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묘정 칼럼] 함께 만들어가는 예술에 대하여

[노묘정 칼럼] 함께 만들어가는 예술에 대하여

[문화매거진=노묘정 작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이라 그런지, 실사 영화에서 감독과 배우가 함께 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늘 관심이 간다. 애니메이션에서는 감독이 모든 것을 혼자 한다. 각본도 쓰고, 배경도 만들고, 연기도 대신한다. 캐릭터의 표정 하나, 손의 움직임 하나까지 전부 스스로 조율해야 한다. 하지만 실사 영화에서는 감독이 쓴 대사를 배우가 다시 읽고, 또 다른 해석으로 되살려낸다. 그 점이 언제나 부럽다. (물론 그들 역시 고충이 많겠지만.)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송새벽이 연기한 한때 잘나가던 천재 감독 박기훈이 다른 감독에게 하는 대사가 기억난다.

“너 몰랐는데 연기 시켜보니까 알겠지? 네 시나리오 완전 구린 거? 다들 그래. 종이에 써져있는 거 보면 몰라. 찍다 보면 감 와. 망했다.”

이 대사를 처음 들었을 때 너무 공감이 되었다. 아직 내 대사를 배우가 연기해본 적은 없지만, 완성된 영화를 극장 스크린에서 볼 때면 늘 제작 과정에서는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그만큼 혼자 작업하다 보면 작품을 객관적으로 보기 어렵다. 특히 가상의 인물을 현실 속 사람처럼 만들려는 일일수록 더 그렇다.

감독은 흔히 모든 답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비춰지지만, 사실은 모든 것이 모호한 상황에서 급하게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늘 미궁을 헤매며 시간에 쫓겨 결론을 내리는 쪽이다. 특히 내가 쓴 대사가 정말 현실에서 들릴 법한 말인지, 혹은 너무 작위적이지는 않은지 매번 고민한다.

그래서 실사 영화의 현장이 궁금하다. 배우가 캐릭터를 연구하고, 그 과정에서 감독과 함께 인물을 만들어가는 장면. 그건 어쩌면 혼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창작의 순간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아역배우의 연기 디렉팅에 유독 관심이 많다. 아마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영화 속 아이들은 단순히 ‘누군가의 딸’이나 ‘아들’로 존재하지 않는다. 보통 영화 속 아역들은 어른이 상상한 ‘아이답다’는 기준 안에서 그려지지만, 고레에다의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그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

고레에다는 아역배우에게 대본을 미리 주지 않는다. 촬영 당일에 장면에 대한 상황을 말로 설명하고, 즉흥적으로 연기를 이끌어 낸다. 준비된 연기 대신 ‘지금 이 순간’의 표정을 담기 위해서다.

▲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스틸컷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을 촬영할 당시에 주인공이자 맏아들인 코이치가 나오는 버스 안 장면이 있다. 고레에다는 이때 코이치가 마냥 해맑고 순수한 아이가 아닌 어른과 다를 바 없이 삶의 무언가를 지닌 인간으로 담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 표정을 끌어내기 위해서 그가 한 디렉팅은 이렇다.

“바람이 불어 들어와 젖은 앞머리가 바람에 날려서 기분 좋다는 걸 느끼렴.”

그리고 그는 그런 코이치를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 부분을 읽고 나서 어쩌면 좋은 감독은 좋은 배우를 만들기도 하고, 또 좋은 배우가 각본을 살려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실사 영화 감독들은 배우의 잠재성을 이끌어 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배우 자신도 몰랐던 얼굴과 표정을 발견하게 해주는 사람. 그 지점이 나는 늘 부럽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상상한다. 만약 내가 만든 캐릭터가 실제 배우를 통해 살아난다면, 그 얼굴은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내가 생각한 대로가 아닌 배우가 생각한 그 캐릭터는 영화 안에서 어떻게 성장해나갈까.

Author: NEWS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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