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힙합의 현재로 통하는 힙합 유닛 ‘크리피 너츠(Creepy Nuts·크리피 넛츠)’가 성대한 ‘코로나 출정식’을 국내에서도 선보였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크리피 너츠가 지난 18~19일 서울 광진구 예스24 라이브홀에서 첫 아시아 투어의 일환으로 국내 팬들과 재회한 무대는 리듬감의 충동이 주는 물성의 라이브에 대단한 힘이 있다는 걸 느끼게 했다. 그간 페스티벌을 통해서만 내한한 크리피 너츠의 단독 내한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추우갓코오 니쥬니넨세에'(中学校22年生)로 시작한 이번 공연은 무엇보다 챔피언들이 뭉친 팀다웠다. 래퍼 R-시테이는 일본 래퍼 프리스타일 배틀 대회에서 3연패 기록의 소유자, DJ 마츠나가는 세계 최대 규모의 DJ 대회 ‘DMC 월드 DJ 챔피언십(WORLD DJ CHAMPIONSHIPS) 2019’ 우승자다.
음절당 자음과 모음을 각각 하나씩 나열하는 일본어 발음구조상 이 언어의 래핑은 유려한 것이 특징이다. 놀기에 편한 언어라는 얘기다. 어조를 조금만 달리 줘도 뉘앙스를 다르게 빚어내는 것이 가능하다.
힘이 넘치는 R-시테이의 래핑은 빈틈없는 보폭으로 나아가면서, 특유의 어감과 리듬감을 곳곳에 심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DJ 마츠나가는 R-시테이가 나아가는 길에 단단한 징검돌을 하나씩 놓았다. 그의 기교는 대단하지만, 쇼타임을 제외하고는 R-시테이의 랩과 노래에 철저히 복무한다. 공연에서 말도 거의 하지 않는 그다.
크리피 너츠의 콘서트가 특히 대단한 건 위트다. 자신들의 나라인 일본의 정체성을 뽐내지 않으면서 이를 인지시키고 공감하게 만드는 화법과 작법이 일품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재패니즈(japanese)’. R-시테이는 이 곡을 부르기 전 오타니, 닌자, 사무라이 등 일본을 대표하는 상징을 언급하며 자신들은 이들이 아니라고 빌드업했다. 이후 바로 ‘재패니즈’를 들려줬는데 스모, 가라테 등 일본적인 요소가 계속 언급되는 이 곡은 이들의 뿌리가 어디인지를 자연스럽게 각인시켰다.
아울러 이번 크리피 너츠의 공연은 국내 붐이 조성 중인 J-팝의 다양성도 확인한 순간들이었다. 최근 국내에서 인기 있는 J-팝 계열은 싱어송라이터, 밴드 위주인데 일본 힙합도 그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는 걸 증거했다.
특히 세계적으로도 히트한 일본 TV 애니메이션 ‘마슐(MASHLE)’ 2기 오프닝 테마곡 ‘블링-뱅-뱅-본(Bling-Bang-Bang-Born)’을 떼창하는 대목은 이 현상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이라이트’는 막바지에 들려준 ‘노비시로(NOBISHIRO)(のびしろ)’였다. 서울에서 단독 공연이 자신들이 세계로 나아가는데 중요한 순간이라며, 본인들의 가능성과 포부를 담은 이 노래를 부를 때 내년 4월 이들이 설 미국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무대가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우리는 무조건 잘 될 거라는 일부 힙합의 스웨그 식 주장이 아닌, 관객들과 함께 해 자신들의 가능성이 커간다는 믿음이 좋은 서사를 빚어냈다.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으면서도, 계속 한국어로 소통하려고 한 R-시테이의 노력도 그 연장선상이었다. 약 25곡을 들려주는 내내 크리피 너츠는 힙합하는 이들이 만드는 멋진 공연이란 무엇인지 좋은 사례를 그렇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