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막투석 진료 인프라가 붕괴 위기에 처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남인순 의원(더불어민주당, 서울 송파병)과 대한신장학회가 복막투석 담당 신장내과의사 11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복막투석 비율 매년 감소…재택관리 시범사업에도 효과 없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신장투석 환자는 2015년 6만807명에서 2024년 9만1,185명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혈액투석 비율은 2015년 86.2%에서 2024년 92.2%로 매년 증가한 반면, 복막투석 비율은 2015년 13.8%에서 2024년 7.7%로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보건복지부는 2019년 12월부터 복막투석 재택관리 시범사업도 시행하고 있다.
현재 93개 의료기관이 참여하고 있으며, 시범사업 참여환자의 연간 의료비용 및 의료이용 감소, 출구염 및 복막염 감소 등 임상지표 개선, 높은 환자 만족도 확인 등 효과가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해가 거듭될수록 복막투석 환자 비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남 의원은 “시범사업 기간이 올 연말까지인 만큼, 그간의 효과분석을 바탕으로 낮은 보상 수준 등 시범사업의 문제점을 적극 개선하여 시범사업을 연장하거나 본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련 산업 붕괴…국내 유일 업체 철수로 외국 기업 독점
복막투석 환자 수 감소는 관련 산업의 붕괴를 초래하고 있다.
지난 8월 국내 유일의 복막투석 장비 제공업체인 보령제약이 복막투석 사업을 철수하면서, 한국의 복막투석 주권은 사라지고 미국계 회사와 독일계 회사가 한국의 복막투석 산업을 장악하게 됐다.
앞으로도 복막투석 환자 수 감소 추이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이들 외국업체마저도 철수를 고려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대한신장학회는 “현재 상황이 유지될 경우 10년 이내 복막투석 환자가 2% 미만으로 소멸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수련교육 붕괴…도관삽입술 교육 80% “충분하지 않다”
남 의원이 대한신장학회와 공동으로 지난 8월 25일부터 9월 5일까지 2주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심각한 수련교육 부실 문제도 드러났다.
이번 설문조사는 전국 병원급 이상 복막투석 담당 신장내과의사 112명(상급종합 68명, 종합 42명, 병원 2명)을 대상으로 이메일을 통해 진행됐다.
수련과정에서 복막투석 수련교육이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는지 묻는 질문에 54%가 부정적으로 답했으며, 복막투석 교육시수가 이전에 비교해서 줄었다는 응답이 67%였다.
수련의의 복막투석환자 진료경험이 이전에 비해 줄었다는 응답은 77%로 나타났다.
특히 복막투석 도관삽입술 교육이 충분하지 않다는 응답이 80%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도관삽입술은 복막투석을 위한 기초수술로써, 자가투석을 할 수 있도록 환자의 복막에 투석관을 삽입하는 수술이다.
이와 같은 부실한 복막투석 수련과정으로 인해 수련의가 전문의 취득 이후 복막투석이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이 81%였다.
남 의원은 복막투석의 수련교육이 붕괴되고 있으며, 수련교육의 붕괴는 의사인력의 붕괴를 가져오고, 이것은 진료 인프라의 붕괴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현재의 전문의들이 퇴직하고, 지금의 수련의들이 전문의가 되는 향후 5년 이후에는 대한민국에서는 복막투석을 수행하는 전문의를 찾기 힘들어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혈액투석을 권장하는 의사들만 많아질 것”
진료현장의 의사들은 복막투석환자 감소의 원인을 시범사업 수가에서 찾고 있다.
현재 시범사업수가 유지 시 복막투석환자수의 전망에 대하여 절반 이상인 56%가 감소할 것이라고 응답했으며, 현재 시범사업수가가 복막투석실 운영에 적자라는 응답이 58%를 차지했다.
복막투석을 환자에게 권유하는데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수가미비를 답한 사람이 71%엿다. 복막투석 활성화를 위한 개선사항으로 수가개선을 꼽은 응답은 95%이다.
설문조사 자유의견에서는 “복막투석 수가개선이 있지 않는 한, 혈액투석을 권장하는 의사들만 많아질 것입니다”, “진료 부담에 비해 수가를 비교할 때, 혈액투석에 비교할 수 없어 환자에게 선택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현재의 수가에서 더 나은 지원이 없다면, 대부분의 병원이 혈액투석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등 뼈아픈 의견들이 제시됐다.
