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의 심리학 그가 당신을 세상과 단절시키는 방법과 이유
어느 날 문득, 당신의 전화기가 좀처럼 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때는 쉴 새 없이 메시지를 주고받던 친구들의 단체 대화방은, 이제 당신이 읽지 않은 숫자만 켜진 채 저 아래로 밀려나 있다.
주말마다 찾던 부모님의 집은, “이번 주는 바빠서 못 가”라는 당신의 기계적인 대답 속에 점점 멀어지는 풍경이 되었다. 당신의 세계가 좁아지고 있다.
아니, 이미 좁아져 버렸다. 당신의 세상에는 이제 오직 그 사람 하나만이 남아있는 것 같다.
당신은 아마 이것이 ‘사랑’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두 사람이 깊이 사랑하게 되면, 서로에게 집중하느라 다른 관계가 소홀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오히려 그와의 밀도 높은 시간이, 다른 모든 관계의 무의미함을 증명하는 것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단언컨대, 이것은 사랑의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이것은 ‘고립’이다. 그리고 이 고립은, 당신의 사랑이 너무 깊어서 발생한 아름다운 부수적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가 당신을 완벽하게 통제하기 위해, 아주 치밀하고 집요하게 설계한, 하나의 거대한 프로젝트다.
고립은 학대의 증상이 아니라, 학대가 자라나기 위한 필수적인 토양이다.
당신의 영혼을 가둘 감옥을 짓기 위해, 그는 가장 먼저 당신을 세상이라는 광활한 대지로부터 잘라내는 일부터 시작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울타리: 그가 세상을 지우는 방식
가해자가 당신의 세상을 단절시키는 방식은, 결코 “친구 만나지 마!”라는 식의 노골적이고 유치한 명령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당신은 즉시 저항했을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무서움은, 그것이 당신의 ‘자발적인’ 선택처럼 보이도록 설계되었다는 데 있다. 그는 당신의 손에 칼을 쥐여주고, 당신 스스로가 당신의 관계들을 끊어내도록 유도한다.
1. ‘걱정’이라는 이름의 가장 달콤한 독약
그는 당신의 주변 사람들을 정면으로 비난하지 않는다. 그는 그들을 ‘걱정’한다. 그리고 그들을 걱정함으로써, 당신을 ‘걱정’한다.
- – “네 친구 OOO 말이야, 나쁜 사람은 아닌데… 너무 충동적인 것 같아. 네가 물들까 봐 걱정돼.”
- – “부모님이 널 사랑하시는 건 알겠는데, 너무 간섭이 심하신 거 아니야? 네가 스트레스받는 게 내 눈에 보여.”
- – “네 직장 동료들, 너한테는 웃지만 뒤에서는 다 네 얘기할걸? 그 사람들 너무 믿지 마. 내가 다 알아.”
이 말들은 ‘비난’이 아닌 ‘보호’의 언어로 다가온다. 그는 당신의 세상에서 유일하게 당신의 편에 서서, 당신을 해칠지도 모르는 외부의 위협을 식별해 주는 혜안을 가진 사람처럼 군다.
당신은 그의 이 ‘진심 어린 조언’을 들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당신의 사람들에게서 한 걸음 물러서게 된다. 그들의 순수한 호의에 의심의 필터가 끼기 시작한다.
나는 이것이 고립 전략의 가장 초기이자 가장 효과적인 단계라고 본다. 그는 당신의 마음속에, ‘그 사람’ 대 ‘세상’이라는 이분법적인 대립 구도를 만든다.
그리고 당신은 자연스럽게, 유일하게 나를 이해하고 보호해 주는 그의 편에 서기로 선택한다.
2. 시간과 감정이라는 자원의 독점
관계는 시간과 감정이라는 자원을 먹고 자란다. 가해자는 이 두 가지 자원을 완벽하게 독점함으로써, 당신이 다른 관계에 투자할 에너지를 단 한 방울도 남기지 않는다.
그는 당신의 모든 시간을 요구한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메시지는 끊이지 않는다. 퇴근 후에는 무조건 자신을 만나야 하며, 주말은 당연히 그와 함께 보내야 한다.
당신이 잠시라도 다른 일(친구와의 약속, 취미 생활, 혹은 그저 혼자 쉬는 시간)을 가지려 하면, 그는 즉시 ‘사랑이 식었다’거나 ‘서운하다’며 당신에게 죄책감을 주입한다.
당신은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투자할 시간이 물리적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감정의 고갈이다. 그와의 관계는 늘 긴장의 연속이다.
그의 기분을 맞춰야 하고, 그의 불안을 달래야 하며, 수시로 터지는 갈등을 수습해야 한다.
당신은 이 하나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지쳐버린 나머지, 다른 누군가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감정을 교류할 여력조차 남지 않게 된다.
친구들은 결국 당신을 ‘너무 바쁜 사람’, 혹은 ‘사랑에 빠져 변해버린 사람’으로 여기며 하나둘 연락을 포기한다.
그는 당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당신의 ‘피로’와 친구들의 ‘체념’을 이용해 당신을 완벽하게 고립시킨다.
3. 갈등을 이용한 인질극
당신이 이 모든 압력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려 할 때, 그는 마지막 카드를 꺼낸다. 그것은 바로 ‘갈등’이다.
