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펜젤러 2세 회고록, ‘내가 겪은 세 개의 한국‘ 첫 공개

아펜젤러 2세 회고록, ‘내가 겪은 세 개의 한국‘ 첫 공개

‘내가 겪은 세 개의 한국’ 회고 글(사진=배재학당역사박물관)

배재학당역사박물관은 광복 80주년을 맞아 기획한 ‘해방정국과 배재학당’ 특별전에서 아펜젤러 2세의 ‘내가 겪은 세 개의 한국’ 글을 최초 공개한다고 17일 밝혔다.

아펜젤러 2세인 도지 아펜젤러의 회고 글은 1951년 10월 부산에서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6·25 전쟁 당시 기독교세계봉사회의 한국 책임자로서 구호 활동에 나섰던 그는 ‘내 어린 시절의 한국’, ‘일본의 한국’, ‘해방된 한국’으로 나눠 그가 겪은 한국을 기록했다.

도지 아펜젤러는 “내 어린 시절의 한국은 진정한 한국인의 나라”라고 기억한다. 그는 “한국에서는 남자들이 상투를 틀고 말총 갓을 쓰고 있었다”면서 배재학당 학생들이 머리를 자른 것은 ‘상당한 혁신’이라고 회상하기도 한다.

고종(재위 1863∼1907)을 만났을 때 어색한 한국어로 인사하자 왕이 크게 웃었던 기억과 제물포(인천)에서 서울을 잇는 철도 개통 등 당시 상황에 대한 언급도 많다.

도지 아펜젤러의 시선은 ‘일본의 한국’ 즉, 일제 강점기를 기록한 대목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1917년 선교사로 다시 한국에 온 그는 “한국의 주권이라는 환상은 1910년 8월 29일 완전한 식민지 병합으로 곧 사라졌다”며 “더 이상 자유로운 나라가 아니었다”고 짚었다.

“1917년 내가 받은 첫인상은 부산 부두에서 일본인이 한국 인부를 발로 차는 모습을 보았을 때 불쾌한 것을 참아야 하는 굴욕감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내가 이후에 보게 될 것과 경험할 것에 비하면 가벼운 편이었다.”

도지 아펜젤러는 1916∼1919년 조선 총독을 역임한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 총독을 향해 ‘도살자’라는 별명에 걸맞게 행동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3·1운동 이후 일제의 탄압과 관련해 “민간인 불량배들의 부추김을 받아 밤마다 시위대에 난입해 무자비하게 구타하고 총검으로 찔렀다”고 증언했다.

도지 아펜젤러는 한국이 주권을 회복한 해방 정국 상황도 직접 목격했는데, “의사당 건물(the capitol building·조선총독부 건물을 뜻함) 앞에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란히 펄럭였다”고 회상했다.

김종헌 배재대 교수(건축학과) 겸 배재학당역사박물관장은 “아펜젤러 2세는 ‘세 개의 한국’을 모두 겪으며 우리 근현대사의 장면을 실감 나게 표현하고 생생하게 기록했다”며 “그 자체로 역사”라고 강조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배재학당의 60년 역사와 교육 활동을 정리한 ‘배재환갑'(Pai Chai’s Whangap), 배재 학생들의 3·1운동 1주년 기념 만세운동 진술서 등도 함께 볼 수 있다.

특별전은 내년 8월 14일까지 이어진다.

Author: NEWS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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