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으로 그린 강렬한 인물화…경주에 온 아모아코 보아포

손끝으로 그린 강렬한 인물화…경주에 온 아모아코 보아포

가나 출신 세계적 작가, 우양미술관서 첫 아시아 미술관 개인전

‘핑거 페인팅’으로 스타 작가로 떠올라…캔버스에 자수 놓는 실험도

아모아코 보아포 2023년 작 ‘자화상’

[우양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경주=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깔끔하고 화사한 단색의 배경에 화려한 의상을 입고 지문처럼 구불구불한 선으로 표현된 피부의 인물화가 있다. 화려한 색채와 강렬한 시선, 역동적인 포즈로 멀리서도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는 가나 출신 세계적인 작가 아모아코 보아포(Amoako Boafo·41)의 작품이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대규모 손님맞이 준비가 한창인 경북 경주의 우양미술관에서 보아포의 아시아 지역 첫 미술관 개인전 ‘나는 이곳에 와 본 적이 있다'(I Have Been Here Before)가 열리고 있다.

아모아코 보아포 2020년 작 ‘벽돌색'(Brick Red)

[우양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보아포는 주로 1명의 흑인 인물을 캔버스에 그린다. 그런데 얼굴이나 팔 등 피부를 그릴 때는 붓이 아닌 손가락에 물감을 묻혀 바르는 ‘핑거 페인팅’ 기법을 사용한다.

그가 표현한 인물들의 피부색을 보면 검정이 기본이지만 파란색이나 보라색도 섞여 있다. 검은 피부는 실제로 빛을 받을 때 보랏빛이나 푸른빛을 띠는데, 이를 표현한 것이다.

유럽의 벽지나 포장지에서 볼 수 있는 나비나 꽃무늬 등 화려한 패턴의 의상도 보아포 작품의 상징이다. 판박이 스티커 원리와 비슷한 전사(轉寫) 기법을 이용해 의상을 묘사했다.

아모아코 보아포 2025년 작 ‘수놓은 장미들'(Embroidered Roses)

(경주=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아모아코 보아포 2025년 작 ‘수놓은 장미들'(Embroidered Roses)이 전시된 모습. 작가는 캔버스에 직접 수를 놓아 장미꽃 무늬 의상을 표현했다. 2025.10.23. laecorp@yna.co.kr

이번 전시를 위해 만든 2025년 작 ‘수놓은 장미들'(Embroidered Roses)에서는 전사 기법을 넘어 캔버스에 직접 자수를 놓은 새로운 시도도 선보인다.

우양미술관 이지우 학예사는 “작가가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가나 전통 자수뿐 아니라 한국의 자수도 공부한 것으로 안다”며 “작가가 전시 제목을 데자뷔 현상을 모티프로 한 영국 극작가 존 보인턴 프리스틀리의 작품에서 따왔는데, 이 작품을 보고 나서 한국을 처음 방문한 작가가 왜 이런 전시 제목을 지었는지 이해됐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총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됐는데, 마지막 섹션 ‘신성한 공간'(Space for the Divine)에는 가나 출신 건축가 글렌 드로쉬와 보아포가 협업해 설계한 한옥 양식의 파빌리온(임시 전시 구조물)도 설치됐다.

한옥 마루를 모티프로 한 이 파빌리온 상부에는 보아포 특유의 꽃무늬가 새겨진 캔버스를 창호지 창문처럼 설치했다. 관람객은 이곳에 앉아 감각과 사유가 만나는 고요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전시 전경

전시장에 설치된 한옥 양식의 파빌리온과 작품들.
[우양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1984년 가나 수도 아크라에서 태어난 보아포는 고향에서 미술 교육을 받은 뒤 2014년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주해 빈 미술아카데미를 다녔다.

이곳에서 오스트리아 출신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의 작업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이는 인물의 전면적인 구도, 화면 속 인물의 압도적인 존재감, 피부색을 표현하는 복잡하고 섬세한 색채 구성 등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가 ‘검은 클림트’라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시 전경

경주 우양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가나 출신 세계적인 작가 아모아코 보아포(Amoako Boafo) 개인전 나는 이곳에 와 본 적이 있다’ 전시 전경.
[우양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보아포는 10년 전만 해도 100달러(약 14만 4천원)에도 그림이 팔리지 않던 무명작가였다. 하지만 2018년 미국 유명 흑인 초상화가 케힌데 와일리의 눈에 띄며 ‘벼락스타’가 된다. 와일리의 추천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로버츠 프로젝트’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고 작품이 완판되는 성공을 거뒀다.

2021년에는 프랑스 고가 브랜드 디올의 여름 남성 컬렉션에서 협업했고, 그해 8월에는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우주 기업 블루 오리진이 개발한 초대형 로켓 외부 패널에 그림 세 점을 담기도 했다.

이런 화제성 덕분에 그의 작품 가격도 급상승했고, 2021년 12월 크리스티홍콩에서는 보아포의 작품 ‘핸즈업(2018)’이 2천670만 홍콩달러(약 49억5천만원)에 낙찰되는 등 동시대 미술에서 가장 주목받는 흑인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전시는 11월 30일까지.

아모아코 보아포 2020년 작 ‘장 미셸 바스키아’

[우양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laecorp@yna.co.kr

Author: NEWS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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