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마와 루이스>
스틸컷 [자료제공=CGV]
【투데이신문 최두진 객원기자】2025년 7월
<델마와 루이스>
가 CGV 단독으로 재개봉됐다. 30여 년 전 개봉 당시에도 찬반이 뚜렷하게 갈렸던 이 영화는, 지금에 와서 오히려 더욱 명확하게 다가온다. 여성 주인공 둘의 도주극이라는 단순한 외형 너머에는 자유, 구속, 선택, 그리고 구조적 폭력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이 숨겨져 있다.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루이즈와 전업주부로 사는 델마는 권태로운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여행 첫날 밤, 들른 술집에서 델마가 성폭행을 당할 뻔한 사건이 벌어지고, 루이즈는 위협을 가한 남성을 총으로 쏴버린다. 자수를 하자는 델마에게 루이즈는 단호히 말한다. “그들은 네 말을 믿지 않아.”
<델마와 루이스>
스틸컷 [자료제공=CGV]
이 한 문장은 영화 전체의 긴장과 논리를 끌고 간다. 제도와 법이 피해자의 진술을 받아들이지 않는 현실, 그 안에서 생존을 택한 여성들이 도망치는 선택은 불합리해 보일지라도 절실하다. 관객은 델마의 변화하는 얼굴을 보게 된다. 처음에는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인물이던 그녀가, 결국 제이디에게 속고 나서는 루이즈보다 더 단호하고 능동적인 주체로 변해간다. 델마가 총을 들고 마트에 들어가 은행을 털고, 경찰을 따돌리는 순간마다 ‘억눌린 존재가 자기 삶을 인수하는 과정’이 서서히 완성되어 간다.
루이즈는 그보다 이성적이고 조심스러우며, 수십 년간 쌓아온 상처를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그녀의 내부 균열이 보이기 시작한다. 둘은 똑같이 도망치지만, 동기와 감정은 다르다. 그것은 여성 연대의 새로운 결을 보여준다. 전통적인 ‘동일화된 동지’가 아니라, 서로 다른 상처를 안고 있는 두 사람이, 각자의 결핍으로 인해 더욱 깊게 손을 맞잡는 연대다.
이 영화가 던지는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멕시코 국경 근처에서 절벽 앞에 멈춰선 순간이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진 두 사람은 차를 몰아 절벽 아래로 달린다. 이 장면은 패배로 읽히지 않는다. 이는 죽음이나 비극의 종결이 아니라, 자기결정권의 절정이며, 자기 인생을 더는 타인의 판단이나 법의 판결에 맡기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영화는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델마가 “멈추지 말고 가자”고 말하는 순간, 관객은 그들의 마지막 선택이 무엇보다 능동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델마와 루이스>
스틸컷 [자료제공=CGV]
전체 영화에서 리들리 스콧은 남성 중심의 시선으로 여성 인물을 소모하지 않는다. 오히려 카메라는 그들과 함께 움직이며, 광활한 도로와 사막, 수평선 위에 인물을 풀어놓는다. 그리고 이 공간은 자유를 상징하는 동시에, 언제든 제약받을 수 있는 허상의 공간임을 함께 보여준다. 한스 짐머가 만든 블루지한 기타 사운드는 장면마다 해방의 순간과 불안의 파장을 동시에 담아낸다. 감정을 과잉하지 않고, 건조한 리듬으로 삶의 냉혹한 리얼리티를 되새긴다.
2025년 오늘, 한국의 극장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상징적이다. 여전히 피해자의 진술을 의심하는 문화, 제도적 한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현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개인들. 그들에게
<델마와 루이스>
는 관조의 고전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유효한 질문을 던지는 생생한 작품이다.
관람 후 많은 관객이 되묻게 된다. 나는 내 인생의 핸들을 스스로 쥐고 있는가? 내가 믿는 정의, 내가 결정한 선택, 내가 향하고자 하는 자유는 어디까지 허락된 것인가?
<델마와 루이스>
는 그 물음 앞에 잠시 멈추지 말고, 계속 가자고 말한다. 절벽 앞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