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뉴진스(NewJeans)’와 하이브(HYBE)의 레이블 어도어 간 전속계약이 유효하다는 법원 판단이 30일 나온 가운데,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정회일 부장판사)가 이 같은 판결을 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재판부는 김민지, 하니 팜, 마쉬 다니엘, 강해린, 이혜인 등 뉴진스 다섯 멤버가 전속 계약 해지 사유로 정한 중요한 의무들을 어도어가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뉴진스 측 주장을 전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앞서 어도어는 뉴진스가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선언했다며 작년 12월 전속계약 유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뉴진스는 같은 해 11월 어도어의 의무 불이행 등을 이유로 계약 해지를 주장했다.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 해임이 계약 위반 상황인가
뉴진스 다섯 멤버는 자신들의 총괄 프로듀서였던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에 대한 해임이 중대한 계약 위반이라고 주장해왔다.
재판부는 하지만 민 전 대표가 대표 이사직에서 해임됐다는 것만으로는 어도어의 매니지먼트 공백이 발생했다거나 어도어가 업무를 수행할 능력이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멤버들이 민 전 대표와 신뢰관계를 기초로 어도어와 전속계약 체결했다는 건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또 민 전 대표가 대표직 해임 이후에도 사내이사로서 프로듀싱에 참여할 수 있었음에도 작년 11월20일 어도어 사내이사 직에서 스스로 사임한 점 등에 비춰 멤버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아울러 멤버들이 협조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어도어가 앨범 제작과 공연 준비, 월드 투어 계획 수립, 광고 촬영 기회 제공 등을 진행한 것으로 볼 때 어도어가 매니지먼트를 이행하지 못했다고도 볼 수 없다고 했다.
◆민희진 전 대표에 대한 감사·해임 과정은 정당했는가
재판부는 카카오톡 내용은 적법한 감사 절차에 따라 증거 능력이 있기 때문에 판결 내용에 포함시켰다고 했다.
민 전 대표의 카카오톡 대화에 따르면, 뉴진스가 포함된 어도어를 하이브로부터 독립하려는 과정에서 그녀의 행위는 전속계약상 의무 불이행으로부터 멤버들을 보호하려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민 전 대표가 사전에 여론전, 소송 등을 준비하면서 그 과정에서 전면에 나서지 않고 뉴진스와 뉴진스 부모들을 내세워 하이브가 부당하게 대했다는 여론을 만들고, 어도어를 인수할 투자자들을 만났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사정에 비출 때 민 전 대표에 대한 하이브 감사는 부당하지 않다고 해석했다. 앞서 민 전 대표가 주장한 것처럼 그녀가 작년 4월 3·16일 하이브의 부당행위에 대한 시정 요구 메일을 보낸 것 때문에 감사를 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민 전 대표가 하이브 부사장 등과 대화에서 ‘하이브 평판 떨어뜨리는 목적’의 설명을 했다는 것을 특기했다.
재판부는 “어도어를 하이브로부터 독립시키기 위해 증거를 찾기 위한 조치였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하이브와 어도어, 뉴진스 멤버들 사이 자료들을 확인해서 소재를 찾아낸 민희진의 사전 작업의 결과”라고 판단했다.
◆어도어는 의무를 위반하고 신뢰관계를 파탄시켰나
재판부는 어도어가 일부 멤버들 쏘스뮤직 연습생 시절 영상 유출과 관련 해당 매체에 게재 중지를 요청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다했고 한 PR 담당자가 일부 신문에 뉴진스를 폄훼한 발언을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하이브 내 또 다른 레이블 빌리프랩 소속인 걸그룹 ‘아일릿’이 뉴진스를 복제했다는 주장에 대해선 “여성 아이돌 콘셉트는 상표권, 퍼블리시티권, 지적재산권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하며 그 과정에서 어도어가 뉴진스 콘셉트 보호 조치 역할을 했다고 봤다.
또한 아일릿 매니저가 아일릿 멤버들에게 “하니를 무시하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해당 표현은 하니와 민 전 대표가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 받는 과정에서 민 전 대표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아일릿 멤버들은 소극적이지만 인사를 했다고 봤다. 민 전 대표가 하니가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당시 상황을 ‘공격을 당했다’고 재구성했다는 지적이다. 하이브 CCTV 영상에서도 아일릿 멤버들이 하니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한 점이 확인된다.
또한 어도어가 협업한 애플로부터 뉴진스 뮤직비디오를 만든 돌고래유괴단에 뉴진스 ‘ETA’ 디렉터스 컷 영상을 내려달라고 조치한 건 용역 계약에 따른 권리 행사로 전속계약을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또한 ▲하이브의 음반 밀어내기 ▲하이브 주간 리포트에 포함된 ‘뉴버리고 새판’ 문장도 문제가 없다고 봤다.
◆뉴진스 인격권 침해됐나
재판부는 연예인에게 자유의사에 반하는 전속활동을 강제하는 건 인격권 침해라는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이번 어도어와 뉴진스 관계에선 해당되지 않는다고 봤다.
“연예인 성공여부는 불확실하다.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팬덤을 쌓았는데 경영상의 판단 영역인 인사, 콘텐츠 등을 문제 갖고 이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전속계약 강제’라고 주장하며 전속계약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건 ‘해당 연예인의 인격권이 침해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민희진 대표이사 복귀, 돌고래유괴단과 협업 등 뉴진스 멤버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게 전속계약 강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여전히 전속계약은 유효하고 어도어는 매니지먼트사 지위에 있다. 원고와 피고 사이에 체결된 각 전속계약을 유효함을 확인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소송 비용도 뉴진스 멤버들이 부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사 소송의 경우 결정 내용만 짧게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번 재판부는 민사사건 선고로는 매우 이례적으로 40여분간 판결요지를 조목조목 읽어줬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특히 판결의 주요 사항, 전속계약 해지 사유를 일일이 짚고, 증거로 제출된 민 전 대표의 경영권 탈취 모의 카톡을 현장에서 일일이 구술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건의 본질이 민희진 전 대표의 경영권 탈취 모의와 여론전이었으며 하이브의 감사는 정당했다는 것을 일갈하는 게 아니냐”고 풀이했다.
중형 매니지먼트사 관계자는 “어도어 승소를 당연히 예상했다. 뉴진스의 주장은 매니지먼트 입장에선 납득이 불가했다. 그렇게 계약이 해지되면 누가 아이돌을 키우려고 하겠냐”면서 “이번 판결을 엔터업의 고질인 ‘불법 탬퍼링 시도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려는 시금석으로 삼겠다는 재판부의 의지로 읽힌다”고 말했다.
반면 뉴진스 다섯 멤버들은 1심 판결을 존중한다면서도 항소를 예고했다.
김민지·하니 팜·마쉬 다니엘·강해린·이혜인 등 뉴진스 다섯 멤버의 법률대리인 법무법인(유) 세종은 이날 “멤버들은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나, 이미 어도어와의 신뢰관계가 완전히 파탄된 현 상황에서 이 회사로 복귀해 정상적인 연예활동을 이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이렇게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