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국내 장애인에 대한 해외 입양기록물 열람 접근권이 전혀 보장되고 있지 않으며, 앞으로 보장될 계획도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예약 시스템이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설계돼 있어, 시각·청각장애인 등은 이용 과정에서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이 아동권리보장원에게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한 해에만 1864명에 의해 3374건의 입양정보공개청구가 접수됐으나, 입양정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방문 예약에서부터 웹사이트 이용, 임시서고 접근에 이르기까지 장애인에게는 여전히 높은 문턱이 존재했다.
지난 2023년 7월 민간에서 주도해 온 입양을 국가가 책임지는 공적 입양체계로의 개편이 이뤄지면서, 지난 7월 19일부터 입양정보공개청구와 입양기록물 관리는 보건복지부 산하 아동권리보장원(이하 보장원)이 맡고 있다.
한국은 한국전쟁(1950) 직후부터 아동 보호의 한 방안으로 해외에 아동을 입양하기 시작해, 해외입양이 본격화된 1958년부터 지난 70년간 공식 추산 약 17만명의 아동을 해외에 입양 보냈다. 이 중 4만여명은 장애 아동이었다.
입양기록물을 통해서는 입양 당시의 신상정보, 친생부모 및 양부모 관련 기록, 입양 결정 과정과 사후 관리 내용 등 입양 전후의 주요 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 때문에 입양기록물을 열람하는 것은 입양 당사자들에게 자신의 출생과 정체성을 이해하고, 생물학적 가족과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하지만 현행 제도상 입양기록물을 직접 열람할 수 있는 인원은 일주일에 9명에 불과하다. 국제입양이 활발했던 과거의 영향으로 입양인 수가 많은 현실을 고려하면, 이는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 입양정보공개청구 신청자는 월 평균 150명을 상회했다.
입양기록물을 확인하려면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임시서고(원본 열람)나 서울 아동권리보장원 본원(사본 열람)을 방문해야 하는데, 열람은 화·수·목요일 주 3일, 하루 3명씩만 예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입양기록물 열람을 위한 임시서고나 본원 방문에는 사전 예약이 필수적인데, 보장원이 운영하는 웹사이트가 장애인 접근성 보장을 인증하는 웹접근성 품질 인증(WA 인증)을 받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웹사이트 제작상의 오류도 있었다. 해외입양인들은 주소지 등의 문제로 국문 웹사이트에서 회원가입할 수 없어 영문 웹사이트로 로그인을 진행해야 함에도 영문 웹사이트로는 임시기록물 열람 신청을 할 수 없었다. 약 40일간 유지된 이 같은 오류는 최근 김예지 의원실의 문의로 고쳐졌다.
어렵게 예약에 성공한 뒤에도 장애인들에게는 또 다른 난관이 존재했다. 고양시에 소재한 입양기록물 임시서고는 지하철역에 내려서도 버스를 타고 20~30분을 더 들어가야 하는 위치에 자리해 있었다. ‘입양기록 긴급행동’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입양기록물 임시서고에는 별도의 장애인 화장실이 없으며, 휠체어를 위한 경사로 각도가 법적 기준을 충족하지 않았다.
현재 고양시에 있는 임시서고의 입양기록물의 원활한 관리를 위해 보장원은 국가기록원과 협약을 맺고 입양기록물을 위탁 보존할 예정이지만, 국가기록원 관리 산하에서도 장애인 접근권은 여전히 지켜지지 않을 예정이다.
김 의원이 국가기록원에 확인한 결과, 입양기록물 이관 이후에도 점자·음성 자료를 제공하거나 수어 상담을 제공하는 등 장애인 정보접근성 지원을 위한 시스템이나 매뉴얼을 마련할 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자신의 뿌리를 찾아 헤매온 해외입양인들에게 입양기록물은 단순한 행정문서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근거”라며 “국가가 입양에 관한 책임 강화를 선언했음에도 턱없이 미비한 준비로 입양인들에게 거듭 상처만 안겨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입양기록물의 안전한 보존과 당사자에 대한 열람권 보장을 국가의 엄중한 책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하며 “보건복지부와 아동권리보장원이 입양기록물 관리와 입양정보공개의 책임을 지는 기관으로서 직접 관리하는 웹사이트와 시설은 물론 국가기록원의 자료에도 모두의 접근권이 확보될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다할 것”을 촉구했다.
한편 지난 1일 한국은 ‘국제 입양에서 아동의 보호 및 협력에 관한 협약(이하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의 공식 당사국 지위를 얻은 바 있다.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은 국제 입양 절차를 투명하고 아동중심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국제 협약으로, 한국은 지난 2013년 해당 협약에 서명했으나 이행 법률 마련이 미비해 비준이 지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