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유 장군은 육군사관학교 44기로 임관해 군 생활 대부분을 정책 부서가 아닌 야전에서 보낸 작전 전문가다. 한미연합사 작전참모처장, 제17보병사단장, 합동참모본부 작전부장 등을 역임하고 2021년 육군 소장으로 전역했다. 이 연재는 필자가 대한민국 군에 몸 담고 있는 동안 발전시키지 못했던 한국군의 작전적 사고 부재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한다. 20회에 걸쳐 미국·독일·이스라엘·일본의 작전적 사고 사례를 차례로 검토하고, 한국의 고대·현대 사례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해 무엇을 계승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논증할 예정이다. 국가별 작전적 사고를 비교·분석해 미래전 양상에 부합한 한국군의 작전적 사고를 제안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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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생활 기간에 필자는 전우들에게 ‘작지만 강한 군대’의 예로써 이스라엘군을 자주 언급하였다. 과연 이스라엘군의 정신적 신념체계와 작전적 사고는 어떻게 형성되었고, 현재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까지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가가 자못 궁금하여 학습했던 기억이 있다.
핵심은 절실함으로부터 비롯되었다. 1948년 5월 14일 인구 60만 명의 신생국 이스라엘은 독립을 선포하자마자 이집트·시리아·요르단·레바논·이라크 등 5개국 연합군의 공격을 받았다. 국경이 존재하지 않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전쟁은 선택이 아니라 존재의 증명이었다. 이스라엘군의 작전적 사고는 이러한 절체절명의 현실에서 태어났다. “지면 사라진다”는 자각이 장교단의 사고를 근본부터 바꾸었다. 그들은 교리보다 사고(思考)의 구조, 장비보다 판단의 속도, 조직보다 지휘관의 결단을 중시했다. 그들에게 전쟁은 전선의 문제가 아니라 사고의 속도와 결단의 깊이 문제였다. 절실함이 사고를 낳고, 사고가 교리를 만들었으며, 교리가 기술과 제도를 낳았다. 이스라엘군의 작전적 사고는 곧 지휘관의 지성체계로 정립되었다.
◇생존의 절실함과 ‘사고’의 출발
이스라엘의 작전적 사고는 매 전쟁의 교훈이 교리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발전했다. 지휘관들은 전장을 실험실로 삼아 사고를 체계화했고, 그 결과 사고는 자산이 되었다. 1948년 건국 직후의 독립전쟁은 단순한 무장투쟁이 아니었다. 다얀과 알론 같은 젊은 지휘관들은 병력·장비의 열세 속에서도 ‘속도의 주도권’ 개념을 작전의 핵심으로 삼았다. 특히 모셰 다얀은 “전쟁은 전선이 아니라 사고의 속도전”이라고 강조하며 기갑·공수·공군을 통합운용하고 ‘결정적 순간’(Decisive Point)과 ‘시간의 주도권’(Time Dominance) 개념을 정립했다. 그들은 전선을 선형으로 보지 않고 전장을 입체적 사고의 공간으로 인식했다. 즉, 사고가 공간을 대체하고 결단이 시간보다 빨라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때 탄생한 결정적 순간 개념은 훗날 미군의 공지전투(AirLand Battle) 교리에도 영향을 줬다.
1956년 수에즈 전쟁은 통합적 사고와 전영역 작전의 태동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 시기 이스라엘군은 이미 사고를 정치·외교·전략으로 확장하고 있었다. 이가엘 알론은 전쟁을 단순한 무력충돌이 아닌 국가전략의 일부로 사고했고, 다얀은 공군·기갑·공수부대를 통합 운용하는 전장 통합을 구현했다. 수에즈 전쟁은 단기간의 승리였지만, 더 중요한 성과는 전쟁을 하나의 통합체계로 사고하는 능력이었다. 이 사고는 훗날 합동전, 전영역작전(JADO)으로 발전한다.
1967년 6일 전쟁은 선제타격과 시간의 무기화를 적용하였다. 이스라엘은 적의 병력과 전력에서 압도적인 열세에 있었지만, 라빈과 다얀은 시간 자체를 무기로 삼았다. 공군이 먼저 적 공군기지를 일제히 파괴한 ‘Operation Focus’는 전쟁의 개전 몇 시간 만에 승패를 갈랐다. 이것은 단순한 작전이 아니라 시간을 지배하는 사고의 실천이었다. 전쟁은 ‘먼저 보는 자가 이긴다’는 OODA 개념의 원칙을 증명했다. 즉, 이스라엘의 승리는 병력이 아닌 사고의 속도로 이룩된 결과였다.
