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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계단 오르기가 힘들어지고, 예전보다 빨리 피곤해진다면? 단순한 노화로 여기기 쉽지만, 의학적으로는 ‘노쇠(frailty)’라는 별도의 건강 상태로 분류된다. 노쇠는 근력이 줄고 걷는 속도가 느려지며, 쉽게 피로해지는 등 신체 전반이 약해지는 상태다.
최근 일본 연구진이 이런 노쇠 진행을 늦추는 데 도움 될 수 있는 친숙한 식재료에 주목했다. 바로 두유와 콩 단백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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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단백질이 주목받는 이유
일본 국립장수의료연구센터는 65세 이상 고령자 160여 명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에게 단백질 14.5g이 들어간 두유를 하루 한 잔씩 12주간 마시게 한 뒤, 보행 속도와 활동량 변화를 측정한 것이다.
실험 결과, 이미 일정 수준의 활동성을 갖춘 고령자(보행 속도 1m/s 이상, 하루 5,000보 이상)에게서만 유의미한 보행 속도 향상이 나타났다. 즉, 단백질 섭취가 기초 체력이 있는 고령자에게 근 기능 유지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콩 단백질은 식물 단백질 중에서도 특별하다. 우리 몸에 꼭 필요한 필수 아미노산을 모두 갖춘 ‘완전 단백질’이면서 흡수율도 높은 편이다. 게다가 동물성 단백질에 비해 지방과 콜레스테롤 함량은 낮고, 식이섬유와 이소플라본 같은 유익 성분은 풍부해 노년기 식단에 부담 없이 활용할 수 있다.
노쇠를 방치하면 생기는 일들
노쇠는 단순히 ‘기운이 없다’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낙상, 입원율 증가, 치매, 심지어 사망률과도 직결되는 심각한 건강 상태다.
일본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자 3명 중 1명은 노쇠 전 단계, 10명 중 1명은 이미 노쇠 상태에 있다. 우리나라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노쇠 예방의 핵심은 세 가지다. 충분한 단백질 섭취, 꾸준한 신체 활동, 만성 염증 억제. 이 중 단백질은 근육을 만들고 유지하는 핵심 영양소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섭취량도 줄고, 흡수율도 떨어져 결핍되기 쉽다.
운동과 함께할 때 더 효과적인 단백질 보충
이번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두유를 마시면 좋다”가 아니라, 조건이 있다는 점이다. 기본적인 활동량을 유지하는 사람들에게서 더 뚜렷한 효과가 나타났다.
하루 5,000보 이상 걷고, 보행 속도가 1m/s 이상인 참가자들은 보행 속도가 0.08m/s 향상됐다. 이는 전문가들이 노쇠 개선 지표로 삼는 ‘임상적 최소 유의 변화'(0.04~0.06m/s)를 웃도는 수치다.
즉, 적절한 신체 활동을 병행하는 고령자에게 콩 단백질은 운동 효과를 높여주는 보완재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두유 한 잔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생활 속 영양 보완재로서는 충분한 의미가 있다.
실천 요령과 주의 사항
전문가들은 콩 단백질을 ‘특효약’으로 기대하기보다는 장기적인 식습관 개선의 일부로 접근하라고 조언한다.
하루 한 잔(200ml 기준) 고단백 두유는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단백질 보충에 도움이 된다. 삶은 콩, 두부, 두유를 반찬이나 간식으로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다만 콩 알레르기나 갑상선 질환이 있다면 섭취 전 전문의 상담이 필요하다.
고령사회로 접어드는 지금, 노쇠 예방은 거창한 기술보다 일상 속 작은 선택에 달려 있다. 한 잔의 두유가 당장 눈에 띄는 변화를 만들지는 않더라도 작은 실천이 노쇠 예방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다.
- 김정아 기자 jungy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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