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한국 공포영화가 다시금 그 본질적 두려움의 근원으로 회귀하고 있다. ‘강령: 귀신놀이’는 하이틴이라는 장르적 프레임과 오컬트라는 전통적 공포의 문법을 결합하면서, 그 안에 ‘서사’와 ‘정서’라는 한국 공포 특유의 깊이를 밀도 있게 새겨 넣는다. 작품은 피상적인 점프 스케어나 상투적 빙의, 저주 설정을 넘어, “공포란 무엇인가, 어디서 비롯되는가”라는 질문을 정면으로 던진다. 그리고 그 답은 놀랍게도 강령술이라는 의식이 아니라, 그 의식을 매개로 얽힌 10대들의 관계, 감정, 균열 속에서 서서히 드러난다.
‘강령: 귀신놀이’의 이러한 정서적 긴장과 관계 중심 서사는 국내를 넘어 글로벌 장르 영화 시장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작품은 2025년 제58회 시체스국제판타스틱영화제 브리가둔(Brigadoon) 섹션에 공식 초청되어 성황리에 상영되며, 유럽을 대표하는 장르영화 팬들과 평론가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시체스영화제는 매년 30만 명 이상의 관객이 찾는 유럽 최대 규모의 판타스틱 영화제로, 브뤼셀·판타스포르토와 함께 세계 3대 판타스틱영화제로 꼽힌다. 영화제 측은 ‘강령: 귀신놀이’에 대해 “한국 공포 특유의 연대적 정서와 현대적 비주얼을 결합한 수작”이라 평하며, “미스터리, 기교적 공포, 심리적 서스펜스를 절묘하게 교차시킨 흥미로운 작품”이라 평가했다.
이는 해외 영화제 초청이라는 외형적 성과가 아닌, 한국 공포영화의 정서가 어떻게 국제 관객과 정서적으로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특히 ‘강령: 귀신놀이’는 공포의 자극보다는 감정의 균열과 관계의 해체에서 오는 서늘함에 집중하며, 그 섬세한 공포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긴 여운을 남겼다. 이처럼 서사와 정서의 밀도가 강한 공포는 유럽 장르 영화 시장에서도 새로운 유형으로 받아들여졌고, 이는 곧 전 세계적 관심으로 확장되었다.
시체스를 출발점으로 삼은 글로벌 여정은 빠르게 확장되었다. 작품은 스페인에서의 호응에 이어, 북유럽 최대 장르 영화제인 스웨덴의 룬드국제판타스틱영화제(제31회)에 공식 초청되어, 차가운 북유럽의 정서 안에서도 감정 중심의 공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다시금 입증했다. 룬드영화제는 서사성과 실험성을 모두 갖춘 작품들이 조명받는 곳으로, ‘강령: 귀신놀이’는 하이틴이라는 외형적 장르 속에 숨겨진 정서적 깊이로 현지 관객들에게 강한 울림을 주었다.
아시아권에서도 반응은 뜨거웠다. 2025년 8월 베트남 개봉 당시, “한국 공포는 감정선이 다르다”, “귀신놀이라는 가벼운 설정에서 시작해 진짜 공포로 끝난다”는 평가와 함께 현지 젊은 관객층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퍼졌고, 캄보디아를 비롯해 미국, 영국, 일본, 이탈리아, 홍콩, 태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대만, 몽골 등 다양한 국가에서 극장 개봉 또는 VOD 유통이 예정되어 있다. 이 같은 확장성은 유통망의 성장 뿐만 아니라, 한국 공포영화가 가진 정서의 힘, 그리고 감정 기반의 공포 서사가 전 세계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작품은 ‘가볍게 시작한 귀신놀이’라는 익숙한 청소년 호러의 도입부에서 출발하지만, 빠르게 전형적인 공포의 궤적에서 벗어난다. 강령술이라는 장치는 자극적인 이야기의 장치가 아니라, 억눌린 감정과 관계의 균열을 폭로하는 무대로 기능한다. 지하 저수조라는 폐쇄적 공간은 그 자체로 공포감을 조성하는 장소를 넘어서, 인물들 각자의 심리적 고립감을 투영하는 심상적 무대로 작동한다. 이곳에서 캐릭터들은 초자연적 존재보다 더 두려운, 자신과 타인에 대한 불신과 배신을 직면하게 된다. 공포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내부에서 피어난다. 이 영화가 ‘한국적’이라는 평을 받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한국 공포영화는 언제나 귀신보다 사람을 무서워했다.