1973년 욤키푸르전은 실패에서 학습을 교리로 전환하는 계기였다. 욤키푸르전 초기, 이스라엘군은 자만과 정보오판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샤론은 교리보다 현장의 판단을 우선시하며 수에즈 기습 도하 작전으로 전세를 반전시켰다. 이 전쟁의 교훈은 “패배는 사고의 중단에서 시작된다”였다. 이후 라빈은 AAR(After Action Review) 체계를 도입해 실패를 학습으로, 학습을 교리로 전환시켰다. 그 결과 이스라엘군은 ‘학습하는 군대’로 진화했다. 욤키푸르전은 이스라엘군 작전적 사고의 성숙점이었다. 창의·자율·학습이 사고의 세 축으로 명확히 정립된 것이다.
◇기술속의 ‘사고’, ‘사고’ 속의 인간
1990년 이후는 사고의 이론화와 체계화에 방점을 찍는다. 시몬 나바흐는 체계적 작전설계(SOD)를 통해 전쟁을 복잡한 체계로, 작전을 사고의 구조적 표현으로 재정의했다. 비록 그의 이론은 실패로 끝났지만 전장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이해해야 한다는 철학으로, 훗날 미국의 네트워크 중심전(Network-Centric Warfare)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군의 지휘관들은 단순한 전투지휘자가 아니라 사고를 설계하는 전략가이자 철학자 집단으로 변모했다. 또한 전쟁이 사고를 검증하고 사고가 교리를 발전시켰다. 이스라엘군의 지휘관들은 사고로 무기를 만들고, 지성으로 군을 설계했다. 한 예로, 이스라엘 탈 장군은 사고를 현장에 적용한 메르카바(Merkava) 전차 개발을 주도했고, 다니 골드 장군은 사고를 기술로 구체화하여 아이언돔(Iron Dome)을 구상하여 실현하였다. 이들은 군인이자 과학자, 지휘관이자 사상가였다. 메르카바나 아이언 돔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사고의 체계가 낳은 지성의 산물이었다. 이스라엘군의 진정한 무기는 장비가 아니라 생각의 구조, 그리고 사고를 조직화한 지휘문화였다.
2023년 10월 하마스의 기습은 이스라엘의 정보체계를 마비시켰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은 초기 충격 이후 곧바로 전장을 재설계했다. AI 기반의 표적식별, 아이언돔, 드론 및 정보·감시·정찰(ISR) 자산 통합운용, 지휘통제의 실시간 루프화(OODA Loop의 자동화) 등 이 모든 것은 단순한 기술의 승리가 아니라, 기술을 사고의 확장으로 사용한 결과였다.
하마스전은 시몬 나바흐의 체계적 작전설계(SOD)가 20여 년 전에는 너무 이른 사고였음을 증명한 전쟁이었다. AI, 정보, 여론, 군사력이 한 전장 안에서 동시에 작동하며 ‘체계적 전쟁’이 현실화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이스라엘군이 체계적 작전설계를 교리로 채택하지는 않았지만, 전장의 성격 자체가 나바흐가 상정한 복합체계적 구조로 진화함으로써 그의 사고는 실패한 이론이 아니라 시대를 앞서간 사고의 실험으로 재평가되었다.
◇절실함을 ‘사고’로 전환해야
이스라엘의 절실함을 잘 표현하고 있는 곳은 ‘야드바셈’이라는 홀로코스트 추모관이라고 할 수 있다. 야드바셈은 이스라엘 군의 존재의 이유와 목적을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매년 전 장병이 이곳을 들러 역사를 상기하고 정신무장을 강화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절망의 현실을 사고의 체계로 바꾸었다.
이스라엘군은 오늘날에도 기술보다 사고를 중심에 둔다. AI, 드론, 사이버전, 정보전이 결합된 전장에서도 결심의 속도와 판단의 일관성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한다고 믿는 것이다. 이스라엘군의 작전적 사고는 전쟁속에서 태어나고, 사고로 완성된 지성체계다. 다얀의 속도, 알론의 통합, 샤론의 창의, 라빈의 학습, 나바흐의 체계, 그리고 하마스전에서 드러난 기술·사고의 융합은 모두 하나의 진리를 말하고 있다. “생존의 절실함이 사고(思考)를 낳고, 사고(思考)가 군을 만든다”는 것이다.
한반도 역시 핵·미사일 위협, 주변 4강의 교차 압박이 있고 전장과 종심이 좁은 전장 환경속에 있다. 조건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차이는 절실함의 자각과 사고의 정립 수준이다. 한국군은 오랜 한미 연합 방위 체제 속에서 독자적 사고의 체계화를 놓쳤다. 군이 본질과 기본으로 돌아가는 길은 위기를 사고로 바꾸는 능력, 즉 절실함을 사고의 구조로 전환하는 일이다. 지휘관의 사고를 교리로, 교리를 훈련으로 연결할 때 비로소 ‘싸우면 이기는 군대’는 현실이 된다. 지휘관의 사고를 전환하는 일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