- – 당신이 친구들과의 저녁 약속을 잡은 날, 그는 어김없이 아프거나, 회사에서 최악의 일이 있었다며 절망적인 표정을 짓는다. 당신은 그를 두고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 – 당신이 부모님 댁에 가기로 한 주말, 그는 당신의 사소한 과거 실수를 끄집어내며 대판 싸움을 건다. 당신은 엉망이 된 기분으로 약속을 취소할 수밖에 없다.
당신은 무의식적으로 학습하게 된다. ‘내가 다른 사람을 만나려 하면 = 끔찍한 갈등이 벌어진다.’ 반대로,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면 = (적어도 그 순간은) 평화롭다.’
인간의 뇌는 고통을 피하고 안정을 추구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당신은 이 지옥 같은 갈등을 피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당신의 약속을 취소하고, 당신의 세계를 포기한다.
그는 당신을 협박한 적이 없다. 그는 그저, 당신 스스로가 고립을 선택하도록 당신의 환경을 ‘설계’했을 뿐이다.
고립된 섬에서 일어나는 일: 현실의 해체
그가 이토록 집요하게 당신을 고립시키는 이유는, 단순히 당신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가 아니다. 나는 그의 진짜 목적이 훨씬 더 근본적인 것에 있다고 확신한다. 그것은 바로, 당신의 ‘현실 감각’을 파괴하는 것이다.
고립의 진정한 목적은 당신의 물리적 이동을 막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정신적 좌표를 빼앗는 데 있다.
1. 단 하나의 목소리, 단 하나의 진실
우리는 타인이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 자신을 보고, 우리가 겪는 현실을 검증받는다. 당신이 그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당신이 친구에게 “나 이런 일이 있었어”라고 말하면, 친구는 “그건 정상이 아니야.
그 사람 이상해”라고 말해줄 것이다. 가족들은 “당장 헤어져라”고 당신을 보호하려 할 것이다.
이 외부의 목소리들은, 당신이 겪는 일이 ‘학대’임을 인지하게 하는 ‘현실 검증(Reality Check)’의 기능을 한다. 가해자에게 이 목소리들은, 자신의 통제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 있는 가장 위험한 바이러스다.
그가 당신을 고립시키는 이유는, 이 모든 ‘현실 검증’의 창구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당신의 세계에 당신과 그, 단둘만 남게 되면, 그의 목소리는 당신이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목소리가 된다.
그의 주관적인 현실이, 당신의 객관적인 진실을 대체하게 된다.
당신의 세계는 창문이 모두 검게 칠해진 방과 같아진다. 당신은 방 안에 갇혀, 바깥이 낮인지 밤인지, 해가 떴는지 비가 오는지 알 수 없게 된다.
당신은 오직 방주인인 그의 입을 통해서만 바깥 날씨를 전해 들을 수 있다. 그가 “지금 밖은 폭풍우가 몰아쳐. 나 없으면 넌 큰일 나”라고 말하면, 당신은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이 완벽하게 통제된 환경 속에서, 비로소 ‘가스라이팅’은 그 위력을 발휘한다. “네가 예민한 거야”, “그런 적 없는데?”라는 그의 거짓말은, 더 이상 반박될 가능성이 없는 유일한 진실이 된다.
2. 의존성의 완성: 질병을 퍼뜨리고, 치료제를 독점하다
그는 당신의 모든 지지 기반을 체계적으로 무너뜨린 후, 아이러니하게도 당신에게 유일한 지지자인 척 행동한다.
- – “봐, 네 곁엔 이제 나밖에 없잖아.”
- – “그렇게 성격이 예민한 너를, 나니까 받아주는 거야.”
- – “세상은 다 위험해. 내 곁이 가장 안전해.”
나는 이것이 학대 관계에서 일어나는 가장 소름 끼치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당신의 다리를 부러뜨린 장본인이면서, 동시에 당신에게 목발을 건네주는 유일한 구원자를 연기한다.
그는 당신을 병들게 한 바이러스를 퍼뜨린 장본인이면서, 그 병을 잠시 멎게 할 진통제를 독점 공급한다.
당신은 자신을 파괴한 그 사람에게, 동시에 생존을 의지해야 하는 끔찍한 모순에 빠진다. 떠나는 것은, 단순히 그를 잃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지는 것, 나를 지탱해 주던 유일한(그렇게 믿게 된) 목발을 버리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고립은 그렇게, 당신의 심리적 독립성을 완전히 거세하고, 그에게 영구적으로 의존하게 만드는 완벽한 시스템을 완성한다.
당신이 지금 느끼는 그 지독한 외로움과 무력감은, 당신의 사랑이 실패했다는 신호가 아니다.
그것은 그가 설계한 ‘고립’이라는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완수되었음을 알리는 신호다. 당신은 사랑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정교한 심리적 공성에서 성벽이 무너진 것뿐이다.
당신은 세상으로부터 잊힌 것이 아니다. 당신은 의도적으로 ‘단절당한’ 것이다.
이 잔인한 설계도를 이해하는 것은, 당신을 짓누르던 자책감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었다.
당신이 친구들에게 소홀했던 것도, 가족들에게 무심했던 것도, 당신의 본성이 그러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감옥에서 탈출하는 첫 번째 방법은, 내가 감옥에 갇혀있음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감옥의 벽이, 사실은 당신의 공포와 죄책감, 그리고 그가 주입한 거짓말로 지어져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세상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당신에게 무심하지 않다. 당신이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그 관계들은, 여전히 저 문밖에 존재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가 칠해놓은 창문의 검은 페인트를 긁어내고, 바깥세상을 향해 아주 작은 목소리로라도 당신의 존재를 알리는, 단 한 번의 용기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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