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K-컬처 시대 ‘지역 예술’

[문화산책] K-컬처 시대 ‘지역 예술’

K—컬처는 이제 더 이상 ‘유행’이 아니라 세계문화의 한 축이 됐다. 케이팝 스타들의 월드투어는 유럽과 미주 대륙을 돌며 매진을 기록하고 한국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영화는 세계 각국의 OTT 플랫폼을 점령한다. ‘K—컬처’라는 이름은 이제 국가 브랜드이자 산업의 동력이 됐다.

 

K—컬처의 성공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전국 곳곳의 공연장과 작은 무대에서, 이름 없는 예술가들이 흘린 땀과 눈물이 모여 세계적 성과의 토양이 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이 토양을 튼튼히 가꾸기보다 자극적인 단기 성과에 매달리며 오히려 그 뿌리를 약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의 K—컬처 성공담은 대부분 수도권, 대형 기획사 중심의 이야기다. 지역 예술인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여전히 열악하다. 공연장이 턱없이 부족하거나 예산이 연말 일회성 행사로 쏠려 지속성을 담보받기 어렵기도 한다. 행정 지원의 대부분이 ‘프로젝트 단위’로 이뤄지다 보니 예술가의 자립성과 장기적 성장 기반이 흔들리는 것이다.

 

지원금은 해마다 반복되지만 대부분이 일회성 사업으로 소모된다. 창작의 자율성을 존중하기보다 성과와 효율 중심의 지표를 맞추는 데 치중하다 보니 현장은 무난하고 비슷한 축제들로 채워진다.

 

지역 예술 지원사업은 애초에 경제적 자립이 힘든 예술인을 보호하려는 취지에서 출발했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지원 없이는 활동이 불가능한 구조를 고착화시키고 있지 않은지 반성이 필요하다. 공모사업의 서류와 형식에 익숙한 이들에게 기회가 집중되고 그 결과 지역의 독창적 콘텐츠는 발굴되지 못한 채 ‘비슷비슷한 전시와 공연’이 양산된다. 중앙과 지역 모두가 ‘성과’라는 숫자에만 매달리는 동안 진짜 집중돼야 할 창작의 에너지는 서서히 소진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희망도 있다. 몇몇 지방자치단체는 지역 고유의 역사, 자연, 생활문화를 기반으로 ‘작은 K—컬처’를 실험하고 있다. 지역 예술가와 주민이 함께 만드는 공동체형 페스티벌, 전통예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연, 일상 속에서 지속 가능한 문화 생태계를 조성하는 프로젝트가 그 예다. 이런 시도는 ‘수출 가능한 콘텐츠’일 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문화’로서 K—컬처의 토대를 단단하게 한다.

 

세계 무대에서 K—컬처가 더 오래 빛나려면 그 뿌리인 지역 예술이 건강해야 한다. 지역 예술은 단순히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모객형 이벤트’여서는 안 된다. 창작자들이 실험하고 성장하는 토양이 돼 줘야 한다. 중앙과 지역, 지원자와 예술가 모두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가치를 중시하는 태도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K—컬처의 성공을 진정한 ‘문화강국’으로 이어가려면 스포트라이트가 닿지 않는 곳을 바라보는 눈이 필요하다. 지역 예술 현장은 그저 ‘낙후된 변방’이 아니라 한국문화의 다양성이 혼종된 문화 생태계를 키워 가는 모판이다. 그 모판이 건강할 때 K—컬처는 비로소 일회성 유행을 넘어 세계 속에서 지속가능한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뿌리를 지키지 않는 나무가 오래 설 수 없듯 지역 예술을 외면하는 K—컬처의 빛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화려한 무대 뒤에서 묵묵히 뿌리를 지켜온 지역 현장을 돌아보며 함께 이끌어 나갈 때 우리는 K—컬처의 진정한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다.

Author: NEWS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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