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스포츠에 새 바람이 분다. 승강제는 ‘경기력에 따라 팀이 상·하위 리그로 오르내리는 제도’다. 흔히 ‘스포츠 피라미드’로 불린다. 더 넓고 공정한 경쟁의 장을 열어 리그의 건강한 성장과 지역 균형, 시장 자생력을 키우는 장치다.
한국에서는 승강제의 의미가 더 크다.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을 하나의 사다리로 묶어내는 통합 구조를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2016년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가 통합 체육회로 합쳐진 것이 통합의 시발점이었다면, 승강제는 그 통합을 실질적인 결실로 완성할 열쇠다.
제도가 안착하면 한국 체육의 패러다임이 바뀐다. 참여 저변이 넓어지고, 관련 산업과 지역 경제에도 상당한 파급 효과가 기대된다. 아직 재정·인프라·제도 보완이라는 숙제가 남아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승강제가 한국 체육의 체질 개선과 새판짜기에 있어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데일리는 한국형 승강제가 나아갈 길을 4회에 걸쳐 집중 조명한다.
<편집자 주> 
[뒤스부르크=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독일 프로축구 3부리그에 속한 MSV 뒤스부르크는 크게 주목받는 팀은 아니다. 인구 50만의 작은 도시인 뒤스부르크가 연고지다. 지난 시즌 4부리그에서 활약하다 이번 시즌 3부리그로 승격했다.
과거 ‘테리우스’ 안정환이 2006년 이 팀에서 뛴 적이 있고 박상인(1981~82), 서영재(2018~19) 등도 잠시 거치는 등 한국과는 나름 인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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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가 현지 취재를 통해 뒤스부르크 구단을 찾은 이유는 이 팀이 하부리그에서 어떻게 생존하기 위해 노력하는지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뒤스부르크 구단은 1902년 창단 후 무려 123년 역사를 자랑한다. 1963년 지금의 분데스리가(1부리그)가 출범할 당시 창립멤버였다. 안정환이 잠시 뛰었던 2000년대에는 1부리그 중견 팀이었다. 2010년대 초반까지도 최소 2부리그 밑으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2013년 구단이 심각한 재정난을 겪으면서 3부리그로 추락했다. 2023년에는 ‘프로 라이센스’ 자격을 박탈당해 지역리그인 4부리그까지 떨어지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구단이 회생하기 어렵다는 암울한 전망이 지역사회에서 쏟아졌다.
하지만 뒤스부르크는 구단 시스템을 싹 바꾸면서 한 시즌만에 3부리그로 복귀했다. 이번 시즌 3부리그에서 무패 행진(7승 3무)을 이어가며 1위를 달리고 있다. 지금 추세라면 다음 시즌 2부리그 승격이 유력하다.
2023~24시즌 뒤스부르크는 약 100만 유로(약 16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불과 1년 뒤인 2024~25시즌에는 약 50만 유로(약 8억원)의 흑자를 내면서 재정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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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밀착 마케팅…구단 후원 문턱을 낮춰라
뒤스부르크가 구단 존폐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지역 밀착 마케팅 덕분이었다. 독일 서쪽에 위치한 뒤스부르크는 인근에 위치한 도르트문트를 비롯해 레버쿠젠, FC쾰른, 묀헨글라트바흐 등 빅클럽과 경쟁이 불가피했다. 당연히 대기업들은 1부리그에 속한 빅클럽들을 앞다퉈 후원했다.
대신 뒤스부르크는 더 깊게 파고들었다. 지역에 있는 중소기업은 물론 소상공인들까지 파고들었다. 뒤스부르크의 유니폼 ‘메인스폰서(HauptSponsor)’는 ‘트링크굿(Trinkgut)’이라는 지역 음료회사다. 메인스폰서를 중심으로 두 군데의 ‘팀 파트너(Team-Partner)’와 10곳의 ‘독점 파트너(Exklusiv-partner)’가 팀을 후원한다. 여기에 26곳의 회사가 구장 광고판 계약을 맺었다. 이들 대부분도 에너지, 물류, 유통 등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회사들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약 100군데 정도 되는 ‘지역 파트너(Logenpartner)다. 이들을 보면 변호사 사무실, 렌터카 회사, 슈퍼마켓 등은 물론 동네 커피숍, 개인교습소 등 지역 소상공인이 대부분이다. . 심지어 개인 자격으로 구단 후원 파트너가 되기도 한다.
