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임죄 폐지는 경제형법 패러다임 전환”[만났습니다]

“배임죄 폐지는 경제형법 패러다임 전환”[만났습니다]

[이데일리 박종화 기자] “경제 형법의 패러다임이 ‘형사처벌 중심’에서 ‘민사·행정 중심’으로 전환되는 역사적 변화다.” 더불어민주당 경제형벌·민사책임 합리화 태스크포스(TF) 단장을 맡은 권칠승 의원은 13일 이데일리와 만나 배임죄 폐지와 대체입법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정부·여당은 지난달 배임죄를 폐지하고 기존 배임죄에서 모호성을 제거한 대체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구상대로면 1953년 형법 제정 이후 73년 만에 배임죄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대신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민사적 구제 제도는 더욱 강화한다. 권 의원은 “배임죄 폐지로 기업 경영 리스크의 형사화가 완화되고 사적 자치와 민사책임 중심의 경제질서로 이행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다만 국민의힘은 배임죄 폐지가 이재명 대통령 면소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배임죄 폐지에 반대하고 있다. 이런 주장에 권 의원은 “배임죄 폐지는 경제계의 오랜 바람이었다”며 “배임죄 폐지를 특정인 구하기로 몰아가며 비판하는 야당의 태도는 사리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정쟁을 위한 정쟁, 비판을 위한 비판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다음은 권칠승 의원과의 일문일답.

-1953년 형법 제정 이후에 72년 만에 배임죄라는 죄목은 일단 법전에서 사라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 의미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경제 형법의 패러다임이 형사처벌 중심에서 민사·행정 중심으로 전환되는 역사적 변화를 의미한다. 배임죄라는 죄목이 1953년 형법과 함께 제정됐다. 그런데 배임죄 구성 요건 자체가 광범위하기도 하고 모호하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삼라만상이 전부 배임죄 혐의 대상’이란 이야기까지 들었다. 그래서 범죄의 구성 요건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또 법의 모호성 때문에 기업의 의사결정, 특히 창업이나 투자를 하는 데 많은 장애가 됐다는 점도 오랫동안 지적됐다. 그래서 이번에 배임죄 정비로 그런 문제를 해소하자는 큰 취지를 갖고 있었다. 배임죄 폐지로 ‘기업 경영 리스크의 형사화’가 완화되고 사적 자치와 민사책임 중심의 경제질서로 이행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배임죄가 형벌 체계에서 빠지게 되면 민사 소송에서 증거 수집하는 데 여러 가지 애로들이 생길 수는 있다. 그래서 민사적 구제를 강화하는 보완도 같이 추진하고 있다.

-배임죄 정비는 경제계의 숙원이었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지냈는데 배임죄 폐지가 경제와 기업에 미치는 효과는 어떻게 보나.

△경영 리스크의 형사화를 완화하고 대신 민사 책임을 강화하는 게 선진적인 제도 아닌가. 기업 활동이든 사적인 활동이든 간에 제3자에게 피해를 끼치고 그것에 대해서 민사적 구제가 청구되면 확실하게 응할 수밖에 없게 하는 제도가 선진적인 제도라고 본다. 기업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하되 민사적인 책임마저도 지지 않으려는 것은 자유시장경제에서 허용이 안 된다.

-그동안엔 배임죄 정비 방안으로 상법상 특별배임죄를 폐지하고 형법에 경영판단원칙(경영자가 의무를 다하며 선의로 경영상 판단을 했다면 손해가 발생해도 개인적인 책임을 묻지 않는 원칙)을 명문화하는 방안이 많이 거론됐다. 이 같은 방안 대신 더 근본적으로 배임죄 폐지 후 전면 대체입법을 하려는 배경은 무엇인가.

