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zine] 동서양의 교차로 튀르키예 ④ 튀르키예의 파인 다이닝

[imazine] 동서양의 교차로 튀르키예 ④ 튀르키예의 파인 다이닝

(이스탄불=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고대 우리의 이웃이었던 튀르키예는 수세기를 아우르는 유라시아 횡단의 대장정을 거쳐 오늘날 그 자리에 이르렀다. 이 유구한 이동의 궤적 속에서 터키는 수많은 문화를 흡수하고, 동서가 맞닿는 문명의 교차로에서 독창적인 정체성을 빚어냈다.

유목민 특유의 식문화를 품었고, 동로마 제국을 계승하며 서구의 식문화와도 절묘한 융합을 이뤄냈다. 이처럼 장대한 역사와 다채로운 문화의 깊이가 켜켜이 축적된 터키가 오늘날, 파인 다이닝의 새로운 성지로 각광받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오디 우를라의 야외 식탁 [사진/성연재 기자]

◇ 이즈미르 지역의 친환경적인 레스토랑들

이즈미르의 고요한 해안 마을 우를라(Urla)는 올리브 숲, 과수원, 포도밭으로 둘러싸인 천국이다.
우를라는 이즈미르 시내에서 차로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평화롭고 느긋한 에게해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마을에 도착하면 올리브 향 가득한 바람과 함께 따뜻하고 친근한 현지인들이 방문객을 반긴다.

오디 우를라의 창작적 메뉴 [사진/성연재 기자]

우를라의 ‘오디 우를라'(OD Urla)는 이즈미르의 풍요로운 토양과 식재료를 한 접시에 담아낸다.

장작불에 구운 오징어 요리, 콜라비와 허브로 장식한 모던한 홍합 요리, 동굴 숙성 블루치즈와 완두콩을 곁들인 쿠스쿠스까지 독창적인 조리법이 인상 깊다. 오스만 세제넬 셰프는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현지 재료의 특성과 계절감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이곳에서 맛볼 수 있는 튀르키예 토착 품종인 오퀴즈교즈 와인과의 조화도 훌륭하다.

아스마 야프라으의 직접 키운 식재료로 만든 요리 [사진/성연재 기자]

에게해 연안의 알라차트에 위치한 ‘아스마 야프라으’는 허브 향 가득한 정원에서 튀르키예 가정식을 계절별 테마로 풀어낸다.

이곳은 미슐랭 그린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으로, 자가 농장에서 키운 식재료로 메제를 만든다.

소량의 여러 요리로 나오는 메제는 일종의 전채요리가 되기도 하고 음식을 먹을 때 입맛을 돋워 준다.

이 레스토랑에선 장작불로 조리하고, 식재 폐기물은 퇴비로 활용하는 등 친환경 시스템이 정착돼 있다.

애호박꽃에 치즈와 허브를 채운 요리, 매스틱 수액을 넣은 우유푸딩, 아티초크 요리까지 모든 음식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정성스럽다.

와이너리에 세워진 마흐젠 레스토랑 [사진/성연재 기자]

이즈미르 외곽 언덕 꼭대기에 있는 ‘루시앵 아르카스'(Lucien Arkas) 와이너리는 포도밭과 주변 평야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탁 트인 전망으로 압도적인 풍경을 자랑한다.

와이너리 내 레스토랑 ‘마흐젠'(Mahzen)은 직접 양조한 와인과 튀르키예의 제철 식재료로 만든 요리를 정성스럽게 페어링해, 자연과 맛이 어우러지는 완벽한 미식의 순간을 선사한다. 붉은 석양과 함께 와인 한 잔을 기울이는 순간, 이즈미르의 여름이 혀끝에서 천천히 녹아내린다.

마흐젠 레스토랑의 와인창고 [사진/성연재 기자]

◇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맛

보스포루스 해협을 따라 수많은 식당이 들어서 있지만 예니쿄이의 ‘아주르'(Azur)는 빼놓으면 아쉬운 곳이다.

