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소설가 이상의 외침이 민요의 가락에 실려 서울 하늘을 난다. 국악합창 두레소리가 선보이는 공연 ‘오늘의 민요 – 근대소설을 노래하다’는 한국 근대문학의 정수를 오늘의 소리로 되살린다.
‘운수 좋은 날’, ‘날개’, ‘동백꽃’, ‘메밀꽃 필 무렵’,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익숙하게 읽던 작품들이 이번에는 ‘노래’로 되살아난다. 두레소리는 1920~30년대 소설 속 인물들의 삶과 감정을 오늘의 언어로 번역해, 민요의 장단과 화성 속에 녹여냈다. 인력거꾼 김첨지는 오늘도 서울의 거리를 달리고, 점순이는 봄감자를 캐며 속마음을 노래한다. 구보씨는 경성의 거리를 떠나 지하철 2호선을 탄다. 100년 전 문학 속 인물들이 2025년의 일상 속으로 걸어 들어오는 순간이다.
두레소리가 추구하는 ‘오늘의 민요’는 과거의 재현이 아니다. 그들은 “전통의 언어로 오늘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대금과 해금, 더블베이스, 피아노가 함께 어우러지는 무대는 국악의 음계 위에 현대의 감성을 얹는다. 그 결과는 낯설지만 묘하게 익숙한, 바로 ‘한국적인 합창’이다.
‘운수 좋은 날’을 모티브로 한 ‘김첨지는 오늘도 달린다’, ‘동백꽃’의 점순이 마음을 담은 ‘봄감자’, ‘메밀꽃 필 무렵’의 봉평 밤길을 노래한 ‘봉평 팔십리 밤길’, ‘날개’의 명문장을 변주한 ‘한번만 더 날자꾸나’, 그리고 구보씨의 하루를 서울 지하철로 옮긴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까지. 이 노래들은 문학과 음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이며, 감정의 재해석이다.
1920~30년대는 식민지의 어둠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삶의 의미를 모색하던 시기였다. 그 시절 작가들이 그려낸 현실은 가난, 소외, 불평등의 이야기였지만, 동시에 희망과 자존의 서사이기도 했다. 두레소리는 그 시대의 목소리를 ‘추억’이 아닌, 여전히 유효한 ‘질문’으로 되살려낸다. 김첨지의 고단한 하루는 오늘의 플랫폼 노동자를 떠올리게 하고, 점순이의 부끄러운 사랑은 아직도 존재하는 젠더의 벽을 비춘다. 구보씨의 방황은 불안정한 도시 청춘의 자화상이다.
두레소리는 윤동주의 시를 민요로 풀어내고,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노래하며 ‘살아 있는 전통’을 만들어왔다. 이번 공연은 그들의 음악 여정이 근대문학이라는 뿌리로 향하는 순간이자, K-문학의 근원을 소리로 탐구하는 시도다.
100년 전의 문장이 오늘의 멜로디로 다시 흐를 때, 과거와 현재, 문학과 음악, 청년과 어르신이 한 무대에서 만난다.
두레소리가 노래하는 ‘오늘의 민요’는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100년 전 김첨지의 눈물도, 오늘을 버텨내는 청춘의 한숨도 같은 곳에서 울린다. 근대문학의 언어가 낯설게 들리는 시대, 그 언어를 다시 부르는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여전히 ‘오늘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 그 노래는 단지 옛이야기의 회상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초상이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