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분석: 가자전쟁 종전의 현실적 가능성 보이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냐

BBC 분석: 가자전쟁 종전의 현실적 가능성 보이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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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인 사건의 중심에 서는 것을 즐기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이는 극적인 순간이었다.

지난 8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주재하던 TV 생중계 회의 중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갑자기 들어왔다.

급히 루비오 장관으로부터 협상 타결 소식을 전 세계에 전해야 한다는 쪽지를 건네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회의 참석자들을 비롯하여 생중계를 시청하던 수백만 명에게 자신은 지금 가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 … 나는 몇 가지 중동 문제 해결을 위해 지금 가봐야 한다”는 말을 남기며 트럼프 대통령은 회의장을 떠났다.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이집트에서 3일간 간접 회담 끝에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협상안 1단계에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더 큰 합의로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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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오 장관에게 귓속말로 보고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회의 중 “나는 몇 가지 중동 문제 해결을 위해 지금 가봐야 한다”고 했다

카타르와 이집트 중재자들은 홍해의 이집트 휴양 도시 샤름 엘-셰이크 소재 한 호텔의 서로 다른 층에 머물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측 협상팀 사이를 오갔다.

협상에 힘을 더하고 이스라엘을 계속 압박하고자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와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를 현장에 내보냈다.

하마스 측을 위해서는 카타르 총리, 이집트와 튀르키예의 정보국장들이 이 같은 역할을 맡았다.

이번 합의가 중대한 돌파구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번 전쟁이 완전히 끝났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2년 전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이후 처음으로, 이 혼란을 끝낼 현실적인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크게 한 걸음 나아갔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번 합의에 따라 휴전 이후 여전히 남아 있는 이스라엘 인질들이 풀려나고, 그 대가로 팔레스타인 수감자 및 구금자들이 풀려날 예정이다.

또한 이스라엘군(IDF)은 현재 위치에서 철군할 것이다. 정부 대변인에 따르면 전체 가자지구 중 53% 지역에 남아있게 된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로의 인도적 지원 제한 조치를 완화해 하루 400대 분량의 트럭을 허용할 것이며, 물자는 UN 및 다른 기관의 지휘로 배분될 것이다.

논란의 가자 ‘가자인도주의재단(GHF)’의 경우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20개 조항 휴전 협상안에 언급되지 않았다. GHF는 이스라엘이 UN 시스템을 대체하고자 추진했던 것으로, 이미 신뢰를 잃은 상태다.

큰 한걸음이라 평가할 만한 내용이지만, 아직 종전까지는 갈 길이 멀다. 트럼프의 이번 협상안은 기본 틀로, 세부사항의 경우 협상을 통해 구체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넘어야 할 고비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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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합의에 따라 휴전이 이루어진 뒤 남아 있는 이스라엘 인질들이 모두 풀려나고, 그 대가로 팔레스타인 수감자와 구금자들도 모두 풀려나게 된다

우선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완전히 철수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하마스는 중화기를 내려놓겠다면서도 일부 무기는 계속 보유하겠다고 말한다. 네타냐후 총리는 가자지구의 완전한 비무장화를 원한다.

네타냐후 총리는 단순한 인질 귀환 그 이상을 얻어야 이스라엘이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들이 다시는 가자지구에서 재건되어 이스라엘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아예 궤멸해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해왔다.

과거 바이든 계획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나

지난해 5월, 조 바이든 당시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협상안과 유사한 내용을 제안한 바 있다. 당시 하마스는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철수하는 한편 이스라엘이 전쟁을 재개하지 않겠다는 약속만 한다면 이스라엘 인질들을 석방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는 이에 동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지난 2년간 줄곧 전쟁을 지속하는 것만이 인질들을 데려오고 하마스를 파괴할 유일할 방법이라고 강조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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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대통령은 단 한 번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외교적, 재정적, 군사적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한 바 없다