눈앞으로는 보스포루스 해협이 잔잔히 흐르고, 수평선 너머로는 유럽과 아시아가 맞닿는 도시의 풍경이 펼쳐진다. 로맨틱했다.

그저 경치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지만, 테이블 위에 놓인 한 접시의 새우 요리는 그 순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매콤한 양념이 은은하게 배어든 점보 새우는, 마늘과 버터의 풍미 속에서 고소하고 깊은 맛을 뿜어냈다.

탱글탱글한 식감은 바다의 싱그러움을 그대로 품고 있었고, 함께 곁들여진 올리브 오일과 토마토소스는 한층 더 우아한 풍미를 더했다.

그 소스에 살짝 간장이 배어 있는 듯한 짭조름함이 묘하게 익숙하면서도 색달랐다.

해산물 요리가 맛난 아주르 [사진/성연재 기자]

이스탄불 도심의 ‘세라프 바디'(Seraf Vadi)는 최근 한국의 한 예능 방송에 소개된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아나톨리아 전통 음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수준 높은 음식점이다.

쌀과 다양한 식재료로 속을 채운 구운 통양파는 시각과 미각을 자극했다.

또 전통 음식인 ‘이칠리 쾨프테’는 고기뿐만 아니라 향신료와 곡물도 풍성해 감동을 전했다.

세련된 공간에서 전통의 뿌리를 지키는 그 철학은, 단순히 맛을 넘어선 감동으로 다가왔다.

세라프의 요리사들 [사진/성연재 기자]

◇ 한국인 관광객에게도 맞는 파인 다이닝

한국 사람들에게는 서양식 파인 다이닝이 부담으로 다가오기 십상이다.

현란한 기교를 뽐내는 요리도 우리 입맛에 맞지 않으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조금 더 대중적인 파인 다이닝을 권하고 싶다.

녹두 (사진 아래쪽) 등 한국인 입맛에도 친숙한 재료를 활용한 파인 다이닝이 특징인 아라카 [사진/성연재 기자]

그런 의미에서 ‘아라카'(Araka) 또한 큰 감동을 줬던 레스토랑이다.

이스탄불 북쪽 예니쾨이 주택가에 자리한 단 7개 테이블의 작은 미슐랭 레스토랑이다.

발효 토마토수프와 양고기 퓌레, 그 위를 장식하는 허브와 향신료는 절제된 최소주의를 구현하며, 음식 하나하나가 마치 조각품처럼 다가온다.

자이네프 피나르 타쉬데미르 셰프는 튀르키예 고유의 재료에 집중하며, 서양식을 모방하지 않고도 세계 수준의 정제된 맛을 만들어냈다.

특히 녹두 등 동양인들의 입에 익은 음식 재료를 사용한 점은 익숙하지만 새로운 맛을 전해줬다.

알리 오카크바시 레스토랑의 화려한 케밥 [사진/성연재 기자]

이스탄불의 대표적 서민 음식은 케밥이다. 흔히 대중적이고 격식 없는 음식으로 여겨지지만, 보스포루스 해협 앞에 자리한 ‘올리가르크 이스탄불'(Oligark Istanbul)의 알리 오카크바시 레스토랑에서는 고급 요리로 재해석된다.

탁 트인 전망과 DJ 음악, 세련된 공간 속에서 맛보는 양갈비 케밥은 그야말로 전통과 현대의 만남이다.

케밥 하나에 정성을 다한 조리와 깊은 연기 향이 스며들었다.

포시즌스 이스탄불 아블루의 요리 [사진/성연재 기자]

포시즌스 호텔 술탄 아흐메트 중정에 위치한 ‘아블루'(Avlu)도 놓치면 아쉬운 곳이다. 고전적인 튀르키예 요리의 품격을 담아낸다.

가지 퓌레와 양고기 소스, 버터가 녹아든 얇은 만두는 한 입만으로도 깊은 만족감을 준다.

고요한 정원에서 마시는 차 한 잔까지, 시간마저 느리게 흐르는 듯한 기품 있는 공간이었다.

포시즌스 이스탄불 아블루의 야외 식탁 [사진/성연재 기자]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5년 8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Author: NEWS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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