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와 초록우산은 가정위탁 아동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자 ‘가정위탁’의 다양한 사례를 조명해 제도 보완점과 개선 방안을 찾아보는 ‘가정위탁, 또 하나의 집’ 연속 특별기고를 마련했습니다. 이번 연재를 통해 위탁가정의 이야기와 제도의 현실을 함께 들여다보고, 위탁아동이 보다 안정된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사회적 공감과 지지를 모아가고자 합니다. 매주 월요일 가정위탁 제도를 위한 아동, 부모, 복지 현장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 말
어린 시절 할머니와 함께 다정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소미(가명). ⓒ초록우산
나는 여덟 살, 초등학교 1학년이 되던 해부터 어른의 역할을 대신해야 했다. 부모님의 부재 속에서 할머니 손에 자랐고, 일찍부터 할머니를 도와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았다. 어느 날, 폐지를 줍던 할머니를 떠올리며 누군가 집 앞에 놓은 종이상자를 향해 달려갔다. 좋아하실 모습을 생각하며 내달리다 그만 넘어져 이마에 피가 났고, 그 상태로도 기쁜 마음에 할머니께 달려갔다. 지금 스물한 살이 된 내가 거울을 볼 때마다 마주하는 이 상처는, 그날의 기억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가정통신문’을 읽고, 안내문을 해석하고, 우편물을 챙겨보며 중요한 내용을 판단해야 했다. 친구들과 놀고 싶은 마음보다 앞선 건, ‘이걸 놓치면 우리 가족이 곤란해질 수도 있다’는 어린 마음에 품은 책임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주민센터에서 우연히 가정위탁 제도를 안내받게 되었다. 그제야 한 달에 30만 원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할머니는 폐지 줍는 일을 멈추실 수 있었다. 제도가 우리에게 닿기까지는 우연에 가까운 연결이 필요했다. 아이였던 나는 그런 제도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고, 도움을 요청할 방법도 알지 못했다.
가정위탁 제도를 통해 생활은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내 일상은 감당하기 벅찼다. 정보 접근의 공백은 남아 있었고, 그 공백을 메우는 일은 여전히 나의 몫이었다. 가정에 어른이 있어도, 정보를 다룰 수 없는 상황에서는 결국 아이가 그 짐을 떠맡는다.
진정 위탁가정이 ‘또 하나의 집’이 되기 위해서는, 아이가 집 안에서 ‘아이로 살 수 있는 삶’이 가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가 단순히 물리적 보호 공간을 넘어, 아이가 책임을 떠맡지 않아도 되는 일상을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조부모가 위탁보호자인 경우처럼 정보 접근이 어려운 가정에는, 가정생활 도우미나 전담 선생님처럼 보호자의 역할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인적 지원이 함께 제공되었으면 한다.
복지 제도가 ‘존재’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이에게 제때, 제대로’ 닿는 일이다. 위탁아동이 어른의 역할을 하게 되는 일이 없도록, 사회가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으면 한다. 그래야 한 아이가 아이답게 자랄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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