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수입차’ 쉐보레, 이중 구조가 부른 정체성 붕괴

‘애매한 수입차’ 쉐보레, 이중 구조가 부른 정체성 붕괴

[프라임경제] 지난 9월 국내 수입 승용차 시장에서 쉐보레가 단 4대의 신규 등록에 그치며 사실상 ‘존재감 제로’로 전락했다. 26개 주요 수입 브랜드 중 최하위, 시장점유율은 0.01%에 불과하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9월 전체 수입 승용차 신규등록대수는 3만2834대로, 전월 대비 20.3%, 전년 동월 대비 32.2% 늘었다. 이처럼 시장 전반은 뚜렷한 회복세를 보였지만, 쉐보레만은 예외였다. 같은 미국 브랜드인 포드(351대)나 지프(227대)는 물론, 초고가 브랜드인 롤스로이스(11대), 벤틀리(82대)보다도 적은 수치다.
특히 일반 대중 브랜드 가운데 한 자릿수 실적은 쉐보레가 유일하다. 이는 제너럴 모터스(GM) 본사의 글로벌 전략 속에서 한국GM이 사실상 내수시장을 포기한 결과로 해석된다. GM은 한국 내 생산기지를 수출 중심으로 전환했고, 쉐보레의 수입 승용 부문은 신차 도입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이번 부진의 근본 원인은 시장 변화에 대한 대응력 부재다. 9월 수입차 등록 중 하이브리드가 50.5%(1만6585대), 전기차가 39.3%(1만2898대)를 차지하며, 전체의 90% 가까이가 전동화 차량이었다. 반면 내연기관 비중은 가솔린 9.5%, 디젤 0.7%에 그쳤다.

초대형 SUV 타호. ⓒ 한국GM

그럼에도 쉐보레는 여전히 대배기량 가솔린 SUV 중심 포트폴리오에 머물러 있다. 현재 국내에서 수입 판매 중인 쉐보레 모델은 △트래버스 △타호 △콜로라도 세 종류뿐이며, 전기차 볼트 EV, 볼트 EUV는 단종된 상태다. 전동화 모델이 전무하다 보니 고유가·고금리 국면에서 소비자 선택지에서 완전히 밀려난 셈이다.
한 수입차업계 관계자는 “테슬라와 BYD가 전기차시장을 주도하고, 렉서스·토요타·BMW가 하이브리드 판매를 견인하는 상황에서 쉐보레는 존재감을 잃었다”며 “사실상 ‘없어도 그만인 브랜드’로 전락한 상태다”라고 진단했다.
쉐보레의 부진은 단순한 판매부진을 넘어 한국GM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 국내에서 쉐보레는 수입 브랜드이면서 동시에 국산 브랜드로 인식되는 독특한 위치를 갖는다. 한국GM이 일부 모델을 국내 공장에서 생산하고, 일부 모델들은 미국에서 수입해 판매하기 때문이다.
지난 2019년 한국GM은 쉐보레를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가입시키며 수입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려 했다. 국산차보다는 프리미엄 감성을, 글로벌 브랜드로서의 위상을 구축하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뚜렷한 성과 없이 끝났고, 현재는 오히려 정체성 혼란의 상징이 되고 있다.

쉐보레 픽업트럭 콜로라도. ⓒ 한국GM

그러나 이런 이중 구조는 오히려 브랜드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수입 브랜드로서는 매력과 차별성이 부족하고, 국산 브랜드로서는 가격경쟁력이 떨어진다. 결과적으로 소비자 신뢰와 딜러 생태계 모두가 약화됐다.
더욱이 GM은 최근 아시아·태평양 전략 거점을 미국 및 중남미 시장으로 옮기며, 한국시장의 우선순위를 후순위로 미뤄둔 상태다. 내수 신차 배정이 끊기고, 수입 승용 부문 투자가 사실상 중단되면서 쉐보레는 본사 차원에서도 ‘관리 대상이 아닌 시장’으로 분류된 모습이다.
9월 단 4대 등록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실적 부진이 아니다. 쉐보레라는 브랜드 생존 신호가 끊긴 수준이며, 내수 소비자와의 연결 고리가 사실상 끊어졌음을 상징한다. 뿐만 아니라 다른 국산 브랜드들은 하이브리드나 전기차 시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만큼, 쉐보레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GM이 한국을 생산기지로만 보고 소비시장으로서의 전략적 가치를 상실한 결과다”라며 “내수 전략이 사라진 브랜드는 신뢰도와 충성도 모두를 잃는다”고 입을 모은다. 단 4대. 이 숫자는 한국 내 쉐보레라는 브랜드가 사실상 기능을 잃었음을 보여주는 경고음이다.

Author: NEWSPIC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