 7월 31일 오전 10시 여성폭력 엄중 대응을 촉구하는 시민사회 일동(이하 여성 시민사회)은 용산 전쟁기념관 정문 대통령실 앞에서 ‘여성살해 및 여성폭력 종합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열어 피해 여성들의 죽음을 추모하고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같은 날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서 60대 남성이 동거하던 50대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비판 여론은 더욱 확산됐다.
여성 시민사회에 속해 있는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해 기준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게 살해당한 여성은 총 181명이라고 집계했다. 애인, 배우자, 동거 대상자 등에 의해 이틀에 한 명 꼴로 살해당한 셈이다.
■ 반복되는 비극에도 변화는 없었다…‘거절당한’ 신고들
최근 발생한 여성 살인 사건들은 사전에 피해자가 수 차례 신고했음에도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인해 인명 피해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의정부 사건 피해 여성은 생전에 세 차례나 스토킹을 신고했으나 검찰은 잠정조치를 기각했다. 대전 사건 피해자 또한 폭행 등으로 경찰에 네 차례나 신고했지만 보호받지 못했다. 울산에서 중태에 빠진 여성 역시 스토킹과 폭행으로 두 차례 경찰에 신고한 바 있었다.
이에 비판의 대상이 된 경찰청은 교제폭력과 스토킹범죄로 발생하는 여성 살인 예방에 대해 총력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
지난 1일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이달 한 달간 스토킹 가해자 3043명의 재범 위험을 평가해 고위험군에는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유치장 유치 등 강력한 조치를 추가로 신청할 계획을 밝혔다. 연인 간 스토킹은 주 1회 모니터링하고 민간경호와 기동순찰대 배치 등 안전조치도 강화할 방침이다.
이 밖에도 유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피해자가 원하지 않아도 경찰이 피해자 보호와 재범 방지를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할 의지를 밝혔다.
그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더라도 위험성이 높다고 보고 가해자 격리 등 적극적인 수사를 진행하는 수사관들이 오히려 민원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적극행정 면책 제도 등을 활용해 수사관들이 판단한 위험성에 따라 적극적으로 사건을 처리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했다.
■ 500일 넘도록 수장 없는 여가부…젠더 폭력 대책은 어디로
여성 시민사회는 이 같은 교제폭력에 대한 공식적인 정부 실태조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을 꾸준히 지적해 오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매해 봉사 인력을 동원해 언론 보도에 나타난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들을 분석하면서 자체적으로 통계를 내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교제폭력과 스토킹 등에 대한 통계를 내고 피해를 예방하며 여성들을 지원해야 할 정부 부처인 여가부는 지난해 2월 김현숙 전 여가부 장관 사퇴 이후 차관 운영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장관 부재 기간이 길어지면서 지난해 논의됐던 젠더폭력 범부처 대책은 올해까지도 마련되지 않고 있다.
올해 이재명 정부의 첫 내각 인선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이 여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으나 보좌관 갑질 의혹 등의 논란 끝에 사퇴하면서 아직까지도 장관 후보자를 물색하는 단계를 거치고 있다.
정의당 권영국 대표는 이 같은 장관 공백 사태에 대해 최근 성명을 발표해 “정부에 특단의 대책을 촉구한다”며 “여성 안전에 분명한 의지를 갖춘 인사를 여가부 장관 후보자로 조속히 내정하고 여가부 내 여성폭력 범죄 전담부서를 마련하는 등 전력을 다해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