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정화된 밤, 어둠 속 피어나는 빛처럼…

[아침을 열면서] 정화된 밤, 어둠 속 피어나는 빛처럼…

음악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을 대신 이야기해준다. 한 음 한 음이 마음의 결을 따라 흐를 때 우리는 일상 속에서 자주 잊고 지냈던 다양한 감정과 마주하게 된다.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사랑과 상실 같은 감정이 서로 교차하며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작은 울림을 만들어낸다.

 

며칠 전 필자는 20세기 초의 걸작 아널드 쉔베르크의 ‘정화된 밤’을 연주할 기회를 가졌다. 이 곡은 독일 시인 리하르트 데멜의 시 ‘두 사람’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달빛 아래 숲길을 함께 걷는 한 남녀의 마음속에서 교차하는 절망과 희망, 죄와 용서의 순간들을 섬세하게 음악으로 그려낸다.

 

특히 여자가 “나는 당신의 아이가 아닌 아이를 임신하고 있다”고 털어놓는 장면에서는 낮게 울리는 현악기의 떨림이 숲을 차갑게 감싸며 긴장감을 높이고 남자가 그녀를 안으며 용서를 전할 때는 화성이 점차 밝아지며 첫 새벽빛이 숲 사이로 스며드는 듯한 따스한 온기를 전한다. 이러한 순간마다 우리는 단순히 시 속 장면을 떠올리는 것을 넘어 인간 내면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함께 느끼게 된다. 작곡가 쉔베르크는 시 속 이야기만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흔들림과 구원의 순간을 그의 음악 속에 깊이 녹여낸 셈이다.

 

이 작품은 후기 낭만주의의 정점에 서 있으면서도 조성의 경계를 넘어 다채로운 화성과 색채감으로 음악적 깊이를 한층 확장한다. 쉔베르크는 선율과 화성을 유기적으로 엮어 전통적 음악 조성의 틀을 뛰어넘고 곡의 흐름에 따라 감정이 섬세하게 움직이도록 작곡했다. 낮게 시작하는 조용한 선율에서부터 긴장감이 서서히 쌓이는 전개, 그리고 예기치 못한 순간의 화성 변화까지 모든 요소가 긴밀하게 연결되며 음악 속 이야기를 더욱 생생하게 전달한다. 곡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자연스럽게 음악 속 인물들의 감정을 따라가며 단순한 감상을 넘어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림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쉔베르크의 작품은 듣는 이를 음악의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며 순간순간 마음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필자는 코리아나 챔버 뮤직 소사이어티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며 얼마 전 동료들과 함께 이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여러 번 연주했던 곡이었지만 이번에는 특히 새롭게 다가왔다. 연주를 준비하며 음 하나 하나와 음 사이의 숨결, 그리고 연주자들의 작은 감정선까지 함께 나누며 이 곡이 단순한 기술적 과제를 넘어 인간의 마음을 나누는 음악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음악이 단순히 소리를 들려주는 것을 넘어 마음의 울림과 공감을 만들어낼 수 있는 훌륭한 도구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정화된 밤’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절망 속에서도 서로를 통해 빛을 발견하고 어둠을 지나 점차 정화돼 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데멜의 시가 인간의 약함과 불안을 솔직하게 고백했다면 쉔베르크의 음악은 그 속에서 피어나는 용서와 구원의 가능성을 노래한다. 우리 모두는 삶 속에서 크고 작은 상처와 좌절을 경험하며 살아가는데 이 곡은 그런 순간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희망을 찾고 마음의 빛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전해 주고 있다.

Author: NEWS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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