크리스티안 코케 구단 마케팅 총괄은 “사실 이들이 후원하는 금액은 많지 않다. 돈이 아닌 현물이나 서비스 등을 제공하기도 한다”며 “하지만 지역 소상공인들이 스폰서로 함께 하는 것은 구단과 지역 사회가 한 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미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구단은 도움을 주는 지역 후원자를 위해 최선을 다해 홍보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후원자의 만족도가 높고 입소문을 통해 더 많은 분들이 후원을 하기 위해 찾아온다”면서 “그들 중에는 후원 비중을 높여 독점파트너로 올라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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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축구팬을 잡아라…어린이팬 마음 사로잡기
취재를 위해 구단을 방문했을 때 가장 눈길을 끈 부분은 경기장을 찾은 한 무리의 아이들이었다. 경기가 없는 평일 오전. 구단 직원들이 구장 정비에 한창인 가운데 아이들이 그라운드를 마음껏 뛰어다니고 있었다. 인터뷰실에서 마치 선수와 기자가 된 것처럼 역할놀이를 하기도 했다. 이들은 현장학습을 온 지역 초등학생다.
구단 관계자에게 ‘오늘이 마침 초등학생 견학이 있는 날인가’라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다소 의외였다. 그는 “경기가 없는 날이면 거의 매일 초중고 학생들의 견학이나 현장학습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심지어 선수들이 뛰는 그라운드 위에서 체육수업까지 진행된다고 한다. 이날은 전날 경기가 있었던 탓에 잔디 관리 때문에 체육수업은 없었다. 하지만 팀이 원정을 떠날 때나 시즌이 아닐때는 체육수업도 자주 열린단다.
구단 관계자는 “독일은 부모님을 따라 좋아하는 축구팀이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며 “하지만 아이들이 진심으로 좋아하기 위해선 팀과 더 친밀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릴 때 ‘우리 팀’이라는 인식과 애정을 심어주는 중요하다”며 “그래서 어린이 팬들에게 많은 시간과 노력울 기울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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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를 팔아라…없으면 만들기라도 해라
뒤스부르크 구장 시설을 둘러보면서 이색적인 장소가 있었다. 팬들을 위해 마련된 바에 마련된 ‘64er Galerie(64년 선수들의 갤러리)’라는 특별한 좌석이다. 저 좌석의 의미를 물어보니 구단 관계자는 “독일 분데스리가가 처음 시작된 1963~64시즌을 기억하기 위한 곳”이라고 답했다.
1964년은 뒤스부르크 구단이 분데스리가 준우승을 차지했던 시즌이다. 1부리그 우승 경험이 없는 뒤스부르크의 구단 역사상 역대 최고 성적이다. 구단과 팬들이 가장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우승도 아니고 겨우 준우승이지만 뒤스부르크 구단은 이를 스토리로 승화시켰다. 당시 선수들 사진을 곳곳에 붙이는 동시에 홈 경기가 열릴 때마다 그 시절 뛰었던 왕년의 선수들을 초대해 팬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어느덧 세월이 많이 흘러 나이가 들었다. 하지만 당시 선수들은 그 시절을 떠올리며 젊은 팬들에게 즐겁게 얘기를 나눈다. 자연스럽게 세대를 이어주는 통로가 되고, 구단 역사를 공유하는 연결고리가 된다. 경기장을 찾는 많은 팬들은 지금의 유니폼 대신 1964년 선수들이 입었던 올드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을 찾곤 한다.
구단 관계자는 “1964년 준우승의 스토리를 많은 팬들이 좋아하고 관련 상품도 많이 팔린다”며 “우승을 많이 하는 큰 팀들 입장에선 하찮게 보일 수 있지만 우리로선 소중한 역사이자 스토리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