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초등생 용변 사건으로 일선학교 소풍기피 확산
소풍 사고시 교사 민형사 책임 면제에도 기피 심각해져
베이비붐 때 소풍은 인생 학습장, 구시대 유물 인식 곤란
사고예방 중요하나 학생의 소중한 권리마저 빼앗아선 안돼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2017년 5월, 대구의 한 초등학교 6학년 담임교사가 천안 독립기념관으로 현장체험학습(소풍·견학)을 가던 길에 여학생을 학대했다는 이유로 직위해제됐다. 고속도로 위에서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진 여학생을 버스 안에서 용변을 보게 하고 부모와 연락한 뒤 가까운 고속도로 휴게소에 내려준 게 화근이었다. 학부모는 딸을 홀로 1시간가량 휴게소에 있게 한 건 아동학대라며 경찰에 신고했고, 소송으로 번졌다. 법원은 교사를 벌금형에 처해 교단을 분노로 들끓게 했다.
초등생 소풍 유기 사건은 3년 전 세월호 사태로 힘을 얻은 소풍 폐지론에 기름을 부었다. 청와대 게시판에는 “교사에게 무슨 잘못이 있느냐. 차라리 없애자”는 청원이 등장했다. 한편에선 소풍은 학창 시절 소중한 추억이자 사회 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할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는 필수 교육 중 하나라며 없애면 안 된다는 목소리도 일었지만, 자식을 애지중지 키우는 ‘신세대’ 부모들의 성화에 묻혔다. 이 사건은 학기 중 가족여행 등 학생 개인의 야외 활동이 현장학습으로 대체되는 계기가 됐다.
소풍 중에 일어난 사고에 대해 교사의 민형사상 책임을 면제해주는 학교안전사고예방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 두 달 가까이 지났지만, 일선 학교의 기피 현상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고 한다. 올해 서울 지역 학교의 경우 소풍 및 견학 건수가 지난해보다 36%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교는 소풍에 학급당 1명의 인솔 인력을 지원하는 등 각 시도 교육청이 사고 예방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백약이 무효인 듯하다.
1982년까지 한 해 출생아 수는 최대 100만명에서 최소 80만명 수준이었다. 23만명인 지난해에 비하면 최대 4배 차이가 난다. 1980년대 후반만 해도 서울의 한 학급 학생 수가 평균 70명이었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교사들이 어떻게 그 많은 학생을 가르치고 소풍 때 인솔할 수 있었는지 경이롭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개도국 시절 소풍은 콩나물시루에 갇혀있던 학생들에게 유일한 쉼터였지만 가난했던 많은 이에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도시락을 가져오지 못한 게 부끄러워 나무 숲에 숨어야 했던 많은 제자에게 선생님은 손수 준비한 김밥을 슬쩍 건넸고, 아이들은 덕분에 ‘엄마의 정성’이 담긴 김밥을 서로 나누며 봄날을 만끽할 수 있었다. 소풍을 일제와 군사독재의 어두운 유산이니 하는 이념 프레임으로 재단할 수 없는 이유다. 더구나 일본에선 소풍을 엔소쿠(遠足:원족)로 부른다.
학교 안전사고 예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아이들의 권리마저 빼앗는 것 또한 지나치다. 고유의 한자어인 소풍(逍風)은 바람을 맞으며 노닌다는 뜻이다. 사교육에 갇힌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봄바람을 쐬며 즐겁게 노닐게 하는 게 이리도 어렵다니 세상이 너무 각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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