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구,주얼리가 되다
올해 케링 그룹이 주최하는 케링 제너레이션 어워드(Kering Generation Award)에 주얼리 부문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그리고 영예로운 첫 수상자는? 쓰임을 다한 장구와 쉼표 모티프로 주얼리를 만드는 이민서가 그 주인공이다.
장구 가죽으로 만든 브로치와 목걸이. 목걸이 아래 놓인 건 수명을 다한 장구다.
하퍼스 바자 먼저 축하한다. 아직은 낯선 이름인 이민서를 〈바자〉 독자들에게 소개해달라.
이민서 홍익대학교 대학원 금속조형디자인과에 재학 중인 학생이다. 동시대 예술의 한 장르인 현대 장신구(contemporary art jewellery)를 다루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하퍼스 바자 ‘케링 제너레이션 어워드 × 주얼리’ 학생 부문의 첫 수상자가 된 걸 축하한다. 지원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
이민서 이번 어워드에는 세계 유수의 대학 10곳이 참여했다. 한국에서는 홍익대학교 금속조형디자인과가 초청받았고, 지도 교수님의 추천을 통해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번 어워드는 ‘두 번째 기회, 첫 번째 선택’이란 주제 아래 진행되었다. 폐기물을 새로운 가치로 전환하는, 즉 지속 가능한 순환을 탐구하는 자리였다. 전 세계의 주요 이슈 중 하나인 지속가능성을 장신구를 통해 이야기할 수 있었던 매우 뜻깊은 경험이었다.
하퍼스 바자 이번 수상작에 대해 주목할 만한 특징 몇 가지를 짚어준다면?
이민서 수상작의 이름은 ‘리듬 리본(Rhythm Reborn)’ 목걸이다. 한국의 전통 악기인 장구 가죽에서 재료를 얻었다. 특히 장구 소리가 지닌 깊이와 리듬을 형태로 표현하기 위해 반복적인 밀도에 집중했다. 한 음 한 음 쌓아 올려 울림과 소리를 만들어내는 음악처럼 말이다.
쉼표 모티프의 브로치들.
하퍼스 바자 장구에 매료된 까닭은 무엇인가?
이민서 초등학교 때 사물놀이 동아리에서 장구 역할을 맡았었다. 연주를 하다 보면 장구 가죽이 찢어지고 마모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당연스레 장구가 버려지던 그 기억이 이번 작품으로 날 인도했다. 또 장구는 연주자에 의해 타격되면서 독특한 소리와 리듬, 정서를 담아낸다. 나는 그 속에 담긴 전통의 흔적에 주목했다. 전통은 시간 속에 멈추어 있는 과거가 아니다.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되고 변화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번 작품은 장구를 단순한 악기가 아닌 색다른 예술의 형태로 재해석함으로써 환경 보호는 물론 전통 음악의 가치를 함께 전달하고자 했다.
하퍼스 바자 특별한 소재이니만큼 특별한 제작 과정이 있을 듯하다.
이민서 가죽은 열에 의해 수축되고 변형된다. 가죽을 금속 테에 끼운 뒤 곡선으로 구부리고 열을 가해 형태를 고정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 자연스러운 곡선과 질감을 유지하면서도 착용자의 움직임에 따라 유연하게 움직이는 구조로 완성된다.
하퍼스 바자 재료는 어디서 수급하는가?
이민서 한국 전통 악기사에서 버려진 장구를 수급하고 있다.
하퍼스 바자 최근 «쓸수록, 쓸모 있는: 쓸쓸한 사물» 전시를 진행했다.
이민서 전시는 7월초에 끝났다. 버려진 물건들이 새로운 쓰임과 가치를 얻는 과정을 담은 전시다. 8명의 작가가 8가지 폐기물을 각자의 시선으로 재해석하며 지속가능성과 창의적 전환의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했다. 우리의 소비 습관과 환경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단순한 재사용을 넘어 사물이 다시 쓰일 수 있는 다양한 방식에 주목했다.
하퍼스 바자 주얼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있을까?
이민서 작은 크기 안에 서사와 감정, 기억을 응축해 담아낼 수 있는 독보적인 매체라고 생각한다. 이런 밀도 있는 표현 방식에 매력을 느꼈다.
하퍼스 바자 당신의 주얼리는 주로 쉼표 형태를 반복적으로 나열해 만들어진다.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인가?
이민서 단순하지만 독특한 형태의 쉼표는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뜻한다. 또한 고요함과 평온함을 자아내기도 한다. 쉼표가 문장의 흐름을 잠시 멈추듯, 우리도 쉼이 필요하다. 내 작품이 잠시 멈추어 생각하는 시간을 선사하길 바랐다.
하퍼스 바자 당신의 작업은 주얼리라기보단 작품에 가깝게 느껴진다.
이민서 맞다. 구매하는 사람들도 하나의 작품으로서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해주더라.
하퍼스 바자 브랜드를 시작했다고 봐도 무방할까?
이민서 커머셜 피스를 제작하고는 있으나 아직 정식 판매는 하고 있지 않다. 언젠간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꿈은 갖고 있다.
하퍼스 바자 주로 영감은 어디에서 찾는가?
이민서 내 작업은 반복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작은 형태와 흐름이 반복되면서 점차 밀도와 구조가 형성되고, 그 속에서 미세한 변화와 움직임이 축적된다. 일관성과 조용한 변화, 그 사이의 균형은 내 작업의 핵심이자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이기도 하다.
하퍼스 바자 요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새로운 소재는 무엇이 있을까?
이민서 이번 어워드를 계기로 폐기물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장구에 이어 전통 악기에서 버려지는 다양한 재료를 어떻게 조형적으로 풀어낼지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