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렉션의 피날레 직후 쇼장 앞 거리로 쏟아져 나온 파자마 군단.
밀라노의 2026 S/S 패션 위크는 예년보다 유난히 조용했다. 하지만 돌체앤가바나 쇼장에 다다르자 거리를 가득 채운 팬들의 열기 속에서 비로소 패션 위크가 시작됐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곧이어 검은 차가 컬렉션장 앞에 멈추더니 배우 정해인이 모습을 드러냈고, 거리는 순식간에 소녀들의 뜨거운 함성으로 뒤덮였다. 화이트 드레스 셔츠와 커머번드를 매치하고 재킷과 타이 대신 골드 핀 브로치를 꽂은 그의 모습은 돌체앤가바나 앰배서더다운 화려함과 대담함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돌체앤가바나는 2026 S/S 컬렉션을 통해 이탈리아 여름의 아름다움과 경쾌한 감성, 매력을 풀어냈다. 그 이야기의 중심에는 파자마가 있다. 1990년대 돌체앤가바나 런웨이에 처음 등장한 아카이브를 캐주얼하면서 우아하고 세련된 무드로 재해석했다. 가볍고 쾌적한 코튼 자카드 소재와 수직 스트라이프 프린트는 파자마의 전통적 실루엣을 따랐지만, 브리프를 겹쳐 입거나 모피 슬리퍼와 빅백을 매치하는 등 참신한 스타일링을 통해 새로운 미적 조화를 제시하며 일상에서의 가능성을 확장했다.
베이지와 라이트 블루, 크림, 네이비 등 중성적 색상부터 네이비와 그린, 브랜드의 상징적 블랙을 아우르는 컬러 팔레트가 펼쳐졌고, 폴카 도트와 레오퍼드 프린트 등 아이코닉한 디테일이 컬렉션을 더욱 풍성하게 채웠다.
옐로 폴로 셔츠와 스트라이프 팬츠, 오렌지 백까지 경쾌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몸에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부여하는 넉넉한 실루엣은 상의와 하의 모두를 아우른다. 주름과 넓은 밑단으로 여유로운 실루엣을 강조한 팬츠, 1980년대 오버사이즈 실루엣에서 영감받은 가죽 재킷, 성근 짜임의 니트 카디건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아이템은 파자마와 결합하며 보다 현실적이면서 유쾌한 스타일을 연출했다.
피날레 룩으로 완성한 자수 장식 파자마는 30여 벌의 퍼레이드를 펼치며 쇼의 대미를 장식했다. 여름날의 청량한 이브닝 룩을 대체할 만큼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파삭파삭한 코튼 소재의 가벼움과 편안함, 그 위에 수놓은 크리스털과 자수 장식의 대비는 파자마 위에 꽃을 피운 듯했다. 봄과 여름 정원, 숲속에서 저마다 개성을 뽐내는 꽃처럼 새초롬한 방울꽃과 벚꽃 등 무수한 꽃이 형형색색 반짝였다. 화려한 스톤 목걸이와 겹쳐진 묵주 목걸이, 극도의 호화로움을 무심히 눌러주는 슬리퍼 슈즈의 자유분방함과 여유로움은 그 자체로 시선을 압도했다. 관객석 곳곳에서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돌체앤가바나의 위트와 풍요 속에서 모두가 패션 판타지의 환희를 곱씹어보는 듯 즐거운 표정이었다.
1980년대의 여유로운 실루엣을 접목한 돌체앤가바나 2026 S/S 컬렉션.
이제 끝나는가 싶더니, 컬렉션장 벽면을 가득 채운 스크린이 번쩍 빛을 밝혔다. 피날레를 장식한 슈퍼모델 킷 버틀러를 선두로 파자마 차림의 모델 군단이 런웨이를 빠져나와 비알레 피아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햇살이 내리쬐는 한여름의 밀라노 도심 한복판에서 가장 사적인 옷으로 여겨지던 파자마가 마침내 일상 속 새로운 스타일 코드로 다시 태어났다.
정유민
디지털 에디터
함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