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하모니카를 손에 쥐면 늘 한 가지 장면이 떠오른다. 낡은 거리, 저녁 햇살이 스며든 벤치, 그리고 어딘가 쓸쓸하지만 따뜻한 선율. 하모니카는 언제나 그렇게 인간적인 악기였다. 작고 단순하지만, 그 안에 담긴 숨결은 놀랍도록 깊고 정직하다.
그런 하모니카가 클래식 무대의 중심으로 들어설 수 있을까. 하모니시스트 박종성은 그 질문에 ‘예’라고 대답하는 사람이다. 그는 오랜 시간 하모니카의 예술적 가능성을 탐구하며, 이번에는 새로운 이름의 프로젝트 ‘하모니카 랩소디’를 선보인다. 11월 16일,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하모니카와 피아노, 그리고 스트링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함께하는 보기 드문 무대가 펼쳐진다. 11월 18일에는 동명의 앨범도 발매된다.
박종성은 하모니카를 ‘잘’ 부는 연주자가 아니다. 이번 공연에서 박종성은 연주와 지휘, 그리고 작·편곡까지 직접 맡았다. 악기를 다루는 손끝에서부터 악보를 바라보는 시선까지, 음악의 전 과정을 한 사람의 호흡으로 엮어낸다. “연주자와 작곡가, 지휘자의 관점을 함께 품고 싶었다”는 그의 말처럼, ‘하모니카 랩소디’는 음악 그 자체를 새롭게 바라보는 시도다.
프로그램은 다채롭고도 정교하다. 그리그의 ‘홀베르그 모음곡’이 서정적인 문을 열고, 제임스 무디의 ‘톨레도–스페인 환상곡’이 이국적인 색채를 더한다. 장 피에르 레베르베리의 ‘하모니카와 스트링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은 하모니카의 클래식적 가능성을 확장하며, 작곡가 김형준의 신작 ‘Autumn Romance’는 세계 초연으로 무대에 오른다. 후반부에는 피아졸라의 ‘Adios, Piazzolla’, 스피바코프스키의 ‘하모니카 협주곡’, 그리고 박종성의 손길로 편곡된 전래민요 ‘새야 새야’가 이어진다.
하모니카를 전공으로 삼은 첫 한국인, 그리고 세계하모니카대회 우승자. 박종성의 이력에는 언제나 ‘최초’라는 단어가 따라붙는다. 하지만 박종성이 진정으로 바라보는 것은 기록이 아니라 음악 그 자체다.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지휘를 전공하며 넓힌 시야, 그리고 오랜 시간 쌓아온 ‘오케스트라 프로젝트’의 경험이 이번 공연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박종성의 곁에는 피아니스트 신재민과 실내악단 앙상블 스페스(Ensemble SPES)가 함께한다. 베를린과 LA에서 수학한 신재민은 섬세한 감성으로, 서울시향과 KBS교향악단 등에서 활동한 연주자들이 모인 앙상블 스페스는 밀도 높은 앙상블로 하모니카의 숨결을 감싸 안는다.
박종성은 “하모니카는 작은 악기지만, 그 안에는 삶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숨을 불어넣는 만큼 진심이 담기니까요”라고 말한다.
박종성의 말처럼, 이번 무대는 협연을 넘어선 하나의 대화다. 인간의 호흡과 현악기의 울림, 그리고 피아노의 따뜻한 터치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공기. 그 속에서 하모니카는 더 이상 낯선 악기가 아니다.
11월의 서울,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울려 퍼질 ‘하모니카 랩소디’는 그 작은 악기가 들려줄 가장 큰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숨을 불어넣을 때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소리. 그것은 어쩌면 음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가장 순수한 대답일 것이다.
※새로운 문화, 그리고 그 안의 사람. ‘뉴컬에세이’는 예술의 순간을 감각적으로 포착하고, 그 여운을 글로 옮기는 코너입니다. 공연, 전시, 음악, 영화 등 다양한 문화 현상속에서 ‘지금 이 시대의 감성’을 발견합니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