△단순하게 ‘경영판단원칙을 넣자’고 하는 건 그동안 쉽게 이야기했던 것이다.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이제 법에 경영판단원칙을 넘는다 하더라도 그동안에 배임죄로 의율되는 행위들에 대해선 여전히 모호한 상태로 남아 있게 된다. 기존 배임죄의 구성요건 자체가 ‘타인의 사무 처리’나 ‘임무위배’ 등 불명확한 개념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와 우리 TF의 활동 기본 방향은 그 같은 행위의 구성 요건을 최대한 명확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업경영 행위는 민사·행정 영역에서 책임을 묻되 공공성·부패행위 등은 별도의 특별법으로 구체적으로 규율하는 대체입법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독일·미국 등 배임죄가 형법에 존재하지 않거나 매우 제한적으로만 적용되는 주요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한 것이다. 형사처벌 대신 명확한 민사상 손해배상·이해 상충 방지 규정으로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제도를 재설계하려 한다. 그게 안 된다고 하더라도 형법 등에 자세하게 규정하는 방식도 고려하고 있다.

다만 그렇게 하기 위해선 그동안 법원에서 배임죄 판례로 만든 내용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지금은 그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를 근거로 해서 조문화 작업을 해야 하는데 쉬운 일은 아니다.

-배임죄 판례를 유형화하는 작업이 오래 걸린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언제 입법이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하나.

△배임죄로 처리되어 온 다양한 행위를 유형화하고 여전히 형사처벌이 필요한 부패·신뢰침해·공공경제 관련 행위를 분류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원체 방대한 작업이다. 이 과정을 거친 뒤에야 유형별로 특별법 또는 별도의 경제범죄법 체계로 이관하는 입법안을 마련할 수 있다. 그냥 두루뭉술하게 경영판단원칙을 법에 넣으면 내일이라도 입법을 할 수 있겠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

지금 당과 정부는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동안 배임죄로 처벌받았던 내용을 충분히 살펴보고 최대한 선진적으로 조문을 바꿔보자는 의지가 강하다. 언제까지 이제 입법을 마무리하겠다고 시한을 못 박기는 어렵다. 관계부처 및 법조계·경제계와의 협의를 거쳐 초안을 마련하겠다. 정기국회 내 입법 여부는 판례 분석과 조문화 작업 속도에 달렸다. 다만 최대한 빨리하겠다는 마음으로 지금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형사처벌을 완화하는 대신 민사책임을 강화한다는 정부·여당 기조인데 민사 제도는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

△피해자가 민사 절차에서 손쉽게 입증할 수 있도록 하고 충분한 피해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민사 관련 실체법과 절차법을 보완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개인이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용이한 집단소송제도, 수사기관의 개입 없이도 사실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개시제도, 그리고 재발 방지를 위해 손해액을 초과하여 청구할 수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등을 함께 검토하여 구체적인 방향을 정하겠다.

-일각에선 배임죄가 그간 기업의 위법적 행위나 경영진 해태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민사책임 강화로 이런 부분을 예방할 수 있겠나.

△민사적으로 책임에서 빠져나가는 방식은 많이 제어될 수 있을 것이다. 형사법의 완화가 곧 통제의 약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피해 회복 중심의 실질적 책임체계로 전환하는 것이란 걸 강조하고 싶다. 이를 위해 민사 절차에서 보다 손쉽게 입증하고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민사 실체법과 절차법 전반의 보완을 추진하고 있다.

-국민의힘에서는 배임죄 폐지가 이재명 대통령의 배임죄 재판 면소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배임죄 폐지에 반대한다.

△배임죄 폐지는 경제계의 오랜 바람이었다. 한국 경제의 글로벌화가 심화 될수록 배임죄 폐지에 대한 요구는 커졌다. 많은 법조인들도 배임죄가 문제가 많다는 것에 오랫동안 공감 해왔다. 구성요건이 모호하여 형사법의 기본 원칙인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 측근 중 한 명인 이복현 전 금융감독원장이 배임죄를 없애자고 한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현직 야당 의원들도 배임죄를 폐지하는 법을 많이 내놨다.

그런데 배임죄 폐지를 특정인 구하기로 몰아가며 비판하는 야당의 태도는 사리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정쟁을 위한 정쟁, 비판을 위한 비판에 불과하다. 자신들의 정치적인 공세를 위해서 배임죄 폐지를 논의도 안 하고 고치지도 말아야 된다는 건 공당으로서 주장할 내용이 아니다.

Author: NEWS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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