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정수영 기자] 정부가 부동산으로 향하던 자금을 스타트업·기업 등 생산 부문으로 돌리겠다는 정책 기조를 분명히 하고 있다. 가계대출 관리 강화, 부동산 금융 규제, 정책금융의 기업 중심 재편 등 ‘생산적 금융’이 그것으로, 이재명정부 들어 시중 자금의 물꼬를 빠르게 틀고 있다. 이는 지나치게 부동산을 포함한 실물자산에 편중돼 있는 한국 가계의 자산(2024년 말 기준 비금융자산 비중 64.5%) 구조를 기업 투자와 산업 경쟁력 회복으로 옮기겠다는 두마리 토끼 잡기 전략이다. 한국의 부동산 자산 편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불가피한 선택이자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평가가 많다. 문제는 속도다.
|
|
◇부동산 거래위축→가격하락→돈맥경화 우려
최근 부동산시장에선 가격 조정에 앞서 거래 위축 현상이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등 부동산 관련 대출을 묶어 버리자 매수 여력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거래량이 급감하고 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따르면 10·15 부동산 규제대책 발표 이후인 11일 서울 주택 매매거래량은 2468건으로 한달 새 71% 감소했다. 주택 공급 물량 감소 영향으로 가격은 아직 오름세지만, 정부가 가계대출을 지금처럼 틀어막는다면 결국 자금 경색 우려로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 실제 2013년, 2014년 부동산 시장이 침체상황을 맞았던 이유 중 하나가 이전 정부 당시 박혔던 부동산 규제 대못을 쉽게 제거하기 못하면서 거래 위축, 가격 하락 현상이 심화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부동산시장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현재 실수요자가 체감하는 변화는 더 직접적이다. 자영업자의 상당수는 사업 성과보다 부동산 담보를 통해 자금을 조달해왔다. 이 경로가 빠르게 막히면 가계와 소상공인의 유동성 공백 문제가발생할 수 있다. 돈은 기업 쪽으로 이동하기보다, 가계 구간에서 먼저 막히는 구조, 즉 ‘돈맥경화’가 생길 수 있다. 벌써 생활안정자금 목적의 주담대가 막히면서 생활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출 금리가 오르는 것도 실수요자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금융권이 가계대출 취급 비중을 큰 폭으로 줄이는 등 수요에 비해 공급이 크게 줄다보니 대출 금리가 상승하는 상황이다. 여기서 대출을 상환해버리면 다시 신청조차 하기 힘들어지는 만큼 차주들은 울며겨자먹기로 비싼 이자를 감당하며 연장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담보가치 하락시, 금융경색 우려도
더 큰 문제는 담보가치의 하락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은행 등 금융권은 부동산 등 담보 가치를 기반으로 대출을 취급하는데, 거래 위축이 지속될 경우 담보물의 급락 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 대출 회수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결국 이는 금융 경색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부는 올해 이어 내년에도 가계대출 증가분 축소를 목표로 하고 있다. 보통 연말 대출 총량 관리를 강화하고, 연초에는 다소 완화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번엔 내년 초에도 지금처럼 옥죄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부동산에서 기업으로 자금을 옮기는 일은 한국 경제에 꼭 필요한 구조전환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가계 자금 흐름이 막힌다면, 자금 이동은 성장의 연료가 아니라 경기 둔화의 촉매가 될 수 있다. 돈의 물길을 바꾸려는 현 정부의 정책이 성공하려면 결과에 앞서 과정상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