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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러시아 연구팀이 미세중력 환경에서 쥐의 갑상선 조직을 3D 프린팅하는 데 성공했다. 지상으로 돌아온 조직은 구조를 온전히 유지했고, 연구팀은 “인간 장기 제작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6년이 지난 지금, 이 기술로 치료받은 환자는 아직 없다.
우주의학 연구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실험실 성과가 병원 침상까지 도달하는 길은 여전히 멀다. 안전성 검증, 기술 표준화, 비용 절감, 규제 승인 등 단계마다 넘어야 할 장벽이 있다. 인하대병원 연구팀이 10년간 축적한 고중력 실험 데이터와 재생의료 연구 성과가 실제 환자에게 도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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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성, 모든 것에 앞서는 과제
새로운 의료기술 상용화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안전성이다. 김규태 인하대 우주항공의과학연구소 연구교수는 이를 최우선 과제로 꼽는다.
김 교수는 “고중력 노출은 혈압 상승, 부정맥, 뇌 혈류 저하를 유발할 수 있으며, 고령자나 심혈관 질환 환자에게 안전한 하중 범위를 규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어지럼증, 구토, 평형감각 장애 등의 부작용과 적정 자극 강도, 시간에 대한 임상 기준 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줄기세포나 엑소좀 치료 역시 장기적 안전성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다. 특히 면역 반응, 종양 형성 가능성, 예상치 못한 부작용 등을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 우주환경에서 개발된 기술을 지상에 적용할 때는 환경 차이를 고려한 추가 검증도 필요하다.
동물실험에서 효과가 입증되었다고 해서 바로 인간에게 적용할 수는 없다. 통상 동물실험 이후 1상(안전성), 2상(효능), 3상(대규모 검증) 임상시험을 거쳐야 하며, 이 과정만 최소 5년에서 10년이 걸린다. 고중력 치료나 우주 기반 줄기세포 치료의 경우 기존 치료법과 다른 새로운 메커니즘이므로 더 신중한 검증이 요구된다.
기술 표준화, 일관된 품질의 출발점
안전성과 함께 중요한 과제가 기술 표준화와 품질 관리다. 김 교수는 “줄기세포나 엑소좀의 경우 배양 조건, 분리 방법, 보관 방식에 따라 특성이 달라질 수 있다”며 일관된 품질의 치료제를 생산하기 위한 표준화된 프로토콜 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줄기세포 연구는 기관마다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어떤 곳은 골수 유래 줄기세포를, 또 다른 곳은 지방 유래 줄기세포를 사용한다. 배양 기간, 온도, 배지 조성도 제각각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연구 결과를 비교하거나 재현하기 어렵고, 치료제로 개발할 때도 일관된 효과를 보장할 수 없다.
엑소좀은 더 복잡하다. 분리 방법만 해도 초원심분리, 크기 배제 크로마토그래피, 침전법 등 여러 가지가 있으며, 각 방식에 따라 순도와 수율이 다르다. 엑소좀에 포함된 물질의 종류와 양도 달라진다.
국제적으로는 국제세포치료학회(ISCT), 국제엑소좀학회(ISEV) 등에서 표준화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지만, 아직 완성 단계는 아니다. 우주환경에서 생산된 줄기세포나 조직의 경우 지상 기준과는 별도의 품질 관리 기준이 필요할 수 있다.
비용 절감, 의료 접근성의 관건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비용이 너무 높으면 실용화되기 어렵다. 김 교수는 “우주환경을 활용한 연구는 현재로서는 비용이 매우 많이 든다”며 “지상에서 미세중력 환경을 재현하는 기술 개발, 대량 생산 공정 확립 등을 통해 비용을 낮춰야 더 많은 환자가 혜택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ISS에서 한 번의 실험을 수행하는 데는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이 든다. 발사 비용, 우주정거장 사용료, 장비 개발비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이런 비용 구조로는 상용화가 불가능하다.
