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주도로 노사 단체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기구가 15일 공식 출범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26년 만에 노사 합의 테이블에 복귀하면서, 사회적 대화가 다시 시작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등 노사 단체 대표들은 이날 오전 11시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국회 사회적 대화 공동 선언식’에서 ‘사회적 대화 공동 선언문’을 발표했다.
선언문에는 ▲복합위기 극복을 위한 국회 사회적 대화 틀 마련과 성실한 논의 지속 ▲공통의 이해 기반 아래 사회적 대화·협의 존중 및 보완적 발전 ▲협의체의 운영 원리 존중, 제도적 발전 방안 공동 모색 ▲다양한 의제·참여 주체 발굴로 대화 실효성·저변 확대 ▲상호 책임감있는 참여와 활동 보장 ▲국회의 안정적 논의 구조 정착 지원 방안 마련 등 6가지가 담겼다.
이날 출범한 사회적 대화기구는 운영협의체 논의를 바탕으로 ‘혁신’, ‘보호’, ‘상생’이라는 3개의 의제별 협의체로 구성됐다. 경영계 제안으로 운영되는 의제 1 협의체는 ‘첨단·신산업 경쟁력 강화’를, 노동계 제안인 의제 2 협의체는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의 사회보험과 사회안전망’을 주요 안건으로 삼는다. 의제 3 협의체는 ‘상생’을 의제로, 일·가정 양립과 저출생·고령화 대응 등 사회적 과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사회적 대화는 노동자 양보와 희생의 수단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국회 사회적 대화는 성숙한 숙의의 장이 되길 바란다. 결과에 집착하기보다는 차이를 좁히는 과정에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상호 신뢰와 협력이 중요하다”며 “취약계층 노동자를 보호하고 노동 조건을 개선할 제도개선 방안이 확실하게 모색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노사는 한솥밥 먹는 식구”라며 “사회적 대화도 식구들끼리 잘 이어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은 “당면 과제가 근로시간 유연화인데, 근본적으로 중소기업계도 찬성이지만 중소기업에 퇴로를 열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출범식에는 우원식 국회의장, 주호영 국민의힘 국회부의장,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 서왕진 조국혁신당 원내대표, 윤종오 진보당 원내대표,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 등도 참석해 자리를 함께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날 기념사에서 “사회적으로는 국회와 경제·노동계가 의기투합해서, 우리 사회의 여러 갈등과 도전을 대화와 토론으로 해결하는 틀을 만들었다”며 “국회 사회적 대화 제도화, 입법을 비롯한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국회에서 일시적으로 하는 대화가 아니라, 국회의 기능을 하나 더 붙이고 ‘사회적 대화의 역할을 한다’는 국회 제도 개혁까지 나아가야 한다”며 “국회가 책임 있게 뒷받침하겠다”고 강조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국회부의장은 “모든 관계자를 만족시키는 방향은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을 만족시키고, 그 방향이 최대 다수에게 최대 도움이 되는 길은 찾을 수 있다”며 “노동·연금 문제처럼 국가적 과제가 많지만, 관계자들 사이의 공감대 부족으로 지체되는 상황이 많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외환위기 이후 26년 만에 노·사·정이 모두 모인 것으로 안다”며 “노동자와 기업, 정부가 서로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협의하며 만들어가는 상생협력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우리 앞에는 기후위기, 경제 양극화, 청년 일자리 감소, 노동시장 변화라는 위기가 놓여 있다”며 “이 문제는 누구도 혼자 해결할 수 없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율해 사회 전체를 하나로 묶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사회적 대화, 아주 좋다. 의장님께 이런 뜻깊은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드린다”며 “국회는 정치를 하는 곳인데, 사회적 대화뿐만 아니라 정치적 대화도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국회는 대화와 타협보다 일방적 결정이 앞서는 구조로 가고 있다. 다수당이 소수당과 악수조차 하지 않고 ‘해산해야 한다’는 말까지 공공연히 하는 상황에서 진정한 대화가 어렵다”며 “정치에 몸담은 우리가 먼저 솔선수범해 타협과 포용의 정신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정치가 잘 돼야 나라가 잘 된다. 기업이 2류, 행정이 3류, 정치는 4류라는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국회가 먼저 변해야 한다”며 “오늘 사회적 대화의 성과가 대한민국 정치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지속 가능한 사회적 대화기구 정착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도 추진 중이다. 국회는 사회적 대화기구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해당 법안에는 대화기구에서 도출된 결과를 관련 상임위원회가 정책 심의 시 존중하도록 하고, 국회 차원의 제도적 지원을 가능하게 하는 내용이 담겼다.
국회는 2026년부터 관련 예산을 확보해, 명실상부하게 사회적 대화의 한 축을 담당할 예정이다.
이번 사회적 대화기구 출범은 2023년 우원식 국회의장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우 의장은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노총, 중소기업중앙회, 민주노총, 대한상공회의소를 차례로 방문해 사회적 대화 플랫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후 같은 해 10월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오찬 간담회에서 사회적 대화의 정례화를 제안했고, 11월부터 각 단체 실무자 중심의 운영협의체가 구성됐다.
이 협의체는 올해 1월부터 격주 회의를 이어오며, 각 단체가 제안한 의제에 대한 입장 조율과 협의체 구성을 진행해 왔다.
그 결과 ‘혁신’과 ‘보호’ 협의체가 먼저 출범했으며, 향후 ‘상생’ 의제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될 예정이다.
이번 사회적 대화기구 출범은 민주노총이 1999년 노사정위원회(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탈퇴 이후 처음으로 대화 테이블에 복귀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국회가 중심이 되어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가 본격화되면서, 향후 입법과 정책 결정 과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폴리뉴스 박형준기자]