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4 향한 하이브리드 본더 ‘장비 대전’…K-반도체 미래 가른다

HBM4 향한 하이브리드 본더 ‘장비 대전’…K-반도체 미래 가른다

각 사 로고. / 각 사 제공

| 한스경제=고예인 기자 |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 시장 선점을 위한 반도체 업계의 총성 없는 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제조사를 중심으로 펼쳐지던 경쟁의 무대가 차세대 패키징의 ‘게임 체인저’로 불리는 ‘하이브리드 본더(Hybrid Bonder)’ 개발로 옮겨가며 국내 장비 업계의 지각 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기존 강자인 한미반도체의 아성에 한화세미텍, LG전자 생산기술원(PRI), 세메스 등이 도전장을 내밀며 기술 패권을 향한 치열한 각축전이 시작됐다.​​

이번 경쟁의 결과는 단순히 장비 업계의 판도를 넘어 글로벌 HBM 시장에서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중대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차세대 HBM의 심장, 하이브리드 본더

하이브리드 본더는 인공지능(AI) 시대의 필수재인 HBM의 성능을 극대화할 핵심 장비로 꼽힌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처리 속도를 높인 메모리인데, 기존에는 열과 압력을 가해 칩을 연결하는 열압착(TC) 본더 방식이 주로 사용됐다. 하지만 D램을 16단 이상 쌓아야 하는 HBM4부터는 TC 본더 방식의 한계가 명확해지면서 ​하이브리드 본더가 새로운 게임체인저로 떠오르고 있다.

하이브리드 본더는 칩과 칩 사이의 미세한 돌기(범프) 없이 직접 구리(Cu)를 맞대어 연결하는 혁신적인 기술을 사용한다. 이를 통해 칩 간의 거리를 획기적으로 줄여 전체 두께를 감소시키고, 신호 손실과 발열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는 HBM의 성능과 전력 효율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해 HBM4 이후 20단 적층이 예상되는 HBM4E 시대에는 필수 공정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왼쪽부터) 한화세미텍의 SFM5-Expert장비, 한미반도체 듀얼 TC본더 / 각 사 제공 

◆’속도의 한화’ vs ‘굳히기 한미’…불꽃 튀는 경쟁

이번 하이브리드 본더 경쟁의 가장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는 ‘도전자’ 한화세미텍과 ‘절대강자’ 한미반도체의 맞대결이다.​​

TC 본더 시장에서 한미반도체에 밀려 고전했던 한화세미텍은 하이브리드 본더를 통해 전세 역전을 노리고 있다. ‘첨단 패키징 기술센터’를 신설하는 등 개발에 총력을 기울인 한화세미텍은 국내 업체 중 가장 빠른 2026년 초에 2세대 하이브리드 본더 ‘SHB2 나노(Nano)’를 출시하겠다고 선언하며 공격적인 속도전을 예고했다. 2021년 SK하이닉스와 1세대 장비를 개발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TC 본더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며 독주 체제를 굳힌 한미반도체는 신중하면서도 과감한 투자로 ‘굳히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2027년 말 양산을 목표로, 1000억 원을 투입해 인천에 하이브리드 본더 전용 팩토리를 건설 중이다. 특히 모든 신규 장비에 AI 기능을 탑재해 공정부터 품질 검사까지 자동화하는 ‘초격차’ 전략으로 경쟁사들의 추격을 따돌리겠다는 구상이다.​​

◆LG의 참전과 글로벌 경쟁…새로운 변수들

이들 양강 구도에 LG전자 생산기술원(PRI)이 새롭게 가세하며 국내 경쟁은 3파전 양상으로 확대됐다. LG전자는 2028년 양산을 목표로 하이브리드 본더 개발에 착수, 반도체 장비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의 경쟁이 전부는 아니다. 네덜란드의 BESI, 싱가포르의 ASMPT 등 글로벌 장비 강자들은 이미 기술적으로 한발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BESI는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마이크론 등 HBM 제조 3사 모두가 차세대 HBM 생산에 채택할 가능성이 거론될 정도로 강력한 경쟁자로 꼽힌다.​

하이브리드 본더 경쟁을 두고 업계 전문가들은 기술의 완성도와 실제 양산 라인에 적용되는 시점이 승부를 가를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반도체 장비업체 관계자는 “하이브리드 본딩의 성패는 나노미터급 정렬 정확도와 구리 표면의 산화막을 제어하는 표면 처리 기술의 완성도에 달렸다”며 “실험실 수준의 성공을 넘어 실제 양산 라인에서 높은 수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핵심 과제”라고 말했다.

결국 하이브리드 본더 개발 경쟁의 최종 승자는 누가 더 빨리, 더 정밀하게 칩을 쌓아 올리는 기술을 구현해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이 경쟁의 결과는 단순히 장비 업계의 판도를 바꾸는 것을 넘어 한국 반도체산업 전체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중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Author: NEWS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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