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당성 상실”…서해 피살 공무원 유족, 1심 무죄 강력 반발

“타당성 상실”…서해 피살 공무원 유족, 1심 무죄 강력 반발

[이데일리 백주아 기자]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피살된 공무원 이모씨의 유족 측 변호인이 1심 무죄 판결을 강하게 비판하며 검찰의 항소를 촉구했다.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왼쪽부터), 박지원 전 국정원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서해 공무원 피격 은폐 의혹’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스1)

김기윤 변호사는 27일 입장문을 통해 “전원 무죄를 선고한 1심 법원은 일반인의 평균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합리성의 한계를 현저히 벗어나 사회적 타당성을 상실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전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은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 노은채 전 국정원장 비서실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은폐 의혹은 2020년 9월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 씨가 서해에서 북한에 의해 피살된 사건과 관련해 정부가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다. 검찰은 당시 서 전 실장 등이 문재인 정부의 대북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려 했다고 보고 2022년 12월 순차 기소했다. 이후 약 3년 만에 법원 판단이 나온 것이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기한 공소사실에 대해 위법하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제시된 증거만으로는 처벌할 수 있을 정도로 혐의가 인정된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이에 김 변호사는 “법원은 국가가 사용한 ‘월북 가능성이 있다’, ‘월북으로 판단한다’는 표현을 사실의 진술이 아니라 가치판단 또는 의견표현으로 보았다”며 “당시 확보된 첩보와 수사 결과, 표류예측 분석을 종합하면 일반적인 평균인의 관점에서도 월북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러한 1심 법원의 논리는 개인의 사적 의견과 국가의 공식 발표를 동일한 기준으로 취급한 법리 오해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김 변호사는 “국가는 일반 국민과 전혀 다른 지위에 있다”며 “특히 국민의 생명이 침해된 사건에서 국가가 사용하는 단어와 표현은 그 자체로 권력적 효과와 규범적 의미를 가진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가의 공식 발표는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사실상 사회적 진실로 받아들여지며 이에 따라 피해자와 유가족의 명예와 인격권이 심각하게 침해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사건에 대한 인식을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가의 표현에는 일반인의 발언과 달리 중립성, 비확정성, 최소침해성이라는 강화된 주의의무가 요구된다”며 “법원은 이러한 차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평균인의 관점’을 곧바로 원용했다”고 비판했다.

김 변호사는 또 “‘월북 가능성’과 ‘월북으로 판단한다’는 표현 사이의 질적 차이를 실질적으로 구별하지 않았다”며 “이 사건처럼 수사가 진행 중이었고 구조 가능성이 완전히 배제되지 않았던 상황에서 국가가 ‘월북으로 판단한다’는 표현을 반복적·통일적으로 사용한 것은 단순한 의견 표명이 아니라 국가 권위로 사실관계를 단정적으로 규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2022년 10월 감사원은 이 사건에서 국가의 위기관리 체계가 작동하지 않았고, 구조를 전제로 한 작위 의무가 이행되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2021년 7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월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국가의 공식 발표가 피해자와 유가족의 명예와 인격권을 침해한 공권력 행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무죄를 선고한 1심 법원은 형사처벌 가능성 판단에만 집중하여 국가의 표현 선택이 초래한 인권 침해와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 문제를 법리 판단의 영역에서 제외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판결의 가장 큰 문제는 형사 무죄 판단이 곧 국가의 책임 부재로 오인될 위험을 낳고 있다는 점”이라며 “형사상 허위의 고의가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의 공식 발표가 적정했는지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았는지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검찰이 항소하지 않는다면 이는 단순히 무죄 판결을 수용하는 차원을 넘어 국가의 잘못된 판단과 표현으로 훼손된 한 국민의 명예를 회복할 마지막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항소를 통해 고인의 명예를 회복하고 국가가 국민의 생명 앞에서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다시 세우기 위한 최소한의 절차”라고 강조했다.

그는 “검찰은 이 사건에서 반드시 항소해야 하며, 항소심을 통해 고인에 대한 부당한 평가가 바로잡히고 국가의 판단과 대응 과정 전반에 대한 실체적 진실이 온전히 밝혀져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Author: NEWS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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