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매시간, 매일 묵묵히 의료 현장을 지키며 중증 및 희귀질환 환자들을 위한 의술에 땀 흘리는 대한민국 의사들을 조명하고자 ‘신의열전(信醫列傳)’을 연재합니다.
[이데일리 안치영 기자] 너무 아파서 병원을 갔더니 이상이 없다고 한다. 통증이 가시질 않아 여러 병원을 돌아다녔지만 뚜렷한 차도도 없고 원인도 모른다. 주위에서는 꾀병이 아니냐며 핀잔주기도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환자의 마음은 우울해지고 통증은 더욱 심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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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규 경희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이런 몸과 마음의 통증을 같이 돌봐주는 의사다. 박 교수는 ‘정위기능(stereotactic & functional neurosurgery)’ 분야 전문가다. 정위기능 치료는 뇌 속의 좌표를 기반으로 정확하게 문제 지점을 찾아내고 최소한의 손상으로 치료하는 걸 목표로 한다. 주로 감마나이프, 전기자극술, 기능성 뇌종양 치료, 3차신경통, 운동질환, 기능회복 중심 수술 등을 다룬다.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하지만 외국에서는 비교적 활발하게 발전 중이며 미래 신경외과의 주요 분야로 주목받고 있다.
박 교수는 정위기능으로 접근하는 치료 중 통증환자의 고통을 지켜보면서 이 분야 연구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환자는 고통을 호소하는데 주변에선 과소평가하는 모습을 보면서 주변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고통을 자기가 덜어주겠다는 마음이 앞서서였다. 실제로 아직 원인을 밝히지 못한 통증도 다수 있는데 환자 주변에선 원인을 알 수 없다 하니 답답해하거나 의심하는 경우가 잦다. 그는 “통증도 병이라서 적절하게 치료해야 하는데 보호자나 주변 사람조차 통증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특히 가족이 ‘맨날 아프다고 한다’는 식으로 반응하면 환자에게 이중 고통을 유발한다”고 안타까워했다.
통증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이를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방법이 아직 없어서다. 일부 통증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가 있지만 환자가 느끼는 고통 수준을 의사가 듣고 판단하는 수준이다. 심각한 통증은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지만 환자가 의료진을 쉽게 속이고 제도를 악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장애 평가 및 보장이 어렵다는 것이 박 교수의 설명이다.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다 보니 그는 환자 한 명당 진료시간이 다른 의사들보다 긴 편이다. 환자를 처음 보는 것처럼 매번 면담하며 환자의 궁금한 점을 확인하고 설명하는 데 시간을 충분히 투자한다. 그는 어느 날 늦게 온 환자에게 간단한 설명만 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한다. 특히 그가 보는 환자들은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며 남들이 이해 못 하는 통증으로 인해 마음속에 화가 폭발하기 직전인 경우가 많다. 그는 “제 입장에선 하루에 비슷한 환자를 100명 본다 생각하겠지만 환자 입장에선 제가 그날 처음 보는 의사”라며 “환자의 화를 달래면서 환자 개인의 이야기를 끝까지 자세히 듣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그는 환자에게 치료법을 권할 때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통증과 관련된 표준 치료법은 아직 없지만 현대 의학의 발전으로 많은 치료 방법이 개발되고 있다. 의료진 입장에선 예전처럼 한 가지 치료법만 고집하는 것이 아닌, 여러 치료법을 두고 고민해야 한다. 그는 “잘못된 치료, 민간요법, 대체의학 등 부적절한 경로로 빠지는 경우도 빈번하지만 환자에게 무조건 ‘신경외과로 오세요’라고 권하기도 어렵다”면서 “통증은 원인이 매우 다양하고 신경외과적 원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 또한 통증을 객관화된 지표로 만들기 위해 연구를 거듭하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는 없다. 그는 한 가지 치료법만 고집하는 것이 아닌 여러 치료법을 두고 고민하고 있으며 이러한 그의 고민을 환자가 최대한 이해하고 치료법을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박 교수는 이렇게 다른 환자보다 소외된 통증 환자들을 걱정하며 환자의 주관적인 통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통증 수준에 따라 장애 등급을 주는 것은 아직 어렵지만 최소한 가족조차 환자의 고통을 가볍게 여기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면서 “현재로서는 통증을 하나의 ‘질병’으로 사회가 받아들이고 관용적으로 이해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