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의 음악에 존재하는 수많은 유라들에게.
AMOMENTO, 드레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뮤지션 유라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그를 닮은 그의 고양이들 앵두, 너부리, 동동, 감식초를 보면 된다 (반려묘 인스타그램 계정 @put.your.pawsup이 있다). 사실 진짜는 그가 만든 음악에서 모두 발견할 수 있다. “그때 가장 솔직한 나의 마음, 나를 잘 투영한 문장은 모두 제 음악에 담겨 있어요”라고 말하는 유라에게 그가 쓴 가사를 빌려 그때와 지금의 나에 대한 질문을 건넸다. 어제와 오늘의 유라가 품은 생각들.
▶ My“참 예쁘던 우리의 어린 날들과 잊혀져가던 나의 고향과 크고 넓지 않던 우리의 꿈까지”
데뷔곡이다. 그때의 꿈과 지금의 꿈, 변화가 있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고향에 대한 향수를 품고 꿈을 키워나가는 건 여전히 똑같다. 다만 이제는 고향이라는 곳이 지치고 힘들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기분 좋게 언제든 돌아갈 곳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도피하듯 갔고, 막상 머물면서는 서울에 얼른 가서 뭐라도 해야 하는데 하면서 조급하고 불안해했다. 지금은 고향에 있는 바다처럼 마음이 넓어졌을 때, 내 꿈의 크기보다 마음의 크기가 넓어졌을 때 내려가고 싶다.
▶ Rawww “과거의 상처는 오늘의 나를 정의해”
요즘 가장 아끼는 것은?
나 자신. 몸 관리를 잘 못 해서 최근 고생을 엄청 했다. 또 내적으로도 나라는 존재를 조금 더 잘 살펴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자기 검열도 많이 하고, 자기부정도 잦은 편이라 그 강박을 좀 내려놓고 싶다.
▶ 슈뢰링가링가고양이 “고양인 청순한 그림이야”
고양이의 어떤 점을 가장 사랑하나?
고양이는 내가 알지 못하던 미묘하고도 무궁한 감정이나 생각을 계속해서 인지하게 만든다. 특히 행복이라는 감정의 영역을 고양이들이 많이 알게 해주었다. 고양이는 나에게 영감의 원천이기도, 페르소나이기도 하고, 내가 쓰는 문장의 가장 주요한 플롯이 될 수도 있다.
▶ 숨을 참는 괴물 “세상 모든 존재가 영원할 것 같아요”
무엇이 영원하길 바라나?
“우리는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는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이 있지 않나. 강물은 계속 흐르니까, 곧 영원한 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변화하는 삶 속에서 영원한 게 있다면 그리움이나 사랑이지 않을까. 그래서 나 역시 음악을 통해 계속 사랑을 말하게 되는 것 같다.
▶ 춤 “아무 생각 하지 말고 춤을 춰 춤을 춰 춤을 춰 춤을 춰”
나를 춤추게 만드는 음악은?
영화 OST. 재미있거나 잘 추는 춤은 아니겠지만, 자유로워질 수 있는 행위가 가능한 음악들이 있다. 영화 <미나리> <해피엔드> <부르탈리스트>, 그리고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나오는 곡을 특히 좋아한다. 좋은 영화를 본 후 영화관을 걸어 나올 때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지 않나? 벅차서 둥실둥실 떠오르는 기분이랄까. 영화 OST를 들으면 그때의 기분이 다시 생각나곤 한다.
▶ 무한 허무함의 패턴 “난 노래한다 아, 형체가 없고 오, 불완전하다 아”
유독 더 노래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면?
노래를 한다는 건 가사처럼 형체가 없는 것이지 않나. 공연하다 보면 지금 나의 노래가 공중에 사라져버리는 것만 같아 허무감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런 허무주의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 쓴 가사인데… 그 마음을 딛고 일어나 노래를 하고 싶어질 때는 안아주고 싶은 사람들을 마주할 때다. 내가 꿈꾸는 이 직업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 누군가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로 인해 내가 무언가를 가지거나 받지 않아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오롯이 베풀기만 해도 되는 상태로 노래하고 싶다. 아, 그런데 너무 꽉 안는 건 좀 부담스럽다.(웃음) 가볍게 탁 안아주는 정도가 좋다.
▶ 무수히 “무수의 생떼가 지고 비로소 잠이 든 거야”
잠들지 못하는 밤엔 어떻게 보내나?
이 가사가 매일의 내가 보내는 새벽 시간이다. 생각이 너무 많다. 불면의 밤이 점점 더 늘어난다. 내가 타인에게 한 행동들, 타인이 내게 한 말들, 그때를 거슬러 올라가서 ‘이랬다면…’ 하는 상상들, 앞으로는 이런 걸 해봐야지 하는 유의 미래에 대한 생각 등 무수한 생각이 밤부터 새벽을 채운다. 비로소 말고, 바로 잠드는 시간이 필요하다.
▶ 시간을 아우르는 공 “늘 새로울 수는 없지 이 졸고 있는 새로움아”
새로움. 창작자의 갈망이자 고통의 근원이기도 하다.
새로움에 대해 정의 내리는 것부터 힘든 일이다. 남들이 추구하는 새로움, 독특함, 신선함이 과연 내게도 맞는 걸까. 나에게 새로운 건 뭘까. 낡은 시도를 답습하고 싶진 않은데. 머릿속이 이런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쓴 가사다. 지금은 시선이 좀 달라졌다. 누구나 처음 사는 삶이지 않나. 그러니 우리는 모두 매일매일 새로워지는 사람이다. 이런 시선을 갖게 된 후론 새로움에 얽매이지 않고 마주하는 경험들을 잘 쌓아두자, 그걸 음악으로 잘 표현해보자 생각한다.
▶ 동물원 “난 향기로운 소란이 되어서 뒤돌아보지 말고 가자 미안해하지 말고 가자”
어디로든 자유로이 떠날 수 있다면, 어디로 어떤 방식으로 떠나고 싶나?
내가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는 때가 올지 모르겠다. 고양이들을 두고 오래 떠나지 못해서. 한편으론 꼭 어딘가로 떠나야 자유로울 수 있나 싶다. 언제든지 자유롭게 떠날 수 있다. 그게 장소의 이동이 아니더라도, 생각의 전환만 일어난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도 가능하다. 본질은 무엇이든 충분히 느낄 수 있을 만한 여유가 있는지의 여부인 것 같다. 그래서 요즘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 풍경에 대해서도 소중하게 받아들이려 한다. 그럼 사는 게 좀 아름다워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