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이게 미술 작품일까? 만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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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승철(37) 작가의 작품을 처음 보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그는 일본 만화·애니메이션 속 등장인물 같은 얼굴을 강조한 작품을 꾸준히 선보여왔다. 예술적 깊이나 창의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기성 미술계가 옥 작가의 작품에 대해 내리는 평가는 엇갈릴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감각적인 이미지를 좋아하는 MZ세대들은 그의 작품에 열광한다는 사실이다.
옥 작가의 작품 세계를 보다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전시가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15일 개막한 개인전 ‘프로토타입’(Prototype)이다. 옥 작가의 초기 작업부터 신작까지 회화·조각 등 80여 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전시 제목인 ‘프로토타입’은 ‘시제품’이라는 뜻. 옥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프로토타입’은 원본이 되는 디지털 데이터를 기반으로 전시장 안에서 출력·가시화된 형식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다소 복잡하고 어려운 설명이지만, 전시를 찬찬히 보다 보면 그의 설명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관람객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은 십자 형태의 통로다. 양쪽 벽으로 늘어선 녹색 조명이 가상의 공간 같은 낯선 느낌을 자아낸다. 옥 작가는 “출구와 경계가 모호한 십자 통로는 이번 전시의 포인트 중 하나”라며 “관객에게 디지털 세계에 ‘로그인’ 하듯 각각의 전시장으로 넘어가는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십자 통로로 연결된 3개의 전시장은 각각 △프로토타입-1 △프로토타입-2 △프로토타입-3 등으로 이름 붙였다. 관람객은 각 전시장에서 옥 작가의 작품이 어떻게 복제되고 새롭게 구성되는지 확인할 수 있다. ‘프로토타입-2’에서 전시 중인 작품 ‘헬멧’과 ‘미믹’이 대표적이다. 각기 다른 각도로 그린 인물의 얼굴을 통해 어떻게 복제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감상을 하게 된다는 걸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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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과 같은 제목의 신작 회화 ‘프로토타입’도 옥 작가가 지향하는 작업 세계를 잘 보여준다. 단발머리를 흩날리며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여성의 얼굴을 그린 그림인데 눈동자가 없어 공허하게 다가온다. 원본과 복제의 구분이 사실상 의미 없는 디지털 세계의 본질을 이야기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시의 또 다른 볼거리는 조각이다. ‘프로토타입-1’에 들어서면 높이 2.8m에 이르는 대형 조각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 신작 조각의 제목 또한 ‘프로토타입’이다. 똑같이 생긴 얼굴 조각 세 개가 나란히 서 있는 풍경은 그 자체로 압도적이다. 동시에 옥 작가가 단순히 일본 만화·애니메이션 속 등장인물 같은 얼굴을 그리기만 하는 것이 아닌,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이번 전시만으로 옥 작가의 작품을 미술과 만화 중 어느 범주로 받아들여야 할지 명확한 답을 내리기 어려울 수 있다. 다만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기 좋아하는 MZ세대에게는 감각적인 이미지로 가득한 이번 전시가 충분히 매력적일 것이다. 전시는 10월 26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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