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신희재 기자 | “주장 제안을 받았을 때 ‘나에게도 이런 순간이 오는구나’ 싶었죠.” 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 대한항공의 정지석(30)은 지난여름 헤난 달 조토 신임 감독과 면담을 이렇게 떠올렸다.
새 시즌 정상 탈환을 노리는 대한항공은 지난 시즌 트레블을 차지한 현대캐피탈을 넘기 위해 두 가지 승부수를 띄웠다. 하나는 2023-2024시즌까지 통합 4연패로 ‘항공 왕조’를 이끈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과 결별하고 헤난 달 조토 감독을 데려온 것, 다른 하나는 지난 10년간 팀을 이끈 세터 한선수 대신 정지석에게 주장을 맡긴 것이다.
프로 13년 차 시즌을 앞둔 정지석은 최근 본지와 통화에서 “대한항공에 입단했을 때 ‘언젠간 주장을 하겠지’보다 ‘어떻게 살아남지’하는 생각으로 여태까지 왔다”며 “감독님의 제안을 받았을 땐 기쁘면서도 부담이 됐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를 신경 쓰면서 코치진과 선수단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생후 21개월 된 딸아이의 아빠인 정지석은 유광우, 한선수, 곽승석, 김규민, 조재영 등 형들의 전폭적인 신뢰 속에 팀을 이끌고 있다. 그는 팀 내에서 자신의 역할을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엄마로 표현했다. 헤난 감독에 대해서는 “할아버지 같은 자상한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시즌 5전 3승제 챔피언결정전에서 셧아웃 패배로 준우승에 그친 대한항공은 비시즌 가족처럼 끈끈한 팀워크를 만들기 위해 연신 구슬땀을 흘렸다. 정지석은 “시즌이 끝나면 항상 제일 좋은 성적표를 들고 휴가를 갔는데 (지난 시즌엔) 그러지 못했다. 선수들이 허탈해했고, 나도 좀 더 잘 해야 했다고 후회했다”면서 “좋은 자극이 됐다. 나도 그렇고 다들 이렇게까지 열심히 훈련한 게 오랜만인 것 같다”고 강조했다.
‘타도 현대캐피탈’을 내세운 정지석은 남자배구 최다우승 기록을 깨는 걸 은퇴 전 목표로 잡고 있다. 그는 “삼성화재(8회)가 남자배구 최다우승팀인 걸로 알고 있다. 대한항공과 현대캐피탈이 5회 우승인데 최소한 동률을 이루고 은퇴하고 싶다”며 “예전에 우승을 한 번도 못 할 땐 너무 먼 목표였다. 그런데 지금은 팀에 유망한 선수들이 많아서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곧 임동혁이 전역하고, 한선수 형과 유광우 형도 5~7년 전부터 나이 이야기가 나왔지만 여전히 건재하다. 우리는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팀이다”라고 자부심을 나타냈다.
지난 2년간 부상으로 부침을 겪었던 정지석은 비시즌에도 왼쪽 정강이 피로골절로 재활에 매진해야 했다. 그는 “몸 관리도 실력인데, 내가 많이 부족했다”며 자책한 뒤 “나이를 먹어가니 새삼 베테랑 형들이 대단한 것 같다. 그래도 팀에서 관리를 잘해줘서 올해는 다를 거로 생각한다. 개막전을 목표로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지석은 “예전엔 기록이 전부라 여겼는데, 주장이 되면서 이제는 ‘당대 최고의 선수’라는 평가를 받고 싶어졌다”며 “사람들이 ‘에이징 커브(노화에 따른 기량 저하)’를 이야기하는데, 그 말을 뒤집을 수 있도록 정상에 오래 머무르고 싶다”고 다짐했다.
대한항공은 오는 23일 인천계양체육관에서 한국전력과 홈 개막전을 시작으로 정규리그 36경기 대장정에 돌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