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전략·예산안, AI·초혁신 비전 주력…3차례 미국行, 베선트 핫라인 가동
‘예산·금융 없는’ 재정경제부, 컨트롤타워 위상 과제
(세종=연합뉴스) 이준서 기자 =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6일로 공식임명 100일을 맞았다.
이재명 정부의 첫 경제지휘봉을 잡은 구윤철 부총리의 100일은 경제부처 조직개편과 대미(對美) 관세협상의 불확실성이 증폭한 시기였다.
이런 가운데 인공지능(AI)·초혁신 신산업을 중심으로 한국경제의 비전을 재설정하고,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부각하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를 전환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진행되는 한미 정상회담이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까지 관세협상의 불확실성이 이어지고 있고, 부동산시장 불안이 여전하다는 점은 ‘경제 컨트롤타워’로서 구 부총리의 어깨를 짓누르는 숙제로 꼽힌다.
대통령실 주도 조직개편을 둘러싼 기재부 내부의 불만을 추스르고 내년 재정경제부-기획예산처의 원활한 분리 작업을 이끄는 것도 과제다.
◇ 확장재정 정책전환…AI대전환 비전 주력
침체 우려가 짙었던 지난 7월 임명된 구윤철 부총리는 재정의 ‘경기 마중물’ 기능에 방점을 찍었다.
구 부총리는 내년도 예산안을 올해보다 8%대 증가한 총지출 728조원 규모로 편성하면서 확장재정 전환을 공식화했다.
다행히 12·3비상계엄 이후로 곤두박질쳤던 경제지표는 바닥을 다지며 반등의 계기를 마련했다.
1분기(-0.2%) 뒷걸음쳤던 성장률은 2분기 소비 회복과 수출 호조로 반등에 성공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집행과 맞물려 내수소비 심리도 조금씩 개선되는 조짐이다.
0%대로 내려앉았던 올해 성장 전망치도 1% 부근으로 상향 조정되고 있다. 2% 부근으로 추정되는 잠재성장률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최소한 0%대 성적표는 면하지 않겠느냐는 분위기다.
구 부총리는 단기적으로는 재정의 경기보완 기능에 무게를 두면서도 중장기적으로는 ‘AI 대전환’으로 주요 경제정책의 지향점을 맞췄다. 그 연장선에서 AI대전환과 초혁신경제 30대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새정부 경제성장전략’을 발표하고 후속조치를 내놓는 데 주력했다.
◇ 나흘마다 장관급 조율 강행군…조직개편 이후엔 ‘험로’ 우려
AI·초혁신경제 비전은 특정 부처의 범주를 넘어서는 과제라는 점에서 경제 컨트롤타워의 기능이 한층 부각되는 영역이다.
구 부총리가 장관급 ‘톱다운 조율’에 무게를 둔 것도 이런 측면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에 따르면, 구 부총리가 주재한 장관급 회의는 총 22회에 달한다. 이례적으로 길었던 추석 연휴를 제외하면 4일에 1회꼴로 장관급 회의를 개최한 셈이다.
내년 경제부처 개편은 컨트롤타워 기능을 약화하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구 부총리로서는 만만치 않은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각 민간업계의 이해관계와 맞닿아있는 다른 경제부처의 입장을 조율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경제 컨트롤타워’가 필수적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이 때문에 핵심 정책수단인 ‘예산’이 분리된 구조에서 ‘금융’ 기능까지 확보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내년초 출범하는 재정경제부가 얼마나 정책조율을 주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결과적으로 주요 정책들이 부처별 입맛대로 쏟아지면서 혼선을 빚고, 정권에도 직접적인 부메랑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일종의 ‘버퍼’ 역할을 하는 재정당국의 위상이 약화하는 만큼, 고스란히 대통령실이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와 국토교통부가 주도적으로 내놓은 부동산대책이 각론에서 충돌하고, 시장에도 상당한 역풍을 불러오고 있는 것은 단적인 사례로 꼽힌다.
◇ 관세협상 줄다리기 속 美베선트 지속 접촉
관세협상 역시 ‘구윤철의 100일’을 관통하는 주요 키워드다. 3차례 해외 출장지는 모두 미국이었다.
임명 열흘만인 7월 29일부터 나흘간 워싱턴DC를 찾아 무역협상 타결을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측의 갑작스러운 “긴급한 일정” 탓에 인천공항에서 발길을 돌리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미국 측의 ‘말바꾸기’로 이번 주 APEC 무대에서 또 정상급 타결을 시도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당시의 협상 타결로 고율의 상호관세 부과를 피하게 됐다는 평가다.
지난 9월 이재명 대통령의 ‘대한민국 투자 서밋’ 준비, 10월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 및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등의 일정에서도 카운터파트인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과의 접촉을 이어가며 통상 현안을 논의했다.
최근의 막바지 관세 협상에서는 협상의 ‘본체’를 놓고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전면에 나서기는 했지만, 후속 조치는 기재부의 과제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j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