해결책은 두 가지 방향에서 모색되고 있다. 첫째, 지상에서 미세중력 환경을 재현하는 기술이다. 낙하탑, 포물선 비행, 자기 부상 등의 방법으로 짧은 시간 동안 미세중력을 만들 수 있다. 완전한 우주환경은 아니지만, 일부 실험에는 충분히 활용 가능하다.
둘째, 민간 우주 산업의 발전이다. 스페이스X, 블루오리진 등 민간 기업이 발사 비용을 크게 낮추고 있다. 앞으로 10년 이내에 우주 실험 비용이 현재의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고중력 치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김 교수는 “기존 원심 분리형 G-시뮬레이터는 크고 고가이므로 병원이나 가정용으로 쓸 수 있는 콤팩트형 기기 개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개인의 심박수, 호흡, 뇌파, 혈압 등을 실시간 모니터링해 맞춤형 가속도를 조절하는 정밀 제어 기술도 요구된다.
규제 승인, 새로운 길을 만드는 과정
기술이 완성되고 안전성이 입증되어도, 의료기기나 치료제로 승인받지 못하면 환자에게 제공할 수 없다. 김 교수는 “고중력 시뮬레이터를 단순 훈련 장치가 아닌 의료기기로 승인받으려면 안전성과 유효성 임상시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기존 규제 체계가 이런 새로운 기술을 상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중력 치료는 약물도 아니고 수술도 아니며, 기존의 물리치료나 재활치료와도 다르다. 어떤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지부터 정해야 한다.
줄기세포 치료제의 경우 한국은 조건부 허가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일정 수준의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되면 조건부로 시판을 허가하고, 시판 후 추가 자료를 수집해 최종 승인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이런 유연한 제도가 새로운 우주의학 기술에도 적용될 수 있을지 논의가 필요하다.
최정석 인하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국제 협력과 융합 연구를 통해 우주에서 얻은 통찰이 지상 의료 혁신으로 확장될 때, 인류는 고령화 사회를 대응하는 새로운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이러한 기술들이 실제 환자에게 도달하기까지는 안전성 검증, 규제 승인, 비용 절감 등 해결해야 할 단계들이 남아 있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디지털 헬스와의 융합
미래 우주의학 기술의 상용화는 디지털 헬스 기술과의 융합을 통해 가속화될 수 있다. 김 교수는 “웨어러블 기기와 고중력 시뮬레이터를 통합하면 생체신호를 실시간 모니터링하면서 개별 환자의 최적 중력 강도를 자동 조절하는 스마트 재활 장치 개발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소형화된 고중력 훈련 장치를 활용하면, 고령자가 가정에서도 안전하게 재활과 운동 치료를 지속할 수 있다”며 원격 의료 및 홈케어로의 확장 가능성을 전망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급성장한 디지털 치료제(DTx) 트렌드와도 맞닿아 있다. 개인 맞춤형 치료와 원격 모니터링이 의료의 새로운 표준이 되고 있는 시점에서, 우주의학 기술도 이런 흐름에 맞춰 발전할 필요가 있다.
한국 우주의학의 현재 위치
국제적 맥락에서 한국 우주의학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다. 미국 NASA, 유럽 ESA, 러시아 로스코스모스 등은 1960년대부터 우주의학 연구를 시작해 수십 년간 데이터와 인프라를 축적했다. 중국은 최근 항저우 CHIEF(중국 고중력 시설)를 완공하며 세계 최대 규모의 연구 인프라를 확보했다. 일본 역시 JAXA를 중심으로 미세중력 실험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했지만, 인하대처럼 특정 분야에 집중해 독창적인 성과를 내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고중력을 활용한 신경의학 연구나 재생의료 응용 연구는 국제적으로도 드문 접근이다.