아마도 당시 바이든의 계획은 양측 모두에게 시기상조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과 과거가 다른 점은, 트럼프 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를 협상 테이블에 앉히고자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활용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전쟁 수행 방식에 우려를 드러내긴 하였으나, 바이든 대통령은 단 한 번도 이스라엘을 향한 미국의 외교적, 재정적, 군사적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한 바 없다. 2000lb(파운드)급 폭탄 공급만 한차례 허용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도움 없이는 전쟁을 이어갈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그러한 의존성을 활용하려 들지 않았다. 네타냐후 총리는 그런 그에게 자신이 반항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적, 정치적 지원을 이어오면서도 그 대가로 훨씬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도하 공격의 파급 효과

아울러 지난달 9일 결국 실패로 끝난 이스라엘의 도하 공습은 돌파구를 마련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날 이스라엘은 카타르 도하에 있는 하마스 지도부를 제거하고자 하였다.

주요 표적이었던 고위 지도자 칼릴 알-하야와 그의 최측근들은 공격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휴전 협상안에 대해 논의 중이었다. 이들 모두 살아남았으나, 알-하야의 아들은 숨졌다. 현재도 알-하야는 이집트에서 하마스 협상팀을 이끌고 있다.

이스라엘은 사전에 도하 공격 계획을 미국에 알리지 않았고,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격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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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카타르 도하에 있는 하마스 지도부를 겨냥한 공습을 감행하였다

네타냐후 총리가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회담을 요청해오자, 트럼프 대통령은 우선 카타르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제대로 사과하도록 압박했다.

그렇게 네타냐후 총리가 수화기를 들고 준비해온 사과문을 읽는 동안 전화기의 케이블은 팽팽히 늘어나 얼굴을 찌푸린 채 옆에 앉은 트럼프 무릎 위에 올려져 있었다.

백악관이 공개한 현장 사진은 마치 교장선생님이 잘못을 저지른 학생에게 사과하게 시키는 것 같았다.

이에 그치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은 카타르가 다시 공격받을 경우 안보 보장을 제공하겠다는 전례 없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카타르는 중동 최대의 미군 기지를 보유한 동맹국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더 광범위한 중동 평화 구상의 핵심 중 하나였기에 네타냐후의 사과가 꼭 필요했다.

이 평화안의 핵심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를 골자로 한 그랜드 바겐(대타협)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인해 미국은 친구조차 보호하지 못하는 동맹국처럼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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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휴전 협상이 중동에서 300년 만에 가장 큰 사건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야말로 웅장한 과장이다

과거와는 달라진 또 다른 점도 있다. 이스라엘군은 훨씬 더 많은 팔레스타인인을 살해했고, 가자지구의 더 많은 지역을 파괴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1948년 독립 이후 어느 때보다 국제 사회에서 고립된 상태다. 지난 9월 뉴욕에서 열린 UN 총회에서는 네타냐후 총리가 연단에 올라서자 여러 국가의 대표단이 대거 퇴장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미국은 여전히 이스라엘의 강력한 동맹국이지만,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더 이상 미국인 대다수의 지지를 얻고 있지 않다. 이 덕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 총리의 반대에도 결정을 밀어붙이면서도 국내 정치적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의 유럽 동맹국들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겠다며 나섰다. 이러한 유럽 국가들은 공개적인 성명을 통해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상과 파괴, 이스라엘의 원조 봉쇄로 인한 기아와 일부 지역의 기근 사태에 대한 우려를 지적했다.

이에 더해 9월 9일 도하 공격으로 아랍 및 이슬람 국가들은 새삼 긴박감을 느끼게 되었고, 이례적으로 연합하여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스라엘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달라고 촉구했다.

한편 만약 트럼프 대통령의 20개조 평화 협상안이 완전한 종전까지 이어지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압박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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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질들이 모두 돌아온 후에도 과연 네타냐후 총리는 전쟁을 재개할 명분을 찾을 수 있을까

이제는 인질들이 모두 돌아온 후에도 과연 네타탸후 총리가 전쟁을 재개할 명분을 찾을 수 있을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집권 연정 내 극우 민족주의 성향 인사들은 여전히 전쟁을 원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아주 좋아할 뿐만 아니라 가자지구 재건 및 재개발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기고 싶어 하는 부유한 걸프 국가들은 그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계속 트럼프 대통령을 압박할 것이다.

