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 BBC 인터뷰: ‘북한 핵동결, 잠정적 응급조치로 동의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 BBC 인터뷰: ‘북한 핵동결, 잠정적 응급조치로 동의할 수 있다’

이재명 한국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한의 핵무기를 완전히 폐기하는 대신 당분간 생산을 동결하는 데 합의할 경우, 이에 동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북한에서는 1년에 15~20기 정도의 핵무기가 계속 추가되고 있다며 핵동결은 “일종의 잠정적 응급조치”이자 “실현 가능하고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 2022년 스스로 핵보유국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고 결코 핵무력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과거 북한과의 협상 시도는 모두 실패했으며, 이후 북한은 모든 대화 재개 제안을 거부해 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장기적인 비핵화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 한,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현 상태에서 멈추는 것에는 유익한 점이 분명히 있다”라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완전한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를 위해서 성과 없는 시도를 계속할 것이냐 아니면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일부라도 그 목표를 이뤄낼 것이냐가 문제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6월 취임한 이후부터 북한과의 평화로운 관계를 구축하고, 전임 윤석열 대통령 시절 고조된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는 것을 목표로 해왔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이후 탄핵당해 대통령직에서 파면됐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핵 협상을 재개하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해당 협상은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중인 지난 2019년, 미국이 북한에 핵시설 폐기를 요구한 이후 결렬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약간의 신뢰도 있는 것 같다”라며 양측이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을 “현실적 가능성도 상당 정도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를 통해 남과 북, 미국이 원하는 세계 평화 및 세계 안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가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BBC/이호수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핵 협상을 재개하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이번 BBC 인터뷰는 이재명 대통령의 22일 유엔 총회 참석을 앞두고 서울 집무실에서 진행됐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인 한국은 현재 안보리 의장국을 맡고 있다.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는 수년간 북한의 핵 프로그램에 대한 추가 제재를 지속적으로 저지해 왔다.

이 대통령은 “지금 유엔의 역할이, 예를 들면 정말로 평화롭고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데는 부족한 점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엔이 많은 역할을 실제로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유엔 안보리 구조 재편성에 대해서는 “별로 현실적이지 않은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중국이 현재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이 대통령은 “그건 알 수 없다”라면서도 현재까지 그가 파악한 바로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이달 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베이징에서 열린 열병식에 참석한 김정은 위원장을 환대했다. 열병식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참석했다. 과거 북중정상회담과 달리 이번 회담에서 중국은 북한의 핵무기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하거나 비핵화를 촉구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열병식에서 드러난 중국과 러시아, 북한 간의 밀착이 한국을 “매우 힘든 상황”에 처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러시아, 북한이 저렇게 아주 강력하게, 밀접하게 결합돼 가는 장면이 우리로서는 그렇게 바람직하거나 좋은 장면은 분명히 아닙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 일본과의 협력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역사적으로 한국은 군사 동맹국인 미국과, 무역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는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외교적 줄타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 대통령은 최근 새롭게 형성되는 세계 질서 속에서 미국과 보조를 맞추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 대통령과의 대담에서 그가 이 과정에서 적을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 분명해졌다.

한때 진보 성향의 강경한 야당 지도자였던 이 대통령은 현재 자신을 중도 성향으로 내세우고 있다. 변화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한국의 입지를 조율하기 위해, 그는 발언과 입장을 신중하게 선택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전 세계가 두 진영으로 나뉘고 있는데 사실 한국이 그 경계선에 있다”라며 한국이 중국과 러시아 등에 인접한 “지정학적으로 매우 위태로운 위치”에 있음을 지적했다.

“매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측면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 보면 이 양 진영이 완전히 문을 닫고 영원히 적대적인 관계로 단절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한쪽 진영의 끝이 아니라 양 진영이 교류하는 중간쯤에 위치하도록 할 수도 있는 것이죠.”

이 대통령은 향후 러시아와의 관계도 배제하지 않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기간 북한과 군사적 협력 관계를 구축했으며, 무기와 병력 제공의 대가로 식량, 석유 그리고 막대한 자금을 북한에 지원해 왔다.

그는 “러시아가 국제법을 위반하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고 또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점도 분명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가 간 관계라는 것은 단선적이지 않기 때문에 협력할 부분들을 최대한 찾아 협력하고 또 서로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 서로 노력해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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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백악관에서 회담을 가졌다

이재명 대통령의 이런 신중한 태도는 이해할 수 있다. 미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의 위험성은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미국의 우방국과 적국 모두가 트럼프 대통령의 현재진행형인 무역전쟁에 휘말리고 있다.

이 대통령은 한국의 관세를 15%까지 낮추는 데 성공했으며, 최근 백악관 방문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같은 모습이 연출됐다.

그러나 2주 전, 미국 이민 당국은 조지아주 자동차 배터리 공장 건설에 투입된 한국인 근로자 수백 명을 구금했다. 이 공장은 한국이 미국 내 제조업 이전과 수천억 달러 투자 약속의 일환으로 추진된 사업이었다. 이재명 정부는 일주일 만에 근로자들의 석방을 이끌어냈다.

이 대통령은 해당 사태를 “충격적인 일”이라고 표현하며 “우리 국민들이 체포되고 구금되는 가혹 행위를 당한 점에 대해서는 대통령으로서 매우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 기업들이 “대미 투자에서 상당히 망설이는 경향”이 생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이번 사건이 한국과 미국의 관계를 더 강화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

AFP via Getty Images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실패한 지 6개월 만인 지난 6월,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내부적으로는 전임 대통령의 군사 쿠데타 시도 이후 수개월간의 정치적 혼란으로 흔들리고 양극화된 나라를 이끌고 있다. 현재 구속 상태인 윤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무기징역까지도 선고받을 수 있는 재판이 진행 중이다. 윤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북한과의 긴장을 고조시켰다.

윤 전 대통령은 국가 기관이 종북 세력들에게 잠식당했다는 명분을 내세워 그의 계엄령을 정당화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제 이 대통령은 현재 북한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취임 후 한국 정부가 북한으로 송출하던 라디오 방송을 중단시켰다.

김정은 위원장이 이 방송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이는 점점 더 고립되는 북한 주민들이 외부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 중 하나였다. 이 조치는 인권 단체들의 비판을 받았다.

이 결정에 대해 질문하자, 이 대통령은 “현실적으로 본다면 [라디오 방송은] 거의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한다”라고 답했다. 그는 그 어떤 이익도 북한의 적대적 감정을 키우는 비용을 능가할 만큼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중요한 것은 남북 간의 신뢰 회복입니다. 특히 바로 직전 정부가 북한에 대해서 너무 과도했기 때문에 이런 선의의 조치들이 북한의 대화 복귀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합니다.”

북한은 계속해서 “허망한 망상”이라며 이 대통령의 유화 제스처를 거부해 왔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현실을 잘 인식하고 있다. 그는 한반도 평화로 가는 가장 현실적인 길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임을 알고 있으며, 이 길이 새롭게 그려져야 한다는 점도 알고 있다.

실용주의자로 보이기를 열망하는 이 대통령은, 과거 대통령들과는 달리 북한의 핵무기를 협상만으로는 폐기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 적어도 당분간은 그렇다.

Author: NEWS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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