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os 테이블
」
삶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세 가지를 ‘의식주’라 부른다. 나는 이 단어의 순서에도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IMF 이후 삶의 여유가 조금씩 생기자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타인에게 ‘보이는 나’에 대한 감각이 깨어나고, 삶을 구성하는 이미지와 태도가 점점 중요한 기준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중 사람들이 가장 먼저 반응한 건 패션이었다. 온라인에서 말보다 이미지가 앞서는 시대가 열리면서 우리는 점차 하루의 착장으로 자신을 설명하는 방식에 익숙해졌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두 번째 관심사는 식문화였다. ‘먹는 즐거움’이야말로 비교적 쉽게 도달할 수 있는 만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팬데믹을 기점으로 ‘주’의 시대가 열렸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자 많은 사람이 집에 애정을 갖게 됐고, 나 또한 그 변화의 흐름 속에서 리빙이라는 영역의 무게를 새삼 실감했다. 리빙은 패션이나 식문화처럼 빠르게 변하지 않는다. 디자인 하나가 수십 년 넘게 오랫동안 사랑받기도 하고, 기술보다 감각이 더 오래가기도 한다. 리빙에서 ‘클래식’이란 단어가 유독 각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이러한 의미에서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디자인은 안젤로 만자로티(Angelo Mangiarotti)가 고안한 ‘에로스(Eros)’ 테이블이다. 몇 해 전 밀란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로비에서 이 테이블과 처음 마주했다. 견고한 대리석 테이블 위로 2m에 달하는 조형물이 올려져 있었지만, 정작 그 공간을 압도한 건 테이블의 존재감이었다. 어떤 조명보다 묵직했고, 어떤 예술품보다 간결한. 그날 이후 나는 안젤로 만자로티에 대해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건축가였던 만자로티는 ‘조형의 아름다움은 구조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철학 아래 나사나 접착제 없이 중력과 절단 각도로 조립되는 구조물을 설계했다. 그 정합성과 간결함은 시대를 초월해 지금까지 유효하다. 1971년에 디자인된 이 제품은 오늘날에도 불가리 호텔, 디올 플래그십 스토어 등에서 당당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가 남긴 디자인은 많지 않다. 그러나 에로스 테이블 하나만으로도 그는 동시대의 가장 ‘건축적 사고를 가진 디자이너’로 남을 만하다. 그는 시간보다 깊고, 형태보다 단단한 가치를 설계하기 때문이다.
리빙 분야에 몸담고 있는 나는 늘 ‘진정한 럭셔리’가 무엇인지 생각한다. 그것은 값비싼 소재나 과시적 디자인이 아니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질리지 않고 스스로 가치를 증명해 내는 태도에 있다. 결국 리빙에서 럭셔리는 곧 타임리스이며, 그 시간을 견디게 하는 본질은 건축적 요소에 있다. 건축은 5년, 10년이 아닌 50년, 100년을 내다보고 이행돼야 하는 영역이다. 얼마 전 ‘파르스’는 이 테이블을 직접 들여와 국내에 소개했다. 널리 알리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결정은 오래전부터 내가 가져온 태도이자 외치고 싶은 선언에 가까운 결정이었다. 제품이 단지 아름답거나 귀해서가 아니다. 삶을 구성하는 방식에 대해 내가 오래 품어온 질문과 지향점이 그 구조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리빙이라는 단어를 단순히 가구나 공간의 스타일링으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를 말하는 방식이자, 사물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려는 개인의 언어다. 그런 점에서 만자로티의 디자인은 ‘쓰는 사람’을 중심에 둔 철학에 기반한다.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특정한 무게와 각도를 요구하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일상에 조용히 들어설 수 있는 열린 구조를 지향한다. 디자인은 결국 삶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다. 나는 이 테이블을 통해 ‘시간을 지탱하는 디자인’을 이야기하고 싶다. 가볍게 소비되지 않고, 매일의 생활에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사물. 아가페까사의 에로스 테이블은 그런 의미에서 동시대의 클래식이라 할 만하다.
최승민
타임리스한 가치를 기준으로 하이엔드 리빙 신을 리드하는 ‘파르스(PARS)’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