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분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조용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수요가 높아지고 있는 산업 분야가 있으니 바로 전쟁 위험 보험이다.
지난해 11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의 고층 아파트에 자리한 나탈리아 그리슈코의 집은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크게 망가졌다. 다행히 그리슈코는 다치지 않았다.
그리슈코의 딸인 알리나 칼체바(33)에 따르면 미사일은 아파트에서 불과 100m 떨어진 지점에 떨어졌다.
“폭발의 충격으로 어머니 집의 발코니, 창문, 문, 내부 장식 등이 모두 망가졌습니다.”
칼체바에 따르면 처음에는 그리슈코도 “매우 상심이 커 울기도” 하였으나,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다행히 이러한 공격에 대비해 보험에 가입해두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일반적인 주택 보험에는 이러한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보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칼체바는 선견지명이 있었고, 어머니를 위해 특별히 전쟁 위험 보험을 가입해두었다.
그리고 그 덕에 보험사로부터 집 수리비로 1000달러(약 13만원)를 받을 수 있었다. 연간 보험료는 52달러에 불과하다.
칼체바는 “망설이지 않고 가입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는 옳은 선택이었다”고 전했다.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인인 예카테리나 바실리예바는 2024년 4월 차량용 전쟁 위험 보험에 가입했다. 이는 시기적절한 선택이었다. 보험에 가입한지 불과 하루 만에 해안 도시 오데사에 주차되어 있던 바실리예바의 차량이 러시아 포탄 파편에 의해 손상되었기 때문이다.
“차량 종합보험을 연장하던 날, 담당자가 군사적 위험 보험 가입을 권유했다”는 바실리예바는 “러시아의 공격으로 내 차는 갈가리 찢겼지만, 이 보험 덕에 큰 손해를 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전쟁 위험 보험’은 테러 등의 위험으로 발생할 수 있는 손실을 보장하는 보험 분야를 통칭하는 용어다. 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2001년 미국 9·11 테러 이후 이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개인 가입자도 있으나, 이 보험을 드는 고객 대부분은 전 세계 여러 곳에 사업장, 시설 등을 보유한 기업들이다. 특히 고위험 국가 혹은 지역에서 사업을 벌이며 직원들을 두고 있는 기업들이 많이 찾는다.
세상의 관심을 바라는 산업은 아닌지라 관련 데이터를 찾기 힘들지만, 업계 간행물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의 전쟁 위험 보험 가입 비용은 약 1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 금액 중 약 80%인 6억2100만파운드(약 8650억원)는 런던 금융가의 중심이자, 전 세계 전쟁 위험 보험 분야의 중심지인 시티 오브 런던 소재 보험사들이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런던 소재 보험사인 ‘웨스트필드 스페셜티’에서 팀원 9명으로 구성된 정치적 폭력 및 전쟁 위험 팀을 이끄는 조안나 커슨스는 서방 기업이 소유한 이라크 소재 대형 에너지 시설이 최근 몇 년간 여러 차례 공격을 받은 사례를 예시로 들었다.
커슨스는 해당 시설 소유주는 1억파운드 이상의 전쟁 위험 보험에 가입해 둔 상태였다면서, 보험이 없었다면 시설 운영을 “중단하거나 대폭 축소해야만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쟁 위험 보험 시장 관계자들은 일반적으로 보험료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하길 꺼린다. 다만 익명을 요구한 런던의 한 전쟁 위험 보험 언더라이터에 따르면 레바논이나 이스라엘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영국 혹은 미국 기업들의 경우, “현재 보험료는 가입한 총 보장금액의 0.5~ 2% 사이로 책정된다”고 귀띔했다.
‘언더라이터’란 보험사에서 보험 신청 건의 위험 수준을 평가하여 그에 따라 보험료를 산정하는 심사 전문가를 말한다.
보험료 범위가 0.5~2%라면, 연간 1억파운드의 보장을 원하는 기업은 50만~200만 파운드의 보험료를 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익명의 언더라이터는 이러한 비율은 “중동 내 여러 국가의 상황이 불안정하기에 크게 요동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걸프 국가 중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인 국가라면 보험료는 훨씬 낮은 수준으로, 총 보장금액의 0.025~0.05% 사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보험이 실제로 보장하는 범위는 다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업은 납치 및 몸값 요구, 중상 치료, 혹은 “공격자” 발생 상황에 대한 대응 비용 등을 보장받을 수 있다.
보험사 ‘뮤닉 리 스페셜티’의 테러 및 정치적 폭력 부문 그룹장이자 언더라이터인 다니엘 힐러는 “이 시장의 수용 능력과 수요 모두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객이 보장받을 수 있는 위험 종류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총기 난사 사건 관련 상품뿐만 아니라 미사일 공격이나 폭동 등에 대한 보험 상품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전쟁 위험 보장은 분쟁의 심각도에 따라 7가지 “범주”로 나뉜다.
사보타주(태업)와 테러는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전이나 국가 간 전쟁은 가장 높은 수준의 위험으로 분류된다.
런던 소재 전문 보험사 ‘트리거 파라메트릭’의 창립자인 라빔 이스마일은 “많은 보험사들이 이 모든 범위의 보장을 제공하고자 노력한다. 테러 위험이 내전으로, 혹은 국가 간 전쟁으로 어떻게 전개되는지 상황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런던은 1689년부터 전문보험의 중심지였던 로이즈 오브 런던(시티 오브 런던에 위치한 보험시장)의 지속적인 영향력 덕에 전쟁 위험 보험의 중심지로 손꼽힌다.
아울러 로이즈에는 전쟁 위험 보험의 재보험사, 즉 이러한 보장을 사고파는 기업들도 자리 잡고 있다.
커슨스는 “각 (재보험사가) 전체 위험의 1~10% 정도를 부담한다”면서 이러한 재보험을 통해 잠재적 위험 노출도를 분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미국 노던 콜로라도 대학의 금융학 교수이자 분쟁 금융 연구 전문가인 콘스탄틴 구르지예프는 전쟁 위험 보험 시장의 과제는 보험료 산정 기준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구르지예프 교수는 “전쟁과 분쟁은 일반적으로 블랙스완(발생 확률이 매우 낮은 사건)”이라면서 그렇기에 “역사적 데이터만으로는 보험료를 책정할 만한 근거가 부족할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스마일은 자동차 보험과는 달리 전쟁 위험 보험은 수익성이 매우 높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동차 보험사들은 보험료 1파운드당 거의 1.05파운드의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수학적으로 계산이 맞지 않아 보일 수도 있지만, 이스마일에 따르면 차량 보험사들이 보험료 1파운드당 5펜스 이상의 투자 수익을 창출하기에 가능한 상황이다.
반면 전쟁 위험 보험은 실제 보험금 지급 비율이 2%에 불과할 수도 있다. 간단히 말해, 자동차 사고는 전쟁 피해보다 훨씬 발생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