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구씨 작가] 잉마르 베리만의 ‘산딸기’(1957)는 과거에 대한 회상을 중심으로 꿈과 현실을 오가며 서사가 이어진다. 요즘 시대 AI로 만든 디지털 이미지나 특수효과 없이도 영화는 꿈같이 포근하고 느슨함을 보여준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늙은 노교수는 명예박사 학위 수여식에 참여하기 위해 며느리와 함께 자동차로 스웨덴 남부의 룬드 대학교를 향해 떠난다. 그 여정 속에서 노교수는 자신이 살던 과거를 꿈꾸거나 회상하며 그 속으로 걸어간다. 79세의 교수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지켜보며 감각하는 생생함 감정과 현재와 과거를 꿈처럼 오가는 것만으로 영화는 시간의 흐름을 인생에 대한 질문으로 치환해 낸다.
거꾸로 흘러가는 시계가 나오는 장면에서 시간이 되돌아가는 것을 알게 된다. 창밖으로 보이는 계절이 변화하면 사랑하던 커플의 사랑이 식어가듯 흘러가는 시간은 가끔 영상 속에서 과거로 쉬이 이행한다. 선형적인 시간의 흐름이 야속할 때마다 시간을 어떻게 하면 꼬아볼 수 있을지 고민한다.
내가 발견한 선형적인 시간을 꼬아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계획을 지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쉬운 일처럼 보일 수 있다. 아주 간단한 예시로 침대에 누워 있다가 10초 뒤에 일어나겠다는 마음을 먹고 정확히 10초 뒤에 일어나는 것이다. 10초 뒤에 스스로 계획한대로 일어난다면 나는 과거에서 미래를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과거의 순간부터 현재의 마음가짐까지, 그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나는 미래의 무엇인가를 정하고 실행하는 것은 선형적인 시간은 꼬이게 할 수 있다.
반대로 선형적인 시간은 과거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꼬일 수 있다. 과거를 더 세심하게 기억해 내고 생각할수록 선형적인 시간은 영향을 받는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는 사진이 있겠다. 사진이 잡아놓는 그 시간들, 어제 찍은 밤하늘 사진은 사실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지만 지금의 내가 그 시간의 나를 아주 세세하게 떠올릴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앞에 사진이라는 증거까지 놓여 있다면 선형적인 시간은 자신도 모르는 순간 아주 미세하게 뒤틀릴 것이다. 그래서인지 오른쪽으로 회전하는 시계를 두 눈으로 똑똑히 마주하면서 어젯밤의 얼굴을 선명히 그려내는 것은 꽤 마법 같다.
시간을 꼬아보는 시도를 하며 시간의 흐름이 가상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떠올린다. 선형적인 시간에서 벗어나면 어두운 밤과 밝은 낮과는 무관하게 나의 의지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해지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모든 시간 속에서 탈락하는 기분을 느끼는 순간도 있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시간을 꼬아내는 방법은 나의 무료한 시간을 채워준다.
나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모두 행복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즐거운 약속이 내 스케줄러에 가득해지면 스케줄 공책에 동그라미 쳐진 그 날짜에 즐거울 것임을 확신한다. 그리고 자주 내 확신은 실현되고 나는 과거의 내가 그렇게 생각했던 대로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잠에 든다. 그렇게 나는 선형적인 시간을 꼬아내며 아주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