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좋은 추억’ 언급한 김정은의 속내는?

‘트럼프와 좋은 추억’ 언급한 김정은의 속내는?

AFP via Getty Images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연설에서 “트럼프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갖고 있다”라고 언급하며 비핵화를 요구하지 않는다면 북미 회담에 나설 의지가 있음을 내비쳤다.

22일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전날 최고인민회의 연설 상당 부분을 할애해 미국과 한국을 언급, ‘한반도 비핵화’ 요구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음을 강조했다.

이러한 북한의 ‘비핵화 불가’ 입장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2018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후 미국과의 대화를 계속 거부해왔던 김정은이 ‘조건부’이긴 하지만 대화 재개 의지를 직접 드러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트럼프에 대한 좋은 추억’

김 위원장은 연설을 통해 “만약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리고 현실을 인정한 데 기초해 우리와의 진정한 평화공존을 바란다면 우리도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라며 “나는 아직도 개인적으로는 현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갖고 있다”라고 밝혔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BBC에 해당 대목을 이번 연설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이라고 말하며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 요구를 하지 않는다면 트럼프 대통령과 만날 수 있다는 걸 분명하게 얘기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달 초 중국에서 열렸던 북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이 김정은에게 비핵화에 대해서 한마디도 안 했는데, 이에 김정은이 자신감을 얻었을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연구소 교수는 “이 발언은 단순한 회상 이상으로, 트럼프의 개인적·거래 중심 스타일을 활용하려는 고도의 전략”이라며 “트럼프의 자존심과 ‘딜메이커’ 이미지를 자극해, ‘빅딜’ 가능성을 떠보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김 위원장에 대한 호감을 드러내며 대화 의지를 드러내왔다면, 이번 김 위원장의 발언은 이에 대한 “맞춤형 호응”이라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 백악관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김 위원장을 올해 만나고 싶다고 언급한 바 있다.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다음 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깜짝 만남’을 추진할지도 관심사다.

다만 올해 안에 북미 대화가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정 부소장은 과거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며 그가 김 위원장의 ‘조건’을 수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면서도 “다만 미 국무부는 북한 비핵화를 계속 추구한다는 입장을 보였기 때문에 지금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아직까지 입장 조율이 충분히 되지 않고 엇갈린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볼 수 있다”라고 했다.

이어 북미 대화가 다시 이뤄진다면 “판문점 북측, 또는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가 유력한 장소가 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결국 트럼프가 비핵화를 포기하고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승인하면 회담하겠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실제로 회담이 이뤄질 가능성은 높진 않다”라고 봤다.

“북한의 (핵보유국 인정) 요구를 들어줬다가는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 자체가 흔들리거든요…북한을 인정하고 나면 북한 같은 방식으로 어느 나라나 다 핵보유국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걸 외교적으로 인정하기 쉽지 않죠.”

임 교수도 김 위원장이 “트럼프에 대한 “좋은 추억” 언급은 대화 여지를 남긴 듯 보이지만, 비핵화 거부와 ‘평화공존’ 조건을 까다롭게 설정해 실질적 협상 가능성을 낮췄다”라고 평가했다.

‘한국과 그 무엇도 함께하지 않을 것’

김정은 위원장은 이번 연설을 통해 한국과의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오 위원은 이번 연설을 통해 북한이 한국은 협상 상대가 아님을 다시 한번 명확히 했다며, 북미 대화가 이뤄지더라도 양 정상이 “이전처럼 판문점에서 만날 가능성은 낮다”라고 예상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는 한국과 마주 앉을 일이 없으며 그 무엇도 함께하지 않을 것”이라며 “일체(일절) 상대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다”라고 했다.

이는 윤석열 전 정부와 다르게 대북 유화책을 펼치고 있는 이재명 정부에도 ‘적대적 두 국가’ 관계가 유효함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다.

앞서 김정은은 2023년 남북 관계를 “동족 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인 두 교전국 관계”, 즉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바 있다. 이는 김일성·김정일 등 선대의 유훈을 부정하는 것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다만, 앞서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명시하는 헌법 개정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추측과 달리 김 위원장은 연설에서 ‘적대적 두 국가’ 개념을 “국법으로 고착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정 부소장은 해당 내용으로 헌법을 개정하려면 남측 경계선에 대해 얘기해야 하고, 그럴 경우 북한이 인정하지 않는 정전협정을 인정하게 되는 등 여러 복잡한 문제가 있어 이를 헌법에 반영하는 것이 지연되고 있다고 봤다.

만약 ‘비핵화’ 의제를 제외하고 북미 대화가 이뤄질 경우, 지난 여러 정부에 걸쳐 ‘한반도 비핵화’와 통일을 주장해온 한국의 입장과 정치적 셈법은 복잡해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완전한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를 위해서 성과 없는 시도를 계속할 것이냐 아니면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일부라도 그 목표를 이뤄낼 것이냐가 문제일 것”이라며 북한이 핵무기를 완전히 폐기하는 대신 당분간 생산을 동결하는 데 합의할 경우, 이에 동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Author: NEWS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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