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빈 가정의 이재명 소년공이 배움의 의지를 싹 틔우고 인생 역전의 희망을 품을 수 있게 한 첫 도움판이 검정고시였다면 1982년 입학한 대학의 전액 장학금은 그가 더 큰 세상으로 점프할 수 있도록 한 도약대나 다름없었다. 학비 걱정 없이 어지간한 중소기업의 한 달 치 월급과 맞먹는 지원금을 따박따박 받으며 죽어라 사법시험 공부에 매달릴 수 있게 해 준 이 장학 제도는 그를 물 만난 고기로 만들었을 것이다. 특급 장학생의 학력과 자질을 갖춘 데다 입학 후 부단히 쏟았을 열정과 노력을 감안하면 성공 사다리는 이 시절에 이미 준비됐다고 봐도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대학생 이재명을 아무 걱정 없이 고시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해 준 이런 초대형 장학금은 이제 옛이야기로 남아 있다. “뽑으려고 해도 조건에 맞는 지원자가 거의 보이지 않아요. 가난한 집안에서는 공부 잘하는 영재, 수재가 나오기 힘들어졌기 때문이지요. 부모 경제력이 학생의 학력을 좌우하는 판에 어느 부자 부모가 장학금 준다고 고득점 학생을 비명문대에 보내려고 하겠습니까? 무조건 명문대 순이지요”
이 대통령을 배출한 학교의 한 교직원이 오래전 필자에게 들려준 얘기 속엔 흙수저 영재들을 위한 장학 제도가 사라진 이유가 명쾌하게 나타나 있다. 한마디로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가 막을 내린 지 오래며 싹수 있는 영재가 있다고 해도 이들의 성공 사다리는 더 이상 없다는 말이었다. 시간을 바꿔 이 대통령이 30여 년 늦게 태어나 같은 환경에서 대학생이 된 후 오로지 노력만으로 사시와 싸웠다면 얼마나 험한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을까. 부의 대물림, 학력·신분의 세습이 고착화된 오늘의 한국에서 타고난 핸디캡을 뛰어넘는 흙수저들의 성공 스토리는 이제 바닷가 모래밭 속의 바늘 찾기가 됐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택배 일로 6년에 3억원을 모았다는 26세 택배 기사 정상빈 씨 이야기가 화제다. 신문은 물론 인터넷상에서도 그는 유명 인사가 됐고, TV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진행자와의 대담 내내 돋보인 정 씨의 성공 행진 비결은 ‘성실’이라는 두 글자와 딱 들어맞는다. 보통 택배 기사들의 두 배가 넘는 하루 7백여 개의 물량을 배송하며 월 1300만원 안팎의 수입을 올린다는 그는 우등생의 자격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었다. 쉬는 날이면 배송 담당 구역 지리를 구석구석 살펴보러 다니고 건물 주소를 몽땅 외우려 한다는 점에서도 그는 ‘택배의 신’ 찬사를 찜해 놓은 젊은이였다. 어려운 환경을 탓하지 않고 자신이 땀흘려 번 돈으로 아파트를 장만했다는 그가 입주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공사 현장을 지날 때마다 흐뭇하게 바라본다는 고백은 이 땅의 또래들에게 전해준 원기 회복의 강장제였다. 부유한 가정의 고학력자나 든든한 뒷배를 지닌 이들만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일과의 승부에 갈아 넣는 흙수저 인생도 성공을 손에 쥘 수 있다는 희망을 그는 보여준 셈이다.
취업난의 끝이 보이지 않고 기업들마다 내일의 채용 확대보다 오늘의 고용 유지를 더 걱정하는 현실 속에서 미래 세대에게 ‘성공’은 부질없는 꿈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방이 꽉 막혀 있고, 피곤한 일상 탈출의 사다리가 보이지 않는다 해도 구원의 동아줄을 찾을 노력을 포기해선 안 된다. 이 대통령이 잡았던 것과 같은 동아줄이 이젠 없지만 그래도 좌절할 필요는 없다. 작은 기업에서 박봉의 월급 받기보다 실업급여 받아 해외여행 가는 즐거움이 더 달콤하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정 씨의 일상은 깨우침의 교과서가 되기에 족하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진리를 실천으로 보여주는 이들 앞에서 부정과 불공정, 그리고 불평과 한숨은 설 자리가 없다. 정 씨의 성공 스토리 2, 3막이 주목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잔꾀와 혀가 아니라 온몸과 마음, 정성을 다해 쓰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