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 부녀, 16년 만에 무죄…“檢 수사 위법”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 부녀, 16년 만에 무죄…“檢 수사 위법”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으로 중형을 선고받았던 A씨와 B씨가 지난 28일 광주 동구 광주지법에서 열린 재심 선고 공판 결과 무죄를 선고받은 뒤 기자들을 만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 항소심 재심에서 피고인 A(75)씨와 그의 딸 B(41)씨가 무죄 판결을 받았다. 사건 발생부터 재심 판결까지 16년의 기간을 돌아보면 검찰의 수사가 짜맞추기에 급급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재심을 맡은 광주고법 형사2부(고법판사 이의영)은 지난 28일 A씨와 B씨의 살인 및 존속살인 등의 혐의에 대해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20년을 선고했던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심 재판부는 문맹 또는 경계성 지능인인 부녀에게 행해진 검찰 수사가 조서 허위 작성 및 자백 강요 등이 있었다며 위법했다고 지적했다.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은 지난 2009년 7월 6일 전남 순천시 황전면의 한 마을에서 일어났다. 이날 오전 막걸리를 나눠 마신 부녀자 4명이 쓰러졌는데 2명은 사망했고 2명은 중상을 입었다.

해당 사건은 전국적인 관심 속에 경찰이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지만 좀처럼 실마리를 잡지 못했다. 그때 별개의 사건을 수사하던 광주지검 순천지청에서 사건 발생 다음달인 2009년 8월 사망한 C씨의 남편인 A씨와 딸인 B씨를 용의자로 지목해 구속했다.

당시 검찰 발표에 따르면 B씨가 성폭행을 당했다며 고소한 사건을 수사하던 중 B씨의 진술에 모순을 발견했다. B씨는 왜 무고를 했냐며 추궁받자 자신이 어머니인 C씨를 살해했는데 이에 범인이 필요했다고 자백했다는 것이다. B씨는 아버지인 A씨와 부적절한 관계를 C씨가 알게 돼 갈등을 빚다가 A씨와 공모해 독살하려 했다고 자백했고 A씨도 이를 인정하는 자백을 했다.

검찰은 이같은 자백을 근거로 근친 간 부적절한 관계였던 부녀가 아내이자 친모를 살해하기 위해 범행을 공모했다고 결론 내렸다. B씨가 막걸리를 사오자 A씨가 그 전부터 지니고 있던 청산가리를 막걸리에 넣어 마당에 놓았고 이를 사망한 C씨에게 가져가라고 권유해 C씨가 일터에서 이 막걸리를 나눠마시다 변을 당했다는 게 검찰이 밝힌 사건 개요다.

그러나 재판에서 피고인 부녀는 혐의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광주지법 순천지원은 2010년 2월 진술의 신빙성이 희박하고 범죄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이들 부녀의 존속살해, 살인죄, 살인미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항소했고 2심을 맡은 광주고법은 검찰에 피고인들에 대한 정신감정 결과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검찰은 법무부 치료감호소에 A씨와 B씨의 정신감정을 의뢰했다. 

법무부 치료감호소의 정신감정 결과 A씨와 B씨 모두 정상으로 나왔다. 이에 2심 재판부는 2011년 11월 피고인들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고 A씨는 무기징역, B씨는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자백 진술에 대한 합리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2012년 3월 대법원도 광주고법의 판결을 인정하며 A씨와 B씨의 형이 확정됐다. 이 사건은 당시에도 피고인들이 진범이 맞는지 논란이 있었으나 대법원도 유죄 판결을 확정하며 이후 재심까지 10년의 시간을 더 보내야 했다.

피고인들은 지난 2022년 1월 검찰에게 위법·강압 수사를 받았다는 이유를 들어 재심을 청구했다. 피고인들의 변호인은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가 맡았다.

광주고법은 지난해 1월 재심 개시를 결정했고 피고인들에 대한 형 집행이 정지됐다. 검찰이 이에 재항고했지만 대법원은 지난해 9월 검찰의 재항고를 기각했다. 그리고 지난 28일 광주고법은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심 재판부는 주요 증거로 제시한 범행 자백이 강압수사에 의한 허위 진술이라는 피고인들의 주장을 인정했다. 또한 부녀간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서도 “납득하기 어렵다”라며 사실을 입증할 객관적인 증거와 정황이 없다고 봤다.

A씨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중퇴해 쉬운 단어를 제외하고 한글을 쓰고 읽는 데 서투르다. 그리고 당시 20대였던 B씨는 ‘경계성 지능장애’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검찰 조사 당시의 기록에 따르면 A씨와 B씨는 몇 분 만에 조서 열람을 마쳤다. 또한 진술 거부권을 비롯해 신뢰관계인 또는 변호인 참여권 등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다.

A씨가 썼다는 자필 진술서는 오탈자 없이 작성돼 제3자의 개입이 의심되며 진술 녹화영상을 보면 부녀에게 정해진 답변을 강요하는 듯한 모습도 나왔다. 게다가 검찰은 막걸리 구입 결로와 부녀의 행정이 일치하지 않는 내용이 담긴 CCTV 영상 등 피고인들에게 유리한 증거는 재판에 제출하지 않았다.

재심 재판부는 “당시 수사가 기본적인 형사소송법 절저 준수되지 않았으며 범죄의 증명 또한 이뤄지지 않았다”고 봤다. 부녀가 2022년 1월까지 교도소에 수감된 기간은 13년에 달한다. 검찰은 무죄 판결에 대해 “내용을 검토해 대법원 상고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해당 사건의 재심에서 피고인들의 변호를 맡은 박준영 변호사는 해당 사건에 대해 “경계성 지능인과 문맹이라는 피고인들의 취약성이 강압적 수사 절차에 노출될 때 어떤 반응과 왜곡이 발생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라고 말했다. B씨는 무죄 판결 직후 검찰을 향해 “이렇게 수사하면 안 된다. 아니라고 말해도 스토리를 짜고 치가 떨린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Author: NEWS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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