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오디세이] 상대를 위한 선택

[삶, 오디세이] 상대를 위한 선택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의 인기가 연일 뜨겁다. 애니메이션 뮤지컬이자 판타지 액션인 이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오래전부터 악마들이 세상에서 인간의 영혼을 갉아먹으며 세력을 넓히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귀마’가 있었다. 이를 막고자 노래의 힘을 이용하는 ‘여성 그룹(헌트릭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노래를 통해 ‘혼문’이라는 마법의 장벽을 세워 인간 세계를 보호하고자 한다. 한편 귀마는 과거 인간이었던 ‘지누’를 중심으로 ‘남성 그룹(사자 보이즈)’을 조직해 헌트릭스의 팬들을 빼앗고 혼문의 힘을 약화시켜 자신이 더 강해지려 한다.

 

귀마의 계획대로 모든 것이 진행될 무렵 지누의 행동이 영화의 반전을 일으킨다. 귀마와 루미가 대치하는 장면에서 귀마의 공격에 루미가 점점 밀리고 있는 상황, 지누가 루미를 구하기 위해 귀마의 공격을 온몸으로 막아낸다. 지누는 루미 덕분에 비로소 자신이 양심을 따를 수 있게 됐고 그 결과 자신이 진정 자유로워졌음에 감사한다. 그 순간 지누의 영혼은 루미의 칼 속으로 옮겨지고 루미는 그 칼로 귀마와 사자 보이즈를 무찌르며 새로운 혼문이 세워진다.

 

많은 관객이 이 장면에 열광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누의 선택 때문일 것이다. 그는 과거와 달리 결정적 순간에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했다. 세상이 ‘나를 위한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는 지금 케데헌은 ‘너를 위한 방식’이라는 역설적 선택을 보여준다. 바로 ‘너를 위해 나의 목숨까지 내어 주는 선택’이다. 그렇다면 지누의 이러한 선택은 영화에서만 존재하는 것일까.

 

천주교에서는 지누와 같은 선택을 가리켜 ‘대속·속량’이라 칭한다. 그리고 이미 2천년 전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해 대속·속량의 삶을 선택한 이가 있다. 그는 온 인류가 자신들이 지은 죄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인류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혔다. 그는 생전에 “친구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고 말했는데 실제로 십자가에서 그 사랑을 완성했다. 이 사랑이야말로 천주교 신앙의 본질을 이루며 교회를 움직이는 힘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필자의 두 눈에 들어오는 이 세상은 적자생존, 약육강식을 중심으로 가난보다는 풍요를, 비판보다는 안정을, 사람보다는 규범을, 관계보다는 제도를, 수용보다는 폐쇄를, 자비보다는 단죄를 더 선호하고 선택한다. 이는 ‘너를 위한 방식’이 아닌, 철저히 ‘나를 위한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세계 곳곳을 불안하게 만드는 지정학적 갈등과 전쟁으로, 세계 무역질서를 뒤흔드는 특정 국가의 과도한 관세 정책으로, 비국가 세력의 잇따른 공격으로 인한 테러와 안보 불안으로, 그리고 사회·정치적 양극화의 심화로 이어지며 결국 우리의 정치·경제·문화 전반에서 인간의 존엄과 공동선을 위협하고 있다.

 

영화 속 루미와 지누의 장면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누군가를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는가.’ 이 시대야말로 우리의 대속·속량의 선택들이 모여 ‘사랑의 새로운 혼문’이 세워져야 할 때다.

Author: NEWSPIC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