서사는 익숙한 데스게임 구조를 닮아 있다. 강령술을 기점으로 하나둘 무너져가는 관계와 그에 따른 공포 상황은 긴장감 넘치는 전개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강령: 귀신놀이’는 누가 죽고 누가 살아남느냐에 집중하는 장르적 쾌감보다, 이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었고 어디서 끊어졌는가에 더 큰 관심을 둔다. 주인공 자영(김예림)은 동생 서우(박서연)를 지키겠다는 약속을 되새기며 공포를 마주하는 동시에 관계의 회복을 시도한다. 동준(이찬형), 기호(서동현), 예은(오소현), 미연(김은비) 등 각각의 캐릭터는 표면적인 희생자나 단순화된 조연이 아니라, 비밀과 욕망을 품은 입체적인 인물로 제시된다. 이들의 선택은 전개를 이끄는 동력으로 작용하며, 인간 드라마로 확장된 서사는 이야기 전체에 복합적인 서스펜스를 부여한다.
연출 면에서는 ‘보여주지 않음’의 미학이 돋보인다. 괴물의 형상이나 초자연적 실체를 과하게 시각화하지 않고, 의식의 반복, 부적의 흔들림, 검은 물의 파동 같은 상징적 이미지들을 통해 불안과 공포를 시각적으로 환기한다. 특히 캐릭터들의 대사와 비주얼이 절묘하게 맞물린 포스터 시리즈는 각각의 인물이 지닌 감정과 이야기의 함축을 시적으로 보여준다. “지켜주기로 약속했거든”, “예지를 받고 모두 실종된다! 대박이지?” 같은 대사들은 공포의 본질이 예언이나 사건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쌓여온 감정의 결과임을 암시한다.
음향 연출 역시 깊은 인상을 남긴다. 침묵과 공허, 그리고 공간감을 강조하는 소리는 인물의 심리와 낯선 공간의 정서를 공감각적으로 체험하게 만든다. 시체스영화제 측이 “연대적 정서와 현대적 비주얼을 결합한 수작”으로 평한 이유이기도 하다.
‘강령: 귀신놀이’는 한국형 오컬트 호러의 계보에서 흥미로운 분기점이 된다. ‘곤지암’, ‘파묘’가 다큐멘터리적 접근과 전통 신앙의 미스터리를 파고들었다면, ‘강령: 귀신놀이’는 하이틴 드라마와 주술적 공포라는 이질적인 장르의 접점을 찾아내며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한다. 이는 젊은 관객층을 타깃으로 한 전략적 장르 혼합이라기보다, 공포가 감정의 일그러짐에서 비롯된다는 원초적 진실을 가장 예민하고 위태로운 시기인 10대 관계를 통해 드러낸다는 점에서, ‘강령: 귀신놀이’는 의미 있는 장르적 진화를 이뤄냈다.
강령술은 그저 무언가를 불러내는 의식이 아니다. 영화에서 ‘소환’된 것은 귀신이 아니라, 감정, 상처, 그리고 무너진 관계들이다. 누군가를 불러냈다는 행위 자체보다 더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그것을 시도한 인물들의 내면과 그들 사이의 균열이다. ‘강령: 귀신놀이’는 그런 감정의 무의식적 소환이 어떻게 파국을 불러오는지, 그리고 그 파국이 어떻게 공포의 얼굴을 바꾸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결국 이 영화가 국제 장르 영화제에서 연이어 초청되고, 북유럽부터 동남아시아, 미주와 유럽 전역까지 확장되는 흐름은 단지 장르적 재미나 형식적 완성도 때문만이 아니다. 세계 각국의 관객들이 이 작품을 통해 느끼는 공포는 문화적 차이를 초월해 통용되는, 인간관계에 대한 불안, 감정의 억압, 예측 불가능한 청춘의 위태로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강령: 귀신놀이’는 바로 그 지점에서 한국 공포영화가 여전히 세계 장르 시장 안에서 독창적이고 강력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음을 증명한다.
‘강령: 귀신놀이’는 공포의 장르적 확장 뿐만 아니라, 한국 콘텐츠가 세계 무대에서 어떤 방식으로 감정적 공명을 일으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그 공포는 소리치지 않지만, 오래 남는다. 그리고 그 침묵의 공포는 국경을 넘어 전 세계 관객들을 향해,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속삭이고 있다:
“들어오세요.”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