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아일랜드, 기억으로 엮인 인연[공관에서 온 편지]

한국과 아일랜드, 기억으로 엮인 인연[공관에서 온 편지]

[김용길 주아일랜드대사] 아일랜드의 짧은 여름이 아쉬움을 더해가던 8월의 마지막 날. 도심 공원으로는 유럽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피닉스 공원에서 코리아 페스티벌이 열렸다. 국악, 태권도, 한복 패션쇼와 같은 공연뿐만 아니라 K뷰티, K푸드, K문학 등 다양한 한국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부스가 설치됐고 1만 5000명의 인파가 몰렸다. 150만 명으로 알려진 더블린 인구의 1%가 페스티벌을 보러 온 셈이니 유럽 서쪽 끝 섬나라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큰지 짐작하게 한다.

김용길 주아일랜드대사(사진=외교부 제공)

우리 대사관은 올해 공공외교사업의 하나로 한국을 종합적으로 알리는 코리아 페스티벌을 준비했다. 특히 이번 행사는 우리 기억 속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한국과 아일랜드 인연의 시작, 그 중심이 되는 인물과 그들의 삶을 재조명하는 기회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여느 문화행사와 다른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한국과 아일랜드가 수교를 맺은 것은 1983년이지만 양국의 인연은 성골롬반외방선교회가 한국에 처음 선교사를 보냈던 193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제 강점기 치하에 있던,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국에 올 결심을 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것이 양국 교류의 첫 시작이었다. 선교사들은 인심 좋고 순수한 한국 사람들에게 큰 애정을 느꼈다고 한다. 전쟁조차 한국 교구민을 향한 애정을 끊어내질 못했으니 목숨을 건 이들의 사랑에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페스티벌 개막을 알리는 국악이 울려 퍼지고 아일랜드 측 주빈의 축사가 이어진 뒤 무대에서 한 특별 태피스트리(다양한 색실로 그림을 짜 넣은 직물)가 소개됐다. ‘기억으로 엮인’(Woven in to Memory)이라는 제목의 이 태피스트리에는 7명의 젊은 아일랜드인 얼굴이 그려져 있는데 1950년 한국전 발발 후 종군 봉사과정에서 순교한 골롬반 선교사들이다. 전쟁이 터지고 고국으로 돌아갈 기회가 있었음에도 자신이 담당한 교구민들을 내팽개치고 갈 수 없어 고난을 함께하기로 선택한 것이다.

이번 페스티벌에서는 다양한 K컬처 체험관 외에도 ‘한국-아일랜드의 연결’(Korea-Ireland Linkage) 홍보관을 열어 수교 전부터 양국 관계에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해 온 참전용사, 최근 선종한 천노엘 신부를 포함해 골롬반 선교사의 삶을 기리고 조명할 수 있는 책자와 영상, 사진 자료를 비치했다. 행사가 끝나고 선교사 가족들은 올해 순교 75주년을 기념해 작은 행사라도 열 수 있길 바랐던 소망이 생각지 못하게 크고 멋지게 실현됐다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사실 감사는 우리가 해야 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흐릿해질 수 있는 양국 관계의 시작점, 그 중요한 역사적 사실과 인물에 대해 일깨워 주었기에.

선교사 가족도 이제 60대가 훌쩍 넘어 더 늦기 전에 순교자들에 대한 기억을 남기는 작업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대사관은 태피스트리를 본떠 만든 액자를 기증받았는데 액자에는 고(故) 케빈 오록(Kevin O’Rourke) 선교사이자 교수의 ‘인 더 블러드’(In the blood)라는 시가 게일어·영어·한국어로 번역돼 있다. 한국과 한국민을 향한 애정이 절절히 느껴지는 시다. 우리는 이 사랑을 이번 축제에서 다시 확인했다. 한국과 아일랜드가 오래전부터 나눠 왔던 우정이 씨줄과 날줄을 교차해 만드는 태피스트리처럼 이제 우리의 기억으로 엮이고, 핏속에 남아 계속 흘러가리라 믿는다.

Author: NEWS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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