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압박에 강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EU가 미국의 10% 관세 부과를 수용하고 합의 타결을 추진했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15% 이상 입장을 고수하며 협상이 진척되지 않는 상황이다.
대미 강경론은 프랑스가 주도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EU에 대한 30% 관세 부과를 언급한 직후 엑스(X·구 트위터)를 통해 “유럽의 이익을 단호히 수호해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그러면서 “8월1일까지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반강압 수단(ACI·Anti-Coercion Instrument)’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무역 바주카포’로 불리는 ACI를 처음부터 언급하며 최고 수준 대응을 주창한 것이다. ACI는 2023년 말 발효된 EU 규정으로, 보이콧·무역 제한 등 제3국의 경제적 강압이 있을 경우 해당국 기업에 금융·투자·지적재산권 등 분야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발동 사례는 아직 없다.
CNBC는 “ACI가 발동되면 미국이 흑자를 내는 서비스무역, 특히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넷플릭스·우버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WSWS는 “(ACI 발동시) 미국 기술·금융기업에 대한 연 4200억 유로 이상 대금을 일방적으로 삭감하고, 미국 은행들이 수조 유로 규모 EU 공공조달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프랑스 경제부는 21일 기자들에게 보낸 입장문에서 “프랑스는 EU의 협상 방식이 개선되기를 원한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합의 도달 자체가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며 ACI 발동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덴마크 외무장관도 “우리는 모든 수단을 사용할 준비를 해야 한다”며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가 바로 그 지점에 있다”고 힘을 실었다.
온건 대응을 주장하던 국가들도 기류가 변하고 있다. 대미 무역 의존도가 높은 독일·이탈리아 등은 당초 손해를 감수하는 조기 합의를 주장했으나, 점차 보복 조치에 찬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미국이 자동차·자동차 부품에 부과 중인 25%의 부문별 관세를 완화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독일의 선택의 폭이 좁아진 것으로 보인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프랑스의 ACI 언급에 대해 “미국 행정부는 유럽이 과도하게 높은 관세 부담에 대해 유사한 조치로 대응할 준비가 돼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지원에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독일 지도자들은 당초 트럼프 대통령의 ‘30% 부과’ 위협을 막판 술책으로 이해했지만, 지난주 미국 관리들이 ‘더 높은 관세를 매기고 자동차 부문에서 어떤 조치도 하지 말 것’을 압박했다는 사실을 알고 결국 격분했다”며 “독일이 보복의 문을 열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메르츠 총리는 23일 베를린에서 마크롱 대통령을 만나 8월1일 30% 상호 관세 부과가 현실화될 경우 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협상에 실패하면 얼마나 강하게 반격할지 결정해야 하는 EU에게 진실의 순간이며, 무기를 꺼내지 않는다면 EU는 사실상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정면 맞대응을 주문했다.
FT는 22일 사설에서 “트럼프가 위협한 30% 관세는 무역을 사실상 동결시킬 것이므로, 50%나 100%로 인상하더라도 위협은 덜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ACI를 언급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을 고려할 때, EU는 막판 협상에서 합의에 도달한다고 하더라도 무기가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EU는 210억 유로(약 34조원), 720억 유로(116조여원) 상당의 미국산 상품에 보복관세를 매기는 방안을 마련해 협상과 병행하고 있다. 1차 보복관세 부과는 8월6일 발효되고, 2차 보복관세는 최종 승인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