다만 규모와 지속성 면에서는 여전히 과제가 많다. 김 교수는 “다양한 우주환경을 모사하는 장비를 개발·운영하면서 복합 환경 자극에 대한 생물학적 영향을 지속적으로 연구할 계획”이라며 “장기 우주탐사를 위한 생체 기능 측정 장비 개발도 병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단계별 로드맵, 현실적 전망
우주의학의 연구 성과는 보통 실제 의료 현장에 도달하기까지는 짧게는 5년, 길게는 2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먼저 변화가 예상되는 시점은 2030년 이전, 향후 5년 안이다. 이 시기에는 지상 기반의 미세중력 시뮬레이션 기술이 상용화되고, 우주 실험 데이터를 활용한 신약 효능 검증 프로토콜이 확립될 가능성이 크다. 고중력 기반 재활치료 역시 안전성 검증을 마치고 초기 임상시험 단계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2035년 전후, 약 10년 안에는 엑소좀 기반 치료제의 1세대 제품이 등장하고, 우주환경에서 배양한 줄기세포 기술이 상업적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디지털 헬스와 연동된 고중력 치료기기가 시판되면서 병원 중심의 재활·예방의료가 가정으로 확장될 가능성도 있다.
2045년 이후에는 우주 기반 3D 바이오프린팅으로 제작된 조직이 임상에 적용되고, 개인 맞춤형 우주의학 프로그램이 보편화될 것으로 보인다. 장기 우주탐사를 위해 개발된 의료 기술이 지상의 고령층 건강관리 체계에 통합되는 것도 이 시기의 주요 변화로 예상된다.
물론 이는 낙관적인 시나리오다. 예상치 못한 기술적 장벽이나 규제 문제로 일정이 지연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정책적 지원과 기술 혁신이 더해질 경우 현실화 속도가 앞당겨질 가능성도 있다.
윤리적 고려 사항
새로운 의료기술의 발전은 항상 윤리적 질문을 동반한다. 김 교수는 “고령자 및 환자군 대상 임상시험에서는 심혈관계 부담 위험이 크므로 초기 연구에서 안전 기준이 엄격히 설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접근성 문제도 있다. 김 교수는 “고가 장비일 경우 일부 병원이나 재활센터에만 적용되는 불평등이 발생하며, 보험 적용 및 비용 절감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우주의학 기술이 부유층만의 전유물이 되지 않으려면, 개발 초기부터 보편적 접근성을 고려한 설계가 필요하다. 건강보험 적용 범위와 공공의료 기관 활용 방안도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우주의학이 열어갈 미래
인하대 연구팀의 10년 연구는 하나의 사실을 보여준다. 우주의학은 더 이상 우주비행사만을 위한 학문이 아니다. 극한 환경에서 발견한 인체의 적응 메커니즘과 치료 가능성은 지상의 수많은 환자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다.
김 교수는 “우주의학은 미래 의학의 시험장이자 영감의 원천”이라며 “우주는 인체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극한의 환경을 제공하며, 이 환경에서 인체가 어떻게 적응하고 변화하는지를 이해하면 노화, 신경질환, 면역질환, 근골격계 질환 등 지구상의 난제 해결에도 직접적으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그는 “우주의학은 단순히 의학 지식만으로는 부족하며, 의학·공학·생명과학·데이터과학·심리학이 융합된 다학제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도전 정신과 창의력이 필요합니다. 우주라는 환경은 기존의 교과서적 지식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으며, 실험 장비와 측정법, 치료법 등을 모두 새롭게 발명하거나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에 의한 미래의 혜택은 우리 모두의 자산이다. 우주인의 뼈 손실 연구는 골다공증 치료법으로, 우주 방사선 연구는 암과 치매 예방 연구로, 우주 환경에서의 인지 기능 변화 연구는 노인성 치매와 우울증 조기 진단법으로 발전할 수 있다.
실험실에서 병원으로, 병원에서 가정으로. 우주의학이 일상의 건강관리로 자리 잡는 그날까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다. 그러나 인하대 연구팀처럼 꾸준히 실험실의 경계를 넓혀가는 연구자들이 있는 한, 그 미래는 머지않을 것이다.
- 김정아 기자 jungy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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