양측 모두에게 달콤쌉싸름한 기쁨

샤름 엘-셰이크에서 돌파구가 마련되었다는 소식에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모두 환영하고 나섰으나, 양측 모두에게 너무나도 많은 희생 끝에 얻은 달콤쌉싸름한 기쁨이다.

먼저 이스라엘에서는 인질 가족들과 그 지지자들이 인질 귀환을 위해 끊임없이 정부를 압박하며 시위를 벌여왔다.

여론조사에서는 대다수의 이스라엘 국민들은 생존자와 사망자를 포함하여 인질들이 귀환할 수 있다면 가자 전쟁을 끝낼 준비가 되어있다는 결과가 꾸준히 나왔다.

현재 생존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질은 약 20명이며, 하마스는 숨진 인질 28명의 시신도 돌려주는 데 동의했다. 다만 이들의 정확한 매장 위치를 확인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팔레스타인인들도 폐허가 된 가자지구에서 기뻐했다. 인질을 풀어주는 대가로 이스라엘은 종신형을 선고받은 수감자 250명과 지난 2년간 가자지구에서 체포하여 구금해둔 1700명을 석방하겠다고 합의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들을 영웅으로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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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인(사진)과 이스라엘인 모두 휴전 합의 소식에 기뻐했다. 그러나 양측 모두에게 너무나도 많은 희생 끝에 얻은 달콤쌉싸름한 기쁨이었다

다만 이스라엘은 2022년 체포된 이후 자국민을 노린 공격을 주도한 혐의로 종신형 5회에 추가로 징역 40년형을 선고받은 마르완 바르구티는 석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바르쿠니는 팔레스타인 주민들 사이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와 비교되는 인물이다. 넬슨 만델라는 인종차별적인 정권을 겨냥한 공격을 계획한 혐의로 27년간 복역한 후 석방되어 민주적 선거에서 승리한 바 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위험한 테러리스트로 지정한 주요 지휘관들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의 석방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이스라엘에 의해 사살된 10월 7일 공격의 주도자인 야히아 신와르는 실제로 2011년 포로 교환을 통해 풀려났다.

이 외에도 이번에 하마스 측이 요구한 석방 명단에는 2002년 유월절을 기념하던 이스라엘인 35명을 살해한 공격을 포함해 여러 공격을 꾸민 혐의로 종신형 35회에 징역 100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압바스 알 사이예드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1996년 예루살렘에서 버스를 폭파하고자 자살폭탄범을 보낸 혐의로 종신형 46회를 선고받은 하삼 살라마의 이름도 거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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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에 따르면 대다수의 이스라엘 국민들은 생존자와 사망자를 포함하여 인질들이 귀환할 수 있다면 가자 전쟁을 끝낼 준비가 되어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휴전 협상이 중동에서 300년 만에 가장 큰 사건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특유의 웅장한 과장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인질과 팔레스타인인 수감자 교환에 이어 합의가 필요한 일부 사안에서도 진전이 있다면 양측의 고통이 부분적으로나마 끝날 실질적인 가능성이 있다.

앞으로 펼쳐질 매우 험난한 협상 속 위험 요소에도 불구하고 낙관론자들은 이미 가자 전쟁 종식을 바탕으로 중동이 새 시대로 나아가길 바라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아직 보여주지 못한 수준의 실행과 일관성이 필요하다.

이집트에서 진행된 단기간의 집중적인 협상은 자신만만하고 강압적인 그의 스타일과 꼭 들어맞는다. 그러나 요르단강과 지중해 사이 땅의 지배권을 놓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지난 2세기간 벌이고 있는 이 분쟁을 완전히 끝내기 위해서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역량이 필요할 것이다.

Author: NEWS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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