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한 데서 공연하던 잔나비가 오늘 바로 여러분들이 지금 지켜보고 계시는 지금, 처음으로 올림픽 체조경기장에 섰습니다. 감사합니다.”(최정훈)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해 주셔서 정말 진심으로 너무 감사드리고요. 감사한 이 마음을 오늘 공연으로 표현하겠습니다. 진짜 제가 눈물이 잘 안 나는데 오늘은 말만 하면 눈물이 날 것 같네요.”(김도형)
인디 밴드가 스타가 되면서, 받는 유혹 중에 하나가 자신들을 특별한 자리에 놓는 일이다.
그룹 사운드 ‘잔나비'(최정훈·김도형)는 하지만 자신들을 계속 의심하면서 인디 정신을 강조한다. 데뷔 11년 만에 인디 밴드로는 이례적으로 국내 콘서트업계 상징인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옛 체조경기장)에 입성하면서도 초심을 놓지 않는 이유다.
인디펜던트의 약자인 인디 출신인 잔나비는 거물급 밴드가 됐지만, 인디가 인기·인지도가 아닌 태도를 가리키는 만큼 이들은 여전히 인디 밴드다. 상업적인 음악시장에 휘둘리지 않고, 고유의 취향으로 독자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일 오후 케이스포돔에서 열린 잔나비의 전국 투어 ‘모든소년소녀들 2025’의 앙코르 공연 ‘모든 소년소녀들 2125’에서 증명한 사실이다.
“긴 긴 미래로 / 머나먼 그 길 따라 / 쏘아 올린 불빛 / 아득한 기분이 들었네” 경사진 무대를 달려 내려와 부르는 첫 곡 ‘포니’는 음악이 선형적(線形的) 삶에서 시간·공간의 뫼비우스 띠를 만들어낸다는 걸 보여줬다.
100년 후의 청춘을 상상하며 서사를 구성한 이번 콘서트에서 잔나비는 버스킹 시절로 돌아갔다. 데뷔곡 ‘로케트’를 신호탄으로 이어 들려준 1세대 인디 밴드 ‘델리 스파이스’의 ‘고백’은 이들의 주종목 노래로, 추억을 소환했다. 잔나비가 지향점으로 삼는 팀 중 하나인 영국의 전설적인 밴드 ‘비틀스’의 ‘헤이, 주드’를 부를 때 떼창이 가득했다.
최정훈은 버스킹을 할 당시 자신들의 곡을 유명곡 커버에 끼워 넣어 알려지기를 바랐다고 돌아봤다. 그런데 지금은 신곡도 팬들이 척척 따라 부르는 수준에 이르렀다.
지난달 29일 발매한 디지털 싱글 ‘사옵뮤 외전: 여름방학 에디션!’에 실린 ‘사람들은 다 그래 맛있는 걸 먹을 때와 여름의 바닷가에서는'(사맛바)와 ‘선샤인코메디클럽’ 라이브 무대를 이날 처음 공개했는데 ‘JF'(Jannabi Fans·잔나비 팬)들은 여름의 청량함을 닮은 이 곡들을 망설임 없이 같이 불렀다.
‘사랑의이름으로!’ ‘플래시’ ‘옥상에서 혼자 노을을 봤음’ ‘주노(Juno)! 무지개 좌표를 알려줘!’ 등 정규 4집 ‘사운드 오브 뮤직 pt.1’에 실린 곡들은 사랑의 내면을 주관화해 보편성을 획득한 곡들로 이미 팬들의 마음 속에 자리했다.
잔나비만큼 잘 놀기로 유명한 JF는 자신들이 애정하는 팀이 단순히 큰 공연장에 입성한 것에 전율하지 않았다. 대학 축제 등을 통해 점점 입소문이 나고 차곡차곡 공연장을 넓혀온 잔나비의 피, 땀, 눈물을 알기에 이들과 같이 공명했다.
최정훈이 “저희는 멘트보다 노래 솜씨, 연주 솜씨가 더 좋다.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지금부터 나올 것”이라면서 쉬지 않고 노래를 들려주는 대목에서 이들이 얼마나 평소에도 음악 실력을 갈고 닦았는지가 느껴졌다.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 하루는 더 어른이 될 테니 / 무덤덤한 그 눈빛을 기억해 / 어릴 적 본 그들의 눈을 / 우린 조금씩 닮아야 할 거야” 앙코르 전 본공연 마지막 곡인 ‘꿈과 책과 힘과 벽’을 들으면서, 잔나비 힘은 새삼 문학적인 것에서 나온다는 것도 깨달았다.
한 때 곡 제목들이 세계문학전집 책 제목 같기를 바랐던 이 팀은 문학사적인 안목을 무대 안팎에서 키워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는 경지에 이르렀다.
작년 이 즈음에 열렸던 ‘2024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마지막 날에 헤드라이너로 나섰던 이들은 시류에 최정점에 도달하기 위해 진심을 내려놓은 적이 없다. 잠실 실내체육관 네 차례 공연 직전인 작년 8월 만났을 때, 체조경기장에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냐는 물음에 그렇지 않다며 겸손했던 이들은 자신들이 할 일을 그저 한다.
기존 대중음악 신(scene)의 형식주의를 벗어났지만, 오히려 스스로 주류가 된 잔나비는 예스럽다기보다 문학적인 화법으로 일찌감치 복고 사운드 열풍을 가져왔다. 이처럼 오래되고 새로운 취향을 지닌 이들은 이렇게 하나둘씩 새 역사를 만들어가면서도 밀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지금의 소년소녀들이 ‘사랑과 평화’, ‘산울림’, ‘송골매’, ‘들국화’, ‘넥스트’, ‘크라잉 넛’을 여전히 듣고 있는 것처럼, 100년 후 소년소년들은 잔나비도 여전히 부르고 있을 것이다. 이번 공연은 3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열렸다. 양일간 2만명(주최 측 추산)에 가까운 JF들이 운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