◆혈액투석과 복막투석 수가 격차 심각…연간 2,000만원 차이
신장투석환자 1인당 병원 수입을 비교하면 격차가 극명하다.
혈액투석 환자는 연간 약 2,087만원의 수입을 가져오는 반면, 복막투석 환자는 시범사업 수가가 최대치로 지급되더라도 연간 100만원에 못미치는 수입이다.
환자 1인당 연간 약 2,000만원의 수입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혈액투석환자가 100명이면 연간 20억원의 병원 수입이 생기며, 혈액투석 업계에서는 원가를 평균 50%로 산정하므로 연간 10억원의 순수익을 올릴 수 있다.
남 의원은 “혈액투석환자가 돈이 되니, 의료현장에서 각종 불법·탈법·편법이 판을 치고 있다는 제보도 들린다”면서, “환자본인부담금 면제, 식사 무료 제공 같은 불법·편법 사례가 생기며, 환자를 몰고 다니는 환자 브로커, 환자를 사고파는 사례 등의 극단적인 불법 사례도 발생한다”고 우려했다.
◆미국은 혈액투석과 동일 수가…한국은 1/4 수준 요구
남 의원은 미국의 복막투석 활성화 사례도 제시했다.
미국은 2006년 복막투석 비율이 6%까지 떨어졌지만 2011년 복막투석수가를 혈액투석과 동일하게 매월 3,559달러(한화 약 500만원)으로 지급하는 획기적인 정책을 시행했다.
이후 드라마틱한 반전이 일어났고, 10년 뒤인 2022년 복막투석 비율이 15%로 증가하는 등 효과를 거두었다.
설문조사 결과 의사들은 복막투석수가에 대해 월 40만원에서 60만원(30%)을 적정수준으로 보고 있는데, 월 40만원은 혈액투석수가의 1/4에 불과한 금액이다.
남 의원은 “미국처럼 동일하게 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복막투석실 유지하는데 있어서 적자는 면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시범사업 뒤에 본사업으로 전환된다면, 절반 이상이 본사업 전환에 참여하겠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현재의 수가 그대로 본사업으로 전환된다면, 복막투석 환자수는 점차 줄어들 것이고, 수련교육도 부실하게 되고, 해당 전문의 숫자도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복막투석 활성화 필요성…의료비 절감 효과 입증
남 의원은 복막투석 활성화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혈액투석은 병원투석 방식으로 매 주 3~4회 병원을 방문하여 회당 4시간 가량 투석을 받으며, 복막투석은 가정 및 회사에서 자가투석을 하는 방식으로, 집에서 잠을 자는 동안 하루 약 4시간 정도 투석을 할 수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복막투석 환자의 경제활동 참여 비율이 61%로, 혈액투석 환자의 34%에 비해 약 2배 높다. 치료와 일상생활 병행이라는 측면에서 혈액투석보다 복막투석이 환자의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준다.
보건복지부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혈액투석 환자의 진료비는 월 평균 257만원, 복막투석 환자의 진료비는 소모품구입비를 포함하여 월 평균 181만2,000원 수준으로 복막투석이 비용효과적이다.
복막투석을 활성화하면 환자의 삶의 질 향상뿐만 아니라 의료비 절감효과도 거둘 수 있다.
남 의원이 국회 입법조사처에 해외의 복막투석 활성화 제도 조사를 의뢰한 결과, “미국은 2025년까지 80% 환자가 신장이식을 받거나 가정투석을 받는 것으로 목표로 2019년부터 미국 국민을 위한 콩팥건강증진 계획 대통령행정명령을 시행하면서 의료기관의 가정 혈액투석 환자의 비율에 따라 가산 지급을 하며, 병원 혈액투석 환자가 많은 경우 감산 지급을 하는 방식을 도입하여 복막투석 활성화를 유도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이어 “올해 하반기가 대한민국 복막투석을 명맥이라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마지막 시기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며, “환자의 삶의 질 향상과 의료비 절감 효과가 있는 재택복막투석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적극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복막투석 관련 표는 (메디컬월드뉴스 자료실)을 참고하면 된다.
[메디컬월드뉴스 김영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