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소나타6] 인천  인천항? 쌩난리 끝에 문을 열었지

[한반도소나타6] 인천  인천항? 쌩난리 끝에 문을 열었지

패러디 삽화=최로엡 화백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등장인물: 돈키, 호새, 영호>

돈키:

떴다 떴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호새야, 저 하늘을 봐! 

지구촌 곳곳으로 날아가는 저 비행기들 좀 보렴. 

무엇을 싣고 있을까?

사람마다 가슴에 등불 하나쯤은 품고 떠나는 거겠지.

인천대교 너머 신공항과 인천항…

그곳은 꿈을 안고 떠나는 사람들에게 설렘의 쉼터야.

호새:

집 나서면 고생이라지만…

출발할 땐 늘 가슴이 두근거리죠.

돈키:

인천항? 쌩난리 끝에 문을 열었지.

처음엔 시원한 바닷바람을 기대했을 거야.

개화의 바람에 단추만 푼 게 아니라,

상투 자르고 웃통까지 벗었지.

문제는… 스스로 벗은 게 아니라 벗겨졌다는 거야.

호새: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세요?

돈키:

‘강화도조약’과 ‘제물포조약’…

그 후 반세기 동안 깜깜한 터널을 지나왔지.

그러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자유진영의 승리 덕에 우리도 빛을 본 거야.

그래서 “흙 다시 만져보고, 바닷물도 춤을 췄지.”

“…한강물도 다시 흐르고, 선열아 이 나라를 보소서…”

호새:

돈키 형은 일이 터지면 가슴에 담아요, 머리에 담아요?

돈키:

하하, 좋은 질문이다.

그 전에, 국제공인 2단 옆차기의 고수,

맥아더 장군 기억하니?

호새:

콘파이프 물고 있는 키다리 아저씨요?

돈키:

그래, 6.25전쟁 때,

우리가 낙동강까지 밀렸을 때 전황을 뒤집은 인물이야.

바로 이 인천에서 펼쳐진 ‘인천상륙작전’이 결정적이었지.

서울을 되찾고, 중앙청에 ‘자유’의 깃발, 태극기를 올린 건

수많은 희생의 결과였어.

요즘 젊은이들이 연안부두로 섬여행은 가도,

그런 역사는 잘 모르더라고.

제 나라, 제 역사부터 아는 게 진짜 멋이지.

호새:

그런데 말이죠…

요즘은 역사 몰라도, 뒤집고 타짜로 잘만 살던데요?

돈키:

그래서 걱정이야.

그 시절, 우리 몸엔 기초체력도 없었거든.

그 얘긴 인천 토박이 ‘영호’ 명재가 전해줄 거야.

저기 봐! 차이나타운 패루 앞에 방장 성훈이랑

‘오뚜기’ 운장 인구, 군대 동기들이랑 같이 있네.

개항장을 쭉 유람할 거야.

영호:(등장하며)

인천은 자체가 근대사 박물관이야.

기차, 기상대, 예배당, 고급호텔…

여기 화교거리 짜장면도 추억이지.

청·일 조계지, 제물포구락부,

자유공원에 우뚝 서 있는 맥아더 동상,

그리고 첫 등대, 팔미도.

성냥공장도 있었지.

성냥 하나가 폐허의 집집마다 불을 밝혔어.

인천 앞바다 사이다도 있었고,

우리나라 첫 ‘뻥!’ 축구, ‘딱!’ 야구, 새싹들의 배움터도 여기서 시작됐어.

하와이 교민들의 성금으로 세워진 인하공대도 빼놓을 수 없지.

그 인재들이 ‘한강의 기적’을 이끌었어.

이 개항장을 온전히 다 보려면, 한 달은 걸릴걸?

돈키:

그럼, 잠깐 월미공원에 들러보자.

옛 장터 얘기도 듣고, 할미 맛집도 가보자고.

(손짓하며) 휘리릭~

호새:

결국 이곳, 인천이

코리아의 관문이자 격랑의 역사 한복판이었다는 거네요.

돈키:

맞아. 폐허 위에 반세기 만에

송도, 청라지구에 빌딩이 솟고,

인천항 부두엔 자동차, 컨테이너 가득 실은 배들이 출항하고,

비행기들이 날아다니고 있어.

대한민국, 대단하지 않니?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이 있었으면,

바닷물조차 짜게 느껴질까…

호새:

파도 위로 실린 기도소리가 들리는 듯해요.

저기 ‘조나단’이 춤추네요.

돈키:

(두 손을 모으며)

내 양심을 지킬 수 있도록 해주소서.

두려움을 딛고 도전하게 하소서!

 

 

 

Author: NEWS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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