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제주 4·3사건 당시 진압 작전을 지휘했던 고(故) 박진경 대령의 국가유공자 지정 취소 검토를 지시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가가 이미 내린 역사적 판단을 다시 뒤집을 수 있느냐는 것과, 그 출발점이 대통령의 직접 지시여야 하느냐는 것이다.
박 대령은 1948년 제주 4·3사건 초기 조선경비대 연대장으로 투입돼 작전을 지휘하다 부하에게 암살당했다. 박 대령은 사후 1950년 을지무공훈장을 받았다. 현행 국가유공자법상 무공훈장 수훈자는 별도의 심의 없이 국가유공자 등록 자격을 갖는다.
유족의 신청 이후 보훈당국은 훈장 기록과 결격 사유를 확인해 행정 절차에 따라 유공자 증서를 발급했다. 이를 취소하려면 먼저 75년 전 수여된 무공훈장 자체를 취소해야 한다. 그러나 훈장 취소는 공적의 허위나 중대한 범죄 확정판결 등 엄격한 요건과 국무회의 의결이라는 절차를 필요로 한다.
제주 4·3사건은 이미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를 거친 복합적 비극이다. 박 대령에 대해서도 강경 진압 책임자라는 기록과, 주민 보호에 무게를 뒀다는 증언이 엇갈린다. 무엇보다 그가 받은 무공훈장이 4·3과 직접 연관된 공적이었는지조차 명확치 않다. 사실관계가 충분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의 결론이 먼저 제시되는 것은 진실 규명보다 정치적 메시지가 앞서는 인상을 준다.
이미 우리는 해법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제주 4·3 진상규명위원회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처럼 독립적 조사기구를 통해 기록과 증언을 축적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방식이다. 박 대령 논란 역시 대통령의 톱다운 지시가 아니라, 새로운 팩트를 기반으로 한 위원회 구성과 공개적 검증이 먼저여야 한다. 이는 국가보훈부나 국방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통령은 역사 논쟁의 판결자가 아니라 제도가 작동하도록 보장하는 책임자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이 “무공수훈자의 경우 심의·의결 없이 (국가유공자로) 자동 결정되는데, 이 부분에 대해 사회적 논의를 거치지 않은 것을 더 검토해보라는 취지”라고 해명했다. 당초 대통령실 공지도 ‘훈장 취소 검토’에서 ‘유공자 지정 취소 검토’ 지시로 정정한 수준이었다. 사실상 취소를 전제로 한 압박 뉘앙스는 그대로라는 얘기다.
이번 논란이 또 하나의 이념 대결로 소모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대통령의 결론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도달할 수 있는 진실의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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