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김희수 작가는 오랫동안 전시와 작품에 같은 제목을 반복 사용해왔다. 전시명은 평범한 삶을 뜻하는 ‘Normal Life’, 작품명은 대부분 ‘Untitled(무제)’. 일부 작품에 소제목이 붙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그의 명명 방식은 단조롭다. 그러나 이는 작가가 자신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작품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림 속 인물은 특정 개인을 지칭하지 않고, 누구나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보편적 존재로 자리한다. 한 걸음 물러난 시선으로, 사랑과 우정, 관계처럼 익숙해 쉽게 지나치는 감정을 되묻고 새긴다.
김희수의 작업 방식은 순간의 기록에 가깝다. 떠오르는 단편적 생각과 장면을 글씨와 드로잉으로 남기며, 완성보다 ‘지금’을 붙잡는 데 초점을 둔다. 이러한 드로잉은 나무 껍질처럼 계속 자라나고 벗겨지며, 흘려쓴 글씨 속에는 꾸밈없는 사적 감정이 배어 있다.
전시 ‘끝내 내가 보고 싶은 것’은 이전의 일관된 명명 방식에서 살짝 벗어나지만, 이는 작업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끌어낸 변화다. 작가의 시선은 일상의 표면을 따라 기록되었으나, 주변의 감정과 관계를 쌓아온 시간은 결국 마음이 향하는 지점을 드러낸다.
오늘날 우리는 작은 화면 속에서 누구와도 즉각적으로 연결되지만, 동시에 빠르게 멀어진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한 ‘액체적 관계’가 바로 그것이다. 안정에 대한 욕구와 자유를 향한 욕망이 충돌하는 현실 속에서, 김희수는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지 스스로 묻는다.
전시장 속 인물들은 이러한 고민을 보여준다. 바닥에 몸을 낮춘 인물, 아래로 떨어지는 인물 아래에서 두 팔을 벌린 또 다른 인물. 관계를 회복하려는 의지와, 다시 연결될 수 있다는 믿음, 끝내 확인하고 싶은 감정의 원형이 화면 속에 자리한다.
김희수의 회화는, 지나치기 쉬운 감정을 두터운 물감 층으로 붙잡는다. 그의 작품 속 희망은 아직 닿지 않았지만, 끊임없이 손을 뻗는 움직임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다. 삶이 다시 고쳐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게 만드는, 정직하고 섬세한 시선이다.
김희수 작가 개인전 ‘끝내 내가 보고 싶은 것’은 오는 18일부터 2026년 2월 8일가지 에브리데이몬데이(EM Gallery)에서 열린다.
사진=에브리데이몬데이(